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펌] 이순신 장군님 vs 넬슨

鶴山 徐 仁 2005. 12. 27. 03:30

<이순신과 넬슨의 비교>

 

저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란 책을 출판한 비봉출판사의 대표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글을 올립니다.

(*사실 이 글은 11월 11일에 올려서 12,000명 이상의 네티즌들이 방문하여 읽고 또 많은 추천과 댓글을 달아주셔서 최신추천수 베스트 2위에 올라 있었는데, 댓글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서투른 컴퓨터 실력으로 <삭제> 키를 누르는 바람에 그만 삭제되어 버렸기에 다시 올립니다.)

 

저 자신도 이순신 장군에게 매료되어 그분의 삶과 당시의 역사적 배경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충무공 전서>와 <선조실록>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서들을  조사, 번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임진왜란은 일본 전체와 이순신 장군 혼자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에서 이순신 장군께서 승리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누가 일으켰느냐.  선조와 그 아래 있던 조정의  대신들이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누가 적을 막아냈느냐.  이순신 장군 혼자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본의 한 부족으로 편입되지 않고 독립된 조선인으로 남을 수 있게 된 것은 누구의 덕택인가. 

전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덕택입니다. 

 

오늘은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1905년에 발표한 <이순신전>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과 영국 해군 제독 넬슨을 비교한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원래 고어체와 한문투로 쓰여진 글이어서 지금 이 글을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제가 직접 현대문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력과 일본의 국력을 아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의 자료는 <선조실록>에 나오는 당시 영의정 이항복이 선조 임금에게 보고한 내용과, 

일본에 붙잡혀갔다가 돌아온  강항(姜沆)이란 분이 쓴 <간양록(看羊錄)> 이란 책과,

<선조실록>에 나오는 이시발(李時發)이란 사신의 보고에 기초한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1년간 세수는 쌀 40만섬이었는데, 조선 전체의 군사들을 먹이고 급료를 주는 데,

즉 당시의 국방비로 쓴 것은 모두 합해야 겨우 4만섬이었고, 궁중 연회비로 쓴 것이 5만 섬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라좌수영 휘하 수군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인적, 물적 자원은 조선 전체가 아니라 전라남도의

보성, 순천, 흥양, 낙안, 광양 등 바닷가의 다섯 고을에서 나는 군량이나 물자, 그리고 사람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임진왜란중에는 이곳에서  나오는 쌀과 군량미까지  조정과 육군 쪽으로 공급해야 했고, 

그곳의 장정들을 육군 쪽으로 차출해 갔습니다. 


할 수 없이 이순신 장군은 떠돌아다니는 거지떼들을  끌어모아 수군의 군사로 충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기력이 쇠잔하여 한두번의 싸움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나갔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장군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리고 전함과 대포를 비롯한 모든 무기들도 이 다섯 고을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는 물자로 자체 조달해야 했습니다.


이에 반해 일본의 경우는, 한 작은 성주의 일년 세수도 조선 전체의 세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조선에 파병나온 장수들의 녹봉을 보면,  고니시 유끼나까(小西行長)의 녹봉이 년 4만 섬이 넘었고,

당시 조선에 원정나온 장수들 중에서 가장 젊은 장수 안국사(安國寺)의 녹봉은 년 9만 섬이었습니다.

당시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관할 지역의 일년 세수는 150만 섬이 넘었습니다. 

말하자면, 조선의 국력보다 10배도 더 되는 일본 전체의 수군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극히 작은 일부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전쟁 전체의 흐름과 승패를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 혼자였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이순신 장군께서는 몰려오는 수백 척의 왜적의 전선들을 앞에 두고,

겨우 깨어지다가 만 12척의 배와 160여 명의 패잔병들을 모아놓고서도, 당당하게 임금에게 장계하기를,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적의 배가 비록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신이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臣若不死, 敵不敢侮我也)"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자신감이며, 당당함이며, 위안입니까.

