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비교. 통계자료

교육인적자원부의 여전한 ''갑'' 행세

鶴山 徐 仁 2006. 2. 9. 11:46
글쓴이 : 신창운 ( scw1309 )  글 올린 시간 : 2006-02-08 오후 12:2
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1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보도자료를 통해 강조하고 있고 언론에서 제목으로 뽑고 있는 내용은 아래 네 가지입니다.

대입 관계자 85.5% “학생부 신뢰도 제고를 전제로 입시반영 비율 높이겠다”
교사 80.6% “고2 성적 부풀리기 개선됐다”
고1 학생 53.6% “수업태도 좋아졌다”
응답자 70% 이상 “학업성적관리 공정성 대폭 높아졌다”

학생부 신뢰도 나아지면 반영비율 높이는 것은 당연

이해관계자 여론을 대입제도 개선안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에 대해선 공감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정확한 여론을 수렴 발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못한 조사를 통해 수집한 여론이 아무리 호의적이라고 주장해봐야 오히려 교육부의 신뢰만 떨어뜨릴 뿐입니다.

우선, “학생부 신뢰도가 나아지면 입시반영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은 여론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질문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학생부의 신뢰도가 높아진다는데 입시반영 비율을 높이지 않겠다고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현상을 질문한 뒤 높은 응답률을 홍보하는 것은 Social Desirability(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을 묻는 방식)의 전형적 사례에 해당합니다.

교사 5명 중 1명이 “고2 성적 부풀리기 개선됐다”는 조사결과도 비슷합니다. ‘성적 부풀리기’의 직접 당사자에게 그것이 개선되었느냐고 물었는데, 과연 어떤 응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설마 성적 부풀리기 관행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엉뚱한’ 답변을 예상하진 않았겠죠. 마치 작년 교원평가제 논란 시 ‘교원 80%, 교원평가제 형식화 우려’라는 조사결과와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고1 학생 절반 이상의 수업태도가 좋아졌다”는 조사결과는 전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중학교 시절에 비해 수업태도가 좋아졌다는 응답이, 그것도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는 조사결과가 과연 교육부에서 홍보해야 될 내용입니까.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은 고등학교 입학 후 학교 수업태도가 중학교 시절과 비교하여 좋아졌나요? 아니면 나빠졌나요?”

세련되지 못한 조사방법도 문제

질문내용 뿐 아니라 조사방법 측면에서도 허술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고등학생 표본의 경우, 지역별 할당 후 무작위 추출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학교 학원가 출구조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학교 및 학원가 출구조사를 통해 어떻게 무작위 표본추출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학업 성적관리 공정성 질문의 경우, 조사대상 집단 공히 70% 정도가 공정하다고 응답했는데 고2 학생들은 53%가 공정하다고 답했습니다. 보고서를 살펴보니 고2 학생과 교사에게만 ‘비슷하다’는 중간 응답이 있더군요. 그런데 학생들은 37% 가량이 ‘비슷하다’고 답했는데, 교사들은 중간 응답이 0%였습니다.

동일한 내용(성적 부풀리기 개선 여부)을 두 번 질문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번의 질문에 대한 응답결과가 공교롭게도 소숫점 이하 첫째 자리까지 동일한 것도 의문입니다. 교사(N=510)를 대상으로 동일 내용을 묻고 있는 두 번의 질문에서 성적 부풀리기가 개선되었다는 응답은 공히 80.6%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성적 부풀리기 개선 여부를 묻고 있는데, 질문과 응답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교에서 ‘성적 부풀리기’가 개선되었다고 생각하세요? 혹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매우 개선되었다 33.1
어느 정도 개선된 편이다 47.5
비슷하다 15.3
별로 개선되지 않은 편이다 3.5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0.4
모름/무응답 0.2

두 번째 질문은 2004년 대비 성적 부풀리기 증감 여부를 묻고 있는데, 질문과 응답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재 고2 학생들의 성적을 볼 때 2004학년도에 비해 학교 현장에서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줄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더 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매우 줄었다 36.7
약간 줄은 편이다 43.9
비슷하다 17.6
약간 늘어난 편이다 1.0
매우 늘었다 0.4
모름/무응답 0.4

교육부는 15년 전에도 '갑'이었다

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 명칭이 아마 문교부였을 때로 기억합니다. 90년대 초반 쯤이었는데, 당시 논란이 되었던 과외 금지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국갤럽에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부분 금지 부분 허용’ 응답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관철시킨 적이 있습니다. 교육부가 용역을 의뢰한 고객, 즉 ‘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이번 여론조사의 질문내용이나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15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부가 여전히 ‘갑’ 행세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용역을 수행하는 조사기관은 (‘갑’의 지시나 요구에 충실한) ‘을’에 불과할 뿐이고요. 조사 잘못이나 책임이 전적으로 ‘갑’에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과 책임의 상당 부분이 ‘갑’에 의해 초래되는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