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신라 궁중비사] 13. 꿈을 사서 王妃가 된 文姬

鶴山 徐 仁 2007. 2. 25. 20:22
첨성대왕족의 김춘추(金春秋)와 화랑 출신의 김유신(金庾信)이 아직 총각 시절에 그들은 장래의 큰 꿈을 겨루는 용과 같은 친구 사이였다. 인물로서도 쌍벽(雙璧)이었고, 무술로도 그랬고 풍류로도 그랬다.
 
신라(新羅)는 삼국(三國)을 통일(統一)해서 한민족(韓民族) 역사상 최초로 단일민족(單一民族)의 단일국가(單一國家)를 이루어 통일신라(統一新羅)의 뜻을 키우고 있었다.
 
후에 김춘추는 제二十九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명군(名君)이 되었고, 김유신은 그를 도와서 싸운 명장(名將)이 되었다.
 
이 명군과 명장이 소년시절부터 친한 글동무였던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으며 그 친구 이상으로 처남·매부(妻男妹夫)의 관계가 된 기연(奇緣)이 또한 양가(兩家)와 국가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었다.
 
즉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文姬)와 김춘추가 사랑을 맺음으로써 그들의 단결이 더욱 굳어졌던 것이다. 이 두 영웅은 공적으로는 군신(君臣)관계요, 사적으로는 죽마고우(竹馬故友)인 동시에 처남 매부 사이였던 것이다.
 
김유신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두 명 있었다. 언니를 보희(寶姬)라 불렀고, 동생을 문희(文姬)라고 불렀다. 춘추와 유신은 어려서부터 서로 두 집으로 놀러다녔기 때문에 가족과 같이 지냈다.
 
그러는 동안에 보희와 문희는 모두 춘추를 사모하여 은근히 자매(姉妹)가 사랑을 다투게 되었다. 언니는 동생에게 사양하고 동생은 언니에게 사양하는 우애였지만 이 애정 문제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보희는 성격이 온순해서 그 애정 표현이 소극적이었고, 문희는 성격이 쾌활해서 춘추에 대한 태도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보희는 두 집 사이에 혼담이 생기면 자기가 언니니까 문희보다 먼저 시집 갈 수 있으므로 춘추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문희는 자기가 사모하는 춘추를 결코 언니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자기의 매력으로 언니보다 먼저 춘추를 사로잡으려는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 자매는 알 듯 모를 듯 춘추를 중간에 두고 사랑의 경쟁을 했다. 그러나 그 문제로 서로 들어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어느날 보희와 문희는 바느질을 하다가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보희가 꿈 이야기를 했다.
 
“문희야, 나 어젯밤에 아주 괴상망칙한 꿈을 꿨다. 호호호….”
 
“무슨 좋은 꿈을 꾸었기에 그렇게 웃어. 좋은 꿈이었다면 엿이라도 사야지.”
 
“그런데… 호호호.”
 
“왜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만 해?”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꿈이야.”
 
“알았어. 언니 좋아하는 사람한테 시집가는 꿈이었군. 흥 자랑하고 싶어서 튕기기만 하지마.”
 
문희는 새침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불현 듯 언니가 김춘추와 꿈 속에서 무슨 좋은 약속이라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떠올랐다.

“너야말로 실성했니. 시집이니 뭐니, 머슴아이 같은 애는 할 수 없구나.”
 
“그럼 왜 운만 떼고 얘기 않는 거야.”
 
“너 아무한테두 얘기 않는다는 약속하면 들려주마.”
 
“약속하겠어.”
 
“그래. 그렇지만 웃지는 말아.”하였으나 보희는 역시 꿈 이야기를 하기가 퍽 거북한 모양이었다.
 
“글쎄, 내가… 너 같으면 그런 짓도 하겠지만 너도 아닌 내가 말야. 서악산(西岳山) 상봉에 올라가서 치마를 훅 걷고 오줌을 쏴아 누지 않았겠니… 후후후.”
 
“후후후, 그러다가 누구한테 들켜서 봉변을 당했군. 아아 고소해라 대갓집 규슈가 그런 행실이 어디 있어.”
 
문희는 자즈러질 듯 웃으며 보희를 놀렸다.
 
“봉변보다도 놀랐다. 글쎄, 내가 눈 오줌이 폭포처럼 흘러서 산 밑의 서울 장안이 오줌 바다 속에 잠겨버리지 않겠니, 참 이상한 꿈이야.”
 