이순신 장군의 이러한 자신만만한 소리를 인민들은 전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에,

불과 두 달 전 원균을 따라갔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당하다시피 하고 겨우 살아남은 패잔병들에게도

패전의 악몽을 떨쳐버리고 다시 힘을 내어 싸울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이순신전>에 나오는

<이순신과 넬슨 제독의 비교>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순신과 넬슨의 비교>



내가 일찍이 국내외의 고금의 인물들과 이순신을 비교해 보았더니,

국내에서는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난리 때에 나아가 큰 난리를 평정한 것이 이순신 장군과 같으나, 

적은 군사로 많은 대적을 쳐서 이긴 신통한 모략에서 그는 장군만 못하였고,

정지가 해전을 잘 하여 왜적을 소탕한 것이 장군과 같으나,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열성에서는 장군만 못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의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나라 일에 이바지한 곧은 충성심과

큰 절개(貞忠大節)는  장군과 같았으나,

수십 년 동안 한 나라의 정승으로 있으면서 나라의 모든 권리를 손안에 쥐고 있으면서도

결국 옛 도읍을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성공함은 장군만 같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 충무공은 결국 누구와 같다고 해야 할까?

근년에 어느 한 선배가 영국의 해군 제독 넬슨(Nelson)씨를 이 충무공과 짝을 지어 말하기를

“고금을 통하여 수군에는 동(東)과 서(西)에 두 영웅이 있었을 뿐이다.”

라고 하였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과연 누가 낫고 누가 못한지 비교하여 한 번 평론해 보고자 한다.


대체로 이 충무공의 이력에는 넬슨 씨와 같은 점이 많은데,

단지 그 해전에서의 뛰어난 능력만 같았을 뿐 아니라 세세한 일까지도 같은 것이 많았다.

초년에는 그 이름이 별로 나지 않아서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같고,

초라한 미관말직(微官末職)으로 여러 해 동안 침체(沈滯)해 있었던 점이 같고,

수군의 명장이지만 그 첫 번째 성공은 육지에서의 전투로 시작하였던 점이 같고,

일차 육지에서의 전투 후에는 수군으로 옮겨서 생애를 마칠 때까지 다시 육지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 같고,

여름 더울 때에 전장에서 더위를 먹어 건강이 나빠져 위태롭게 지냈던 점도 같고,

탄환에 여러 번 맞고도 죽지 않았던 점이 같고,

끝내 적의 전함을 다 쳐서 함몰시킨 후에 승전고를 울리고 개가를 부를 때에 탄환을 맞아 죽었던 점도 같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한 열성도 같고,

맹세코 적과 더불어 한 하늘 아래 같이 살지 않겠다고 한 그 뜨거운 마음도 같고,

그 대적하던 적이 강하고 사나웠던 점도 같고,

그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던 점도 같으므로,

과연 이 충무공과 넬슨을 서로 같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그때에 영국의 형세가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으며,

그때에 영국 군사의 힘이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고,

당시 영국에서 군사를 거느린 장수의 권한이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으며,

당시 영국의 전쟁 및 방어 능력이 우리나라 임진년 시절과 비교하면 어떠하였는가?


당시 영국인들은 수백 년 동안 열강의 여러 나라들과 경쟁하던 끝이어서 전쟁에 익숙해 있었고

오랫동안 전쟁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인민들도 적을 미워하는 사상이 넉넉하여,

사람마다 적을 대함에 있어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에, 영웅이 그들을 쓰기가 쉬웠으며,

나라의 금고에는 수억 만 파운드의 재정이 있어서 군비가 결핍되지 않았으며,

기계공장에서는 수백 대의 대포를 제조하여 무기를 계속 공급할 수 있었고,

각 부대의 병졸들은 편히 앉아서 죽는 것을 즐기지 않고 모두들 한번 싸우기를 원했으며,

각 항구에 있는 큰 배들은 비록 값은 받지 못하더라도 전장에서 한 번 시험 삼아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정에서는 전심전력으로 군비의 수요를 충당해 주었으며,

전국의 인민들은 침식을 전폐하고 군중에서 승첩의 소식이 오기를 기도하였으니,

그러므로 넬슨은 아무런 깊은 지모(智謀)와 원려(遠慮) 없이 다만 뱃머리에 높이 앉아 휘파람이나

불고 있더라도 성공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와 같지 않았다.

