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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記者의 눈] 북핵, 미국에 달렸다

鶴山 徐 仁 2006. 7. 9. 12:58
2005-05-12
 
패트릭 휴스 중장은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정보 분석관이었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북한이 금창리 지하시설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렸다. 정보의 근거는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가 나간 것과 때를 같이해 의회와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의 보수파들은 북한이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고 들고 일어났다. 98년의 금창리 사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의 강경파들과 언론은 문제의 인공위성 사진이 찍힌 경위는 몰랐다. 북한 정부는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수천 명의 군인을 동원해 비밀리에 엄청난 공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북한은 일본열도 너머로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해 미국 본토에 미칠 대륙간탄도탄을 가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시늉도 했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클린턴 정부는 금창리의 현장 방문을 요구했다. 북한은 공짜로는 안 된다고 응수했다. 결국 미국은 북한에 3억 달러에 해당하는 식량 60만t을 주기로 하고 이듬해 5월 금창리 시설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무부는 금창리 지하시설은 텅 빈 동굴이었고, 그래서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98년의 금창리 사태는 이렇게 끝났다.

금창리 사태는 거인이 소인에게 깜빡 속아넘어간 한 편의 코미디였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한 한국인들의 안전을 볼모로 한 위험한 불장난이었다는 점에서는 희비극(喜悲劇=Tragicomedy)이기도 했다. 북한이 길주에서 지하 핵실험을 준비한다는 보도는 핵위기를 마침내 클라이맥스로 몰고 있다. 세계 여론이 들끓는데 고무된 북한은 8000개의 폐연료봉을 꺼내는 작업을 끝냈다는 발표까지 해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길주는 금창리의 재판인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인가. 아니면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에 따라 핵무장의 장정(長征)에 나선 것인가. 길주 소동은 외교적인 쇼일 수도 있고 핵무장의 공식 선포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라도 6자회담의 나머지 5개국은 6자회담을 살려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핵무장을 해버린 북한에 대응하는 데 드는 비용을 비교하면 우리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분명하다.

그러나 막연히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조지 W 부시의 손에 달렸다. 미국이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무슨 정책을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미 국교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로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게 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자기네가 핵을 포기하면 미국은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인권 개선을, 그 다음에는 재래식 병력의 감축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부시 정부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의 정권 교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이 핵포기의 대가로 받을 체제 보장과 경제적인 혜택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그들의 북한정책이 외교정책상의 가장 큰 실책이라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크리스토프는 북한이 클린턴 정부 때는 제로, 부시 정부 때는 6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레이니도 부시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6개 내지 8개의 핵무기를 만들 빌미를 제공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체념하기는 이르다. 길주가 금창리의 재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 직접 할 말은 소진됐다. 머지않아 북한을 방문할 후진타오(胡錦濤)의 북한 설득에 기대를 걸면서 한국은 부시 정부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인권 같은 새 조건을 달지 않고 체제 안전과 경제 지원을 제공할 청사진을 제시하도록 강력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6월 말이나 7월 초에 있을 노무현-부시 회담이 마지막 기회다. 꼭 그렇게 말은 안 해도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실패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희/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