분명히 이상한 꿈이었다. 문희는 언니를 놀리다가 그 큰 꿈에 놀랐다. 그러나 조금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언니 그 꿈 내가 샀다. 얼마면 팔겠어?”
 
엉뚱한 수작에 이번에는 보희가 어리둥절했다.
 
“너 정말로 그 꿈 사겠니?”
 
보희는 보희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이런 해괴한 꿈이 꺼림칙했기 때문에 팔아 버리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너 얼마에 사겠니? 제 값만 내면 팔아도 좋다.”
 
보희는 사겠다는 문희에게 농담조로 흥정을 했다.
 
“언니두 욕심장이야. 그런 더러운 꿈, 오줌에 젖은 꿈자리를 씻어 준다는데 비싸게 팔겠다니….”
 
“흥, 싫거든 그만 둬라. 내가 언제 꿈장수 했다더냐.”
 
보희도 웃으면서 튕겼다.
 
“기왕 내가 한 말이니 사겠어. 비단 치마 한감줄 게 팔아.”
 
“그것도 될까.”
 
“아아 언니 오줌꿈 그렇게 비싸게 팔려는 욕심보니까, 오늘밤에 꿀 똥꿈은 더 비싸게 팔겠네. 호호호.”
 
문희는 언니를 또 놀렸다.
 
“넌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그럼 그만 둬. 그 대신 그 꿈 얘기 온 동네에 퍼뜨려서 언니 망신을 시킬 테니까.”
 
문희는 토라지듯 말했다.
 
“네가 살 때야 좋은 꿈인 모양인데 너는 왜 그 꿈을 사려고 그러니?”
 
“농담 끝에 한 실언이었어. 실언은 했지만 책임을 져야겠기에 그러지 나같이 신의를 중히 여기는 사람은 손해만 본다니까….”
 
보희가 팔지 않으면 신의가 없다는 투기이기도 했다.
 
“그래, 비단치마 한감에 내 길몽을 팔겠다.”
 
“그럼, 내가 그 꿈 분명히 샀어.”
 
문희는 한 번 다시 다짐하고 혼숫감으로 떠 두었던 비단 치마 한감을 언니에게 주었다. 이때 보희는 길몽을 판다고 말했으나 사겠다는 문희가 있으니까 그냥 해본 말이지 결코 길몽으로는 판단하지 않았다. 도리어 흉몽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문희에게 비단 치마 한감에 판 것이 큰 횡재라 생각하고 속으로는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희는 그 꿈이 장차 서울을 지배하는 따라서 신라 전체를 지배할 여왕이나 왕비가 될 용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샀던 것이다. 꿈을 산 뒤로 문희는 모든 일에 자신을 갖게 되었다. 장차 여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큰 희망까지도 품어 보았다. 그러나 우선의 희망인 춘추에 대한 애정이 성공될 듯하기도 했다. 춘추는 잘난 왕족의 청년이다. 자기가 여왕이 되는 것보다도 더 실현성이 큰 것 같았다.
 
춘추가 왕이 된다면 그와 결혼한 자기는 자연 왕비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춘추를 남편으로만 삼는다면 자기가 여왕이 되는 것보다도 춘추가 왕이 되어서 왕비가 되는 편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문희는 언니에게 산 꿈으로 다시 이런 자기의 꿈을 꾸고 있었다.
 
문희가 산 꿈은 꿈 자체의 영험보다도 그러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에 타고난 적극성에 또 하나 신앙적인 믿음까지 얻었다. 우선의 목표인 춘추에 대한 사랑을 성공시키려고 모든 힘을 기울였다. 이미 큰 꿈을 자기에게 판 보희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것만 같았다.
 
그 해가 저물고 새해가 왔다. 신라에서는 그 때 풍속으로 정초에 공차기 유희가 청소년 사이에 유행되었다. 공으로는 쇠털(牛毛)같은 짐승의 털을 뭉쳐서 만든 국(鞠)이라는 것이 쓰였다.
 
김유신은 자기 집 사랑 마당에서 김춘추를 비롯한 귀족 청년들을 초청해서 공차기 유희를 하고 놀았다. 두 편으로 갈려서 싸우는 이 공차기 놀음을 하였는데 얼마 후에 보니 춘추의 옷고름이 떨어져 있었다.
 
유신은 미안히 여기면서 안으로 들어가서 고름을 달아 입으라고 권했다. 춘추가 사양해도 유신은 억지로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신은 이 친한 친구요 왕족 청년에게 누이동생 둘 중의 하나와 결혼을 시켜서 처남매부지간이 되고 싶었던 고로 이런 기회에 누이동생들의 선을 그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춘추가 보희와 문희를 한 번 보기만 하면 호감을 갖고 애정을 느끼리라는 자신이 유신에게도 있었다. 그만큼 처녀 자매는 미인이었다.
 
