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김대중 칼럼] 통치 공백 상태

鶴山 徐 仁 2007. 1. 6. 19:37

 

  • 조선일보 김대중·고문
    입력 : 2007.01.01 21:19 / 수정 : 2007.01.02 11:13
    • ▲ 김대중 고문
    • 우리는 지금 대단히 위태로운 정치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나라를 경영하는 중심기능이 없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통치기능이 상실돼 있다. 이 어려운 시점에 국정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리더십이 부재(不在)한 상태다. 대통령이 있다는데 그는 연일 말싸움 말씨름 말장난에 휘말려 있다. 그나마 1년 남짓 남은 임기에 5~6회 해외순방에 나서 상당기간을 국외에서 보낼 모양이다.

      집권당이 있다는데 그 집권당 꼴이 말이 아니다. 연일 모여서 헌집 버리고 새집을 지을까, 집을 둘로 쪼갤까, 아니면 이것 저것 모아서 잡탕으로 만들까 하는 고심에 나라 일은 안중에 없는 상태다. 야당(한나라당)이 있다는데 그 집안 역시 떡 줄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김칫국 마시느라고 벌써부터 치열하게 상대방 씹는 일에 여념이 없다. 정부 또는 내각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벌써 파장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통령이 저리 뛰고 집권당이 이리 날고 있는데다가 정권은 레임덕으로 간 지 오래인데 무슨 열정으로 집을 지킬 것인가.

      사람들은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다. 대통령직에 있는 사람이 연일 쏟아내는 저 분노의 열기, 그가 보여주는 저 다변(多辯)의 융단폭격, 조금도 반성하거나 물러서거나 관용할 줄 모르는 저 대단한 집착증으로 미루어 그가 “언제 일을 낼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인은 “저러다가 아무데나 사인하고 도장찍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했다. 사실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또는 작심하고 정계, 재계, 검찰, 언론 할 것 없이 전방위 공격을 해대는 상황으로 보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떤 깜짝쇼가 연출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어느 정권이나, 어느 대통령이나 레임덕 상황은 있어왔지만 지금과 같은 위험하고 불안한 레임덕은 일찍이 없었다. 어느 대통령이나 정권 말기에는 인기가 떨어지는 것이 상례였지만 지금처럼 바닥을 긴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있으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정부가 있으되 없는 것처럼 여겨진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이 같은 리더십 공백은 당연히 지나간 것에의 향수를 불러오고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대를 무리하게 부채질한다. 사람들의 입에는 30여 년 전의 박정희(朴正熙)가 다시 오르내리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 등 흘러간 별들이 고개를 내미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성급한 대통령 선출 무드 역시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파고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세월 동안 바깥 세상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에너지확보 경쟁, 자원의 모색, FTA 체제의 파급 등으로 세계는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북핵과 한미관계의 이완은 안보의 불안요소다. 우리가 리더십의 공백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는 동안, 정치권력이 서로 손가락질하고 대통령이 언론과 사생결단(?)하듯이 돌진하고 있는 동안, 세계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가? 검찰과 재계와 언론이 무슨 ‘결탁’을 하고 무슨 ‘유착’을 했다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입만 열면 ‘때리고’ ‘싸우고’ ‘권력이 세고(强)’하는 등등의 품격없는 용어를 써가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가?

      불행히도 그의 세계에는 최고 권력자인 ‘그’와 언론, ‘그’와 반노(反盧)·비노(非盧)정치인, ‘그’와 재계 등의 대결구도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 말고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자기를 비판하는 그 어떤 것도 적(敵)으로 돌리는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이 시작했던 일들을 정리하고 모자랐던 것을 보완하는 등, 조용한 ‘뒤끝’을 마무리할 것을 많은 사람들은 조언했고 또 기대했다. 하기로 한다면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여유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 그는 시종 ‘싸움꾼’으로 남기를 작정한 모양이다. 청문회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지는 이미지, ‘언론’을 향해 돌진하는 ‘풍차’의 연상작용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국민도 그런 저런 기대는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대통령 자신이 즐겨 쓰는 구어체 수준으로 말한다면 제발 남은 기간 “사고나 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새 대통령을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올 한 해 나라가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는 일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