군량이 완전 바닥이 난 상태에서 자신이 그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누가 준비하며,

무기라는 것들이 모조리 낡아빠지고 둔한 것들이니 자신이 무기를 직접 새로 만들지 않으면 누가 만들며,

군사들은 이렇게 숫자도 적고 힘도 쇠약하니 자신이 직접 군사를 모집하지 않으면 누가 모집하며,

배들의 운행이 이렇게 느리고 둔하니 자신이 이것을 개량하지 않으면 누가 개량할 것인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전쟁하고, 한편으로는 둔전(屯田)을 만들어 군량을 저축하고,

철을 캐어 병기(兵器)를 만들고, 배를 만드는 일에 골몰하느라 틈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동료인 원균(元均)과 같은 자들의 시기와 모함을 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정의 여러 간신배들의 참소(讒訴)함을 입었으니,

아, 나는 생각건대, 넬슨이 만약 큰 적이 자기 나라를 이미 거덜 내버린 때를 당하여,

이순신과 같이 여러 가지 곤란을 당하였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는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라 할 것이다.


더욱이, 마지막에 원균이 패전하여 조선 수군을 몽땅 잃어버림으로써, 이순신이 육칠년 동안 노심초사하여

교련해놓은 날랜 장수와 건장한 군사들, 군량과 배들을 한꺼번에 모두 화염 속에 쓸어 넣어버렸으며,

그 후에 겨우 십여 척의 깨지다 만 배와 1백6십 명의 새로 모집한 군사로써

왜적의 장수들인 모리휘원(毛利輝元)과  평수가(平守家)와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가등청정(加藤淸正) 등을 만나서

바다를 덮어 오는 수천 척의 적선과 더불어 서로 싸우려고 할 때, 그는 당당하게 조정에 대하여 말하기를,


“적선이 아무리 많더라도, 신이 살아있는 한 적들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바다로 나아가 한 번 큰소리로 호령하자 물고기와 용들이 그의 위엄을 도왔고,

하늘과 해가 빛을 잃었으며, 참담한 도적의 피로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으니,

이렇게 한 것은 오직 충무공, 오직 이(李) 충무공뿐이다.

이 충무공 외에는 고금의 수많은 명장들을 다 모아놓고 보더라도 이 일을 능히 해낼 수 있을 자 --

실로 없을 것이다.



아! 저 넬슨이 비록 영무(英武)하다고는 하나 만일 오늘날 20세기에 서로 대등한 전함과 무기로

해상에서 이순신과 서로 만난다면, 이들 둘의 차이는 필경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면, 세계에서 수군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말할 때는 모두 넬슨을 먼저 꼽아 말하며,

영웅을 숭배하는 자는 반드시 넬슨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역사 기록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넬슨의 전기(傳記)를 말하며,

군인의 자격을 양성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넬슨의 이름을 외우고 넬슨의 자취를 사모하는바,

그리하여 생전에는 영국 한 나라의 넬슨이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만국의 넬슨이 되었으며,

생전에는 유럽 한 지역의 넬슨이었으나 사후에는 6대주(大洲)의 넬슨이 되었다.


그러나 이 충무공은 중국의 역사서에 그 싸우던 일이 약간 기록되어 있고, 일본에서 그 위엄을

두려워할 뿐, 그 외에는 본국의 나무하는 아이들(樵童)과 소 먹이는 아이들(牧豎)의 노래 마디에 오를 뿐이며,

세계에 전파되어 알려질 만한 역사로는 철갑선을 창조한 한 가지 일에 지나지 못하니,

아! 영웅의 명예는 항상 그 나라의 힘을 따라서 높아지고 낮아짐이로다.


무릇 수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었고 철갑선을 창조한 나라이면서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저 해군이 가장 강한 나라(英國)와 비교되기는커녕 끝내 나라의 명색조차

없어질 지경에 빠졌으니, 나는 저 수백 년 이래 백성의 기운을 꺾고, 백성의 지식을 막고,

거짓된 정치(文治)의 사상을 주입시켰던 비루한 정치객의 여독(餘毒)을 생각하면 한(恨)이 바다처럼 깊어진다.


이에 <이순신전>을 지어 고통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널리 전하여 읽히도록 하는 바이니,

무릇 선남선녀는 이것으로 모범을 삼기 바란다.

하느님께서는 20세기 태평양의 둘째 이순신을 기다리고 계시느니라.」



 
출처 : 블로그 > 프리윌 하늘을 날다 | 글쓴이 : 프리윌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