“자네 정초에 옷고름을 떼서 안 되었네. 안으로 들어가서 달아 입게. 그냥이야 집까지 갈수 있겠나.”
 
“그렇지만 미안해서.”
 
춘추는 사양했으나 유신은 자기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보희야 손님 옷고름을 달아 드려라.”
 
그러나 부끄러움을 잘 타는 보희는 사양했다.
 
“어떻게 귀하신 남자분 옷에 서투른 바늘을 대겠어요?”
 
“그럼 문희야, 네가 달아라.”
 
“네.”
 
문희는 김춘추의 옷을 자기 손으로 정성껏 고쳐 주고 싶었다. 보희에게 이 기회를 빼앗길까 마음을 조리고 있던 참에 보희의 수줍은 성격이 망설였으므로 얼른 춘추의 옷을 받았다. 조금도 망설임없이 받은 자기의 동작이 얌통머리 없는 짓 같기도 했으나 이런 점이 언니를 이기는 첩경이리라고 생각했다.
 
춘추는 문희가 정성껏 고름을 단 옷을 받아 입으면서 진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 뒤로 춘추는 고운 문희의 얼굴과 친절에 매혹되어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유신은 춘추와 문희가 서로 좋아하는 눈치를 알게 되자 되도록 그들이 밀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춘추는 거의 날마다 유신의 집을 찾아왔다. 놀러다니기만 하면 주위의 눈이 수상스럽게 여길 것을 두려워한 춘추는 자기 집에다 유신의 공부방에 가서 공부한다는 핑계를 하고 다녔다. 춘추는 날마다 와서 유신의 공부방에서 밤늦도록 있었다.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마음은 문희에게만 쏠려서 초조하게 타올랐기 때문에 책이 문희의 얼굴로 보이고 글자가 문희의 눈동자로 보였다.
 
유신은 밤참 심부름 같은 것을 문희에게만 시켰다. 문희가 하녀들을 제쳐 놓고 공부방에 드나든 것이 결국 춘추와 가깝게 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보희는 자기도 사모하는 춘추를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깨달았으나 이미 때가 늦어서 완전히 문희에게 지고 말았다.
 
“어쩌면 양갓집 계집애가 고렇게 얌전치 못할까?”
 
보희는 문희를 빈정거렸다.
 
유신은 자신도 천관(天官)이라는 동기(童妓)와의 사랑에 빠져 있었으므로 밤이면 자기 공부방을 춘추에게 지키게 하고 천관의 집으로 가기가 일쑤였다.
 
“춘추, 오늘 밤엔 또 천관하고 만날 약속을 했네. 자네 미안하지만 내 방을 지켜 주게. 어머니가 나 없는 줄 알면 또 천관네 집에 갔다고 꾸중하실 테니까. 그 대신 자네는 문희에게 글씨라도 가르쳐 주게. 문희는 자네하고 단 둘이 있고 싶어하거든. 실은 그래서 내가 천관네 집으로 피해 주는 거야.”
 
유신은 친구에게 이런 농을했다. 그러므로 유신이 천관에 미쳐 다니는 밤은 춘추와 문희가 유신의 공부방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사랑의 씨가 잉태되어 문희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오빠 유신도 문희와 춘추와의 결혼을 바라고 그들의 밀회의 기회까지 마련해 왔으나 결혼도 하지 전에 문희가 임신한 눈치를 채고서는 당황하기 않을 수 없었다. 귀족의 딸로서 이런 불미한 행실이 탄로 나면 세상에 대해서도 면목이 없었다. 유신은 세상의 풍문보다도 문제가 시끄러워지면 임신시킨 문희를 그냥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유신은 자기도 책임을 느끼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도적 역할을 맡고 나섰다.
 
‘사정이 급해졌다. 쉬쉬하면서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문제를 명백히 하고 춘추가 책임을 지고 빨리 결혼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 계략을 세웠다. 그것은 문희의 결혼 전 경솔을 추궁하면서 엄격한 처벌을 하겠다고 얼러 댔다. 문희를 괴롭히기 위해서보다는 김춘추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오빠 용서하세요. 모두 제 잘못입니다. 상대가 누군지는 묻지 마세요.”
 
