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즘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뇨, 왜요?" "그런데 왜 그렇게 외모에 신경을 쓰는 거냐?" 이다는 국내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시달리다 못해 주근깨 없애는 시술을 받았다 한다. 한국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더 뽀얘진 딸의 얼굴에서 일종의 정신적 공황을 발견한 거였다. 외국인들에게 정신질환으로 보일 만큼 우리의 외모 신드롬은 분명 도를 벗어나 있다. 명함판 사진 하나에도 당장 '얼짱' 또는 '비호감' 딱지가 붙는다.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판이 예외일 리 없다. 누가 뭐래도 최대 수혜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선거 때부터 늘 '이미지 정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긴 그도 억울한 게 많을 터다. 얼굴 잘생겼다고 정치 못하라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얼굴만 잘난 게 아니다. 정곡을 찌르는 언변, 여러 저서에서 보이는 글 솜씨, 변호사로서 다져진 판단력 등 당(唐)나라 이래 인재 등용 기준이었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고루 갖췄다. 그러나 달동네 집 장남으로 태어나 편입생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재조(在曹) 경험이 없는 변호사에, 초선 국회의원이 경력의 전부인 오세훈이 54일 만에 차기 대권 후보로 일컬어지는 서울시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 얼굴이 한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본인 역시 "여성계가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는 보도를 보고 섭섭하고 배신감을 느꼈다(5월 23일 여성정책 토론회)"며 '미남계'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정도는 후보 때의 일로 눈 감아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시정(市政)은 선거 이벤트가 아니다. 1000만 서울시민이 오 시장의 얼굴만 보면서 행복해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오 시장의 취임 일성은 조금 실망스럽다. "잃어버린 수명 3년을 돌려주겠다"던 큰소리의 본질이 고작 매연 줄이는 장치를 달지 않은 경유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는 것이었다면 허무하기까지 하다. 첫 삽이 규제와 부담의 네거티브 정책이란 말인가. 대중교통망을 확충하고, 대기오염의 주범인 버스나 트럭에 바이오디젤유 사용을 의무화하거나 저공해 시내버스(CNG)로 대체하는 등, 포지티브 대책을 기대했던 게 왠지 민망하다. 그런 기대가 이뤄진다 해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를 도쿄 수준으로 낮추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서울시 산하 시정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 교통체계 개선과 수도권 산업구조 개편까지 생각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첫마디가 그러니 100일 내에 공무원 조직 혁명을 이뤄내겠다는 것, 회식 술자리 문화를 가족과 함께 하는 초저녁 문화로 바꾸겠다는 것, 학교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 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 등도 구체적 대안이 없는 립서비스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공약(公約)을 정리할 때지 공약(空約)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잘못 뽑은 것 아니냐"는 성급한 우려마저 일부에서 나온다. 임기가 끝나가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정부 탓에 솥뚜껑 보고 지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많아서일 테지만 '이미지 시장'에 대한 불안도 여전한 게 사실이다. 갓 출범한 '오세훈 호'의 앞길에 재 뿌릴 생각은 없다. 반대로 젊고 잘생긴 시장이 참신하고 내실있는 행정을 펼치길 모든 서울시민과 함께 기대한다. 이럴 때 미국 네오콘(신보주수의자) 이론가인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치르는 부시 행정부를 지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눈 밝은 학자라면 정책을 수행할 인물의 면면을 헤아리지 않고 정책 제안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실수했다. 차라리 내 눈을 찌르고 싶다." 시민들이 손가락을 내려다 보며 이런 말을 하게 해선 안 된다. 이훈범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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