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그날의 충격 [ 2 ]

鶴山 徐 仁 2007. 2. 19. 01:07

 

 

 

 

 

미국의 자신감

 

소련은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지 불과 2년만인 1955년 수소폭탄의 제작 및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전략적 핸디캡을 순식간 단축하고 미국과 맞먹는 핵심 보복공격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미국은 비록 소련에게 위협을 느꼈지만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고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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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이 핵무기를 자체 개발하여 보유함 ( 사진 ) 으로써

전략무기 분야에서도 미국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미국은 거대한 대양에 의해서 소련을 위시한 가상의 적들로부터 지리적으로 분리 되어 있는데 반하여, 소련은 미국의 동맹국이나 우방국, 점령국 등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중폭격기나 항공모함과 같은 장거리 타격 플랫폼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까지 소련은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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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냉전 시기에 소련은 미국의 동맹국 등에 의해 포위당한 형국이었고

 많은 전술, 전략 무기가 이들 국가에 배치되어 소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

 

비록 한국전쟁에서 갑자기 등장한 MiG-15 의 등장으로 인해 소련의 항공기 제작기술이 생각보다는 뛰어난 것을 깨닫기는 하였지만, 당시 소련에게는 미국의 장거리 폭격기에 견줄만한 장거리 타격용 폭격기가 없었고 이런 플랫폼의 차이 및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인 여건해군력의 격차로 인하여 소련은 미국을 직접 타격하기 곤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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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륙간 폭격기는 미국만이 운용하던 핵 투발수단 이었습니다 ] 

 

또한 B-29 나 B-36 과 같은 장거리 전략폭격기외에도 미국은 소련을 압도할 하나의 주먹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장거리 미사일이었습니다.  미국은 전쟁의 전리품으로 제2차 대전 당시 가장 기술이 앞섰던 나찌 독일의 많은 로켓관련 전리품과 기술자들을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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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독일 기술을 확보한 미국은 장거리 로켓 개발에도 나서고 있었습니다

 ( 화이트 샌드 로켓 실험장에서 전후 노획하여 개량한 V-2 로켓을 시험 발사하는 장면 ) ]

 

V-2 로 대변되는 독일의 미사일은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업그레이드 계획들이 중단되었지만 이 놀라운 차세대 병기를 탐낸 미국은 전후에 확보한 독일의 인력, 노하우와 장비 등을 이용하여 V-2 를 능가하는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쟁 중 독일이 Amerika Rakete 로 명명하고 추진하였던 대륙간탄도탄 미사일 ICBM 의 실현이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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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개발 중인 ICBM 은 독일이 구상하던 Amerika Rakete 을 현실화하는 것이었습니다 ]

 

적어도 6,000 Km 이상 비행하여 적진 깊숙이 타격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미국이 가지게 되고 이를 핵폭탄과 결합한다면 미국은 전후질서에 있어 군사적으로 더 이상 상대할 대상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육, 해, 공 각 군별로 장거리전략미사일의 개발을 실시하여 드디어 1957년 5월 ICBM 의 중간단계인 IRBM 인 주피터 Jupiter 로켓의 발사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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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피터 Jupiter 로켓의 발사모습 ]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당시 미국은 미국 과학의 힘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1957년 1월부터 1958년 7월까지 설정 된 국제관측의 해 IGY ( 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 기간 중 대기권 탐사를 위한 최초의 인공위성 계획인 뱅가드 계획 Vanguard Project 를 1955년 발표하였고 1958년 중 발사하기로 전 세계에 천명하여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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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그들이 우주개발의 선구자가 될것으로 당연히 믿고 있었습니다

( 1955년 발표한 뱅가드 위성의 상상도 ) ]

 

미국은 전인미답의 우주개발 제 일보를 전쟁 후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그들이 당연히 할 것이 생각하고 있었고 이런 계획에 따라 1955년 9월에 미 해군연구소는 위성개발과 발사체 개발을 시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중 미 해군은 1957년 8월 사정거리 6,000 Km 수준의 ICBM 바로 전 단계 추진체인 아틀라스 Atlas 로켓의 개발이 완료됨으로써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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