“상대자가 네 남편으로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도 춘추와 네가 부부가 되기를 바란다. 문제는 결혼 전에 네 몸이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세상에선 아직 그 분과 저 사이를 모릅니다. 그 분의 명예가 손상돼서는 안 되니 모든 것은 저 혼자 지겠어요. 만일 그 분이 이 문제로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면 저는 자결해 버리겠어요.”
 
“음, 죄를 따지자면 처음부터 내게 있었다. 실은 춘추와의 혼사를 빨리 실현시키기 위해서 내가 일을 꾸밀터이니 너는 좀 괴로워도 잠깐만 참고 기다려라.”
 
유신은 일부러 소문을 퍼뜨렸다. 실로 대담한 모험이었다.
 
‘김춘추가 문희를 유혹해서 임신까지 시켰다. 그도 체면을 아는 왕족이니까 물론 결혼할 각오로 그랬겠지만 딸 가진 우리 집이 좀 창피하다. 허긴 춘추가 자기 집에서 문희왕 결혼시켜 주지 않을까 봐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한지도 모른다.’
 
유신은 다른 화랑에게 자기의 고민거리를 털어 놓듯이 얘기했지만 실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장안에 퍼뜨리려는 심신이었다. 유신은 이런 소문을 퍼뜨리는 동시에 마음이 인자한 선덕여왕(善德女王 二十七대)에게 호소해 어명으로 춘추와 문희의 결혼을 빨리 시키려고 생각했다. 마침 선덕여왕이 산놀이 차 유신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여왕의 행차가 그의 집 가까이 다가오자 유신은 바깥 마당에 장작더미를 높이 쌓고 불을 질렀다.
 
“저 집이 김유신 집이 아니냐? 행차를 멈추라.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너희들 인부와 호위병은 빨리 가서 저 집의 불을 끄고 오너라.”
 
그러자 수행하던 신하가 여왕에게 그 불이 화재가 아니라고 아뢰었다.
 
“실은 김유신의 누이 문희라는 처녀가 김춘추와 약혼한 사이였으나 결혼 전에 잉태했기 때문에 유신이 분개하고 그 누이를 화형(火刑)에 처해 버리려고 장작불을 놓았다 하옵니다.”
 
“유신의 누이와 춘추와의 혼인은 두 집의 문벌로나 본인들의 인물로 보나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비록 약혼한 남녀간에 경솔한 허물이 있었다고 해서 어찌 잉태한 여인을 불에 태워 죽이겠느냐. 그런 참혹한 형벌이 도리어 천도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니 곧 중지시켜라.”
 
이 행차에는 김춘추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안색이 변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춘추,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왜 미리 나에게 말해서 창피한 소동이 일어나기 전에 성혼하지 않았느냐? 어서 빨리 가서 너 때문에 희생되는 처녀의 목숨을 구하고 위로해라. 그리고 내가 유신의 가족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성혼케 하겠다.”
 
춘추는 황송한 가운데서도 인자한 여왕의 분부에 감복했다. 그는 곧 유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장작더미의 불길이 충천하는 화형장(火刑場)에는 소복한 문희가 끌려 와서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았으며, 칼을 짚고 선 유신의 준엄한 사형선고의 설교가 장황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춘추는 노한 듯한 유신을 황망히 뜯어 말리고 그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유신, 참아주게. 나의 경솔을 사과하겠으니 문희를 탓하지 말게. 자네가 노한다면 문희 대신 내가 화형을 당해도 좋으이.”
 
“자네에게 무슨 죄가 있나? 내가 동생을 잘못 가르쳤으니 세상에 대한 면목이 없네. 자네는 어서 여왕님 행차를 모시고 가게.”
 
“실은 여왕께서 가서 문희를 구하고 빨리 성혼하라는 분부가 내리셨네.”
 
“여왕께서 그런 분부를 하셨나?”
 
유신은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으나 짐짓 놀란척하면서 반문했다.
 
“곧 정식으로 자네 집에 분부가 내리시겠지만 여왕님 인자에 나는 감격하고 달려왔네.”
 
“어명이시라면 문희 처형은 잠시 보류하겠네.”
 
유신은 문희를 안으로 돌려 보냈다.
 
장안에서는 이 문제가 큰 화제였다.
 
“김유신의 집안 가헌(家憲)이 놀랍게 엄격하다. 그러나 약혼 남녀간의 그만한 경솔을 화형에 처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
 
여론은 도리어 김유신을 칭찬하는 동시에 문희를 동정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선덕여왕의 후원과 함께 춘추와 문희의 결혼식은 온 장안 백성의 축복 가운데 곧 거행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