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현역군인 37명 그들은 왜 북한을 갔는가?

鶴山 徐 仁 2006. 11. 13. 10:17
일부는 장관 승인 규정 무시하고 방북
김필재   
 역사를 공부하면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을 분명히 구별 하게 되며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특히 전사(戰史)를 보면 시대를 뛰어넘어 너무나 똑같은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놀랄 때가 많다.
 
 일례로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였던 최치원은 삼국시대를 회고하는 글에서 삼국중 백제가 가장 호전적이며 강한 군대를 보유 했었다고 평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백제는 전반적인 군사력에 있어 절대 신라나 고구려에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백제 멸망의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간단하다. 신라 대장군 김유신의 주도면밀한 첩보전-심리전 전략에 말려들어 국가정보시스템이 붕괴되고 지도층의 안보의식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당시 백제의 최고위직 대신이었던 ‘임자’의 몸종 ‘조미곤’을 매수해 간첩으로 활용 했다. 이후 임자도 신라의 충실한 첩자가 됐다.
 
 최고위층을 간첩으로 포섭한 김유신은 ‘금화’라는 아름다운 무당을 임자를 통해 의자왕에게 진상했다. 김유신의 스파이 공작이 절정에 달할 무렵 백제의 궁중에는 신라 간첩들이 우굴 거렸을 뿐 충신이라고는 계백장군 이외에 찾을 수도 없었다.
 
 이외에도 고구려 장수왕의 경우 즉위 63년째인 475년 9월에 3만 명의 병력으로 백제를 기습해 개로왕을 사로잡아 처형하고 수도 한산을 점령했다. 백제는 멸망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그런데 백제의 이 치욕스러운 패배의 이면에는 한 승려가 있었다. 그는 고구려가 치밀하게 준비한 백제 공략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 첩자였다.
 
 장수왕은 첩자를 모집했고 그는 승려의 신분으로 조국 고구려를 위해 첩자를 자원했다. 그는 죄를 짓고 고구려에서 도망쳐 온 것처럼 꾸미고 개로왕의 취미인 바둑으로 접근해 신임을 얻은 다음, 현란한 말솜씨로 각종 대형 토목사업을 부추겨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켰다. 개로왕은 말할 수 없는 후회와 함께 첩자 도림을 저주하면서 죽어갔다. 이 사건은 첩자 한 사람이 한 국가를 멸망의 문턱까지 몰고 갈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제는 과거 백제에서 있었던 것과 비슷한 장면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회장 손태수)는 한국의 청와대 비서관급 고위층과 군 장성들이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남북연합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교포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였고 국내에서는 한나라당이 긴급논평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뉴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첨차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내용의 뉴스가 최근 보도됐다. 얼마 전 끝난 2006년 국정감사에서 지난 2003년 8월부터 현재까지 관광, 답사, 대북지원 요원 등으로 북한을 방문한 현역군인이 무려 37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난 1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ㆍ합참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현역 군인 37명이 군사회담과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했으며, 군사회담에 참석한 8명을 제외하고 관광, 답사, 대북지원 요원 등 정부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군인 가운데 일부는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규정을 무시하고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군사회담 참석자를 제외한 29명 가운데는 금강산 당일관광 시범행사, 개성공단 현장 답사, 쌀. 비료지원 요원 등 군과 직접 관련 없는 행사 참석자도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중순 다른 부처가 주관하는 워크숍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육군 준장을 포함한 10여명의 ‘군 장성’들이 무더기로 개성을 방문, 개성공단과 시내를 관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현역장병, 사관생도 등 피교육생 등은 98년 12월 1일 제정된 금강산 관광여행 통제 지침에 따라 북한방문 및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군은 금강산 여행 통제 배경을 △금강산 방문 허용시 주적개념의 혼돈 등 정신전력 급속 와해 우려 △문제 장병이 현실도피 목적의 월북 수단 이용가능성 △주적개념·안보관 등 정치쟁점화 가능성 등을 들고 있고 평화협정 또는 불가침 조약 체결 전까지는 이런 지침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00년 6.15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6월 27일 국방부는 돌연 지침을 개정, 정부 공동행사 참석 등에 한해 장관이 승인한 경우에는 예외로 하여 방북을 허용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이, 분단이후 유지되던 군의 방북 금지령까지 일부 해제한 셈이다.
 
 그들은 왜 북한을 다녀왔을까? 김대중 정권 시절 군내부에 좌경 인물 즉 ‘새빨간 세력’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군 일선 지휘관들의 우국충정의 건의가 있었는데도 당시 국방장관은 이를 묵살했다. 특히 간첩교육을 받은 정규군 계통의 불순세력이 남한에 침투해 암약하고 있다는 정보기관의 내부보고가 있었음에도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 제대로 간첩을 잡았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북한을 다녀왔다는 37명의 현역 군인들에 대한 신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청와대 고위관계자들과 함께 북한을 넘나들면서 남북연합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던 바로 그 사람들은 아닐는지? 그렇다면 이들은 현대판 ‘임자’ 내지는 ‘조미곤’의 후예로 봐야 할 것이다. 국방부는 이들이 북한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행적을 낱낱이 공개해야 할 것이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