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11 - 26절
22절 - 26절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누가복음 23장 20 -23절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빌라도는 로마 사람으로 주후 26년에 유대 나라의 총독이 되어 10년간 유대 나라의 총독으로 재직한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순진한 백성을 충동하여 무죄한 예수님을 끌고 와서 십자가에 사형을 시켜 달라고 고소를 하며 빌라도를 졸랐습니다.
명절에는 죄수 하나를 특별 석방시키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국경일이나 성탄절에 죄수들에게 감형의 은전을 나라에서 내려서 가석방을 시키기나 형량을 감해 주는 제도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에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죄수 바라바라는 사람을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죽여 달라고 소리 소리를 지를 때에 빌라도의 귀에는 세 가지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우리도 무슨 큰일을 결정할 때에는 이러한 세 가지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서 쿠바 사태로 소련과 전쟁을 하는가 마는가를 결정하는 단계에 얼마나 큰 고민을 하였던지 후에 농담으로 한 말이 “대통령이 왜 월급을 많이 받는지를 이유를 알았다”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빌라도에게도 예수를 앞에 두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세 가지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1. 빌라도 아내의 소리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9절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빌라도가 재판 석에 앉아서 예수님에 대하여 심문을 하고 있을 때에 빌라도의 아내가 급히 사람을 보내어 빌라도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 대하여 아무런 상관을 마십시오.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한 일을 영몽으로 빌라도의 아내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옳은 사람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는 옳은 사람이니 정죄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빌라도의 아내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의롭고 옳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이 알려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의 이름을 “크라우디 아프로그”라고 합니다.
빌라도의 아내의 소리, 의의 소리를 듣고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명심하지 않은 것은 큰 과오입니다.
“크라우디 아프로그”가 하나님의 지시함을 받아 남편에게 특별히 사람까지 보내어 예수님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재판에 관여치 말라고 말하였지만 하나님의 알려주는 소리를 무시한 빌라도는 결과적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가 되어 오늘날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주일마다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이름을 외우는 아주 비겁하고 어리석고 수치스런 사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큰일을 결정하기 전에 가까운 사람을 통하여 충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혹시 남자들이 아녀자의 소리라 하여 무시하여 버리면 빌라도와 같이 됩니다.
우리가 갈 길을 잘 알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에 아이들의 소리라도 잘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필자의 선친인 김성배 목사는 필자가 어렸을 때에 어린아이인 필자에게 일의 결정을 물어 봅니다. 어디로 이사를 하여야 하고 어느 교회의 청빙을 받아 들여야 하는가 하고 물어 볼 때 어린아이의 말을 존중하여 받아들여 빌라도와 같은 실수를 안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운 사람을 통하여 의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친구나 가족이나 설교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들려지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 양심의 소리가 들려 집니다.
누가복음 23장 1 - 4절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빌라도는 예수님을 직접 심문을 하면서 자기의 양심의 판단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죄가 없도다하는 양심의 판단의 결론을 말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양심은 예수가 죄가 없다는 것을 계속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양심의 소리를 관철하지 못하여서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양심의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은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를 어기면 결국 누구나 빌라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때에는 양심의 소리를 존중하고 양심을 따라 행동하여야 합니다.
수많은 군중의 소리를 듣고 자기의 명예와 지위에 손해가 올까 보아서 양심의 소리와 하나님의 들려주는 음성을 무시하여 버리는 빌라도와 같은 때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눈에 보이는 권력이나 재물이나 나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음성,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여 버릴 때에는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15절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우리는 하나님에게 만족을 주면서 살아갈 때에 옳은 판단과 옳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이지 대중에게 만족을 주고 무리에게 만족을 주는 목표를 가지고 목회를 하가니 세상일을 한다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정의는 다수가 정의가 아니고 군중이 정의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正義이시고 의로우신 분임으로 하나님을 만족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9장 12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 (히브리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 석에 앉았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가이사의 충신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음성,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양심의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을 합리적으로 어긴 것을 피하여 보려고 꾀를 섰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4 -25절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빌라도는 물을 떠다 놓고 하나님의 음성과 양심의 소리를 어긴 죄를 면하여 보려고 손을 씻으면서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할 때에 예수를 죽인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라고 말하였습니다.
역사적인 결과로 이 말이 그대로 응하여 십자가의 사건이 있은 후 40년도 안되어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대장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망하면서 성전이 불타면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죽었고 1900년 후에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하여 그들의 자손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3. 군중들의 소리가 들려 옵니다.
23절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우리도 무슨 일을 결정하려 할 때에 직접 육신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지는 육신적인 감각에 의한 소리가 들려 지는 것입니다.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재촉하는 소리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급히 결정하여 실수를 하게 하려는 수단입니다.
빌라도는 죄인 바라바는 놓아주고 의로운 옳은 사람 예수를 죽여 달라는 백성들의 재촉하는 소리에 그만 깊은 사려를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과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저들의 요구에 응하고 애수를 죽이라는 최후의 결정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양심의 소리나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세상 소리만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빌라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이 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지루하고 새벽에 깨어서 기도하면서 묵상하며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연속극의 소리나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소리를 무시하고 세상 무리의 소리를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결말을 빌라도의 경우에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4장 3 -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멸망하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하고 귀를 진리에 기울이지 않고 살다가 결국 저들이 멸망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들려지는 세 가지 음성을 잘 분별하고 살다가 주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빌라도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 양심의 소리를 존중하고 그 방향으로 항상 결정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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