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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탑과 타워 (11): 금자탑(金字塔)의 발음

鶴山 徐 仁 2005. 12. 26. 18:19

 

에집트 사람들이 '메르(m.r.)' 혹은 '페르네테르(p.r.n.t.r.)'라고 이름 붙인 것을, 그리스 사람들은''퓨라미스(pyramis)'라고 불렀고, 요즘 잉어권에서는 그걸 '피라미드(pyramid)'라고 부릅니다.

 

중국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진쯔타(金字塔)'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 한자어를 그대로 들여다가 한국식 한자음으로 '금자탑'이라고 읽습니다.  지금은 다시 잉어로 돌아가서 '피라미드'라고 부르며, '금자탑'은 '불후의 명작'이라는 비유적인 어법으로만 주로 씁니다.

 

한국말 '금자탑'이 '불후의 명작'이라는 비유적인 뜻으로만 주로 사용되기에 이른 데에는 그 낱말의 발음 변화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금자탑'을 너나없이 /금자탑/이라고 읽으니까요.

 

그러나 '금자(金字)'만 따로 읽어보라고 하면 /금짜/라고 읽습니다.  '한자(漢字)'를 /한짜/라고 읽고 문자(文字)를 /문짜/라고 읽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글자 다음에 붙어 나오면 자(字)자의 발음은 /짜/가 된다는 음운규칙 때문입니다.  이런 음운 현상을 '경음화,' 또는 '된소리 되기'라고 부르지요.

 

사실 한국 <표준어 규정>의 제2부 <표준 발음법>에 나오는 '경음화' 혹은 '된소리 되기' 규칙이 아주 허술하기는 합니다.  <표준발음법> 6장 26항에 보면 한자어의 경음화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그 전문이 이렇습니다.

 

제26항 한자어에서, 'ㄹ' 받침 뒤에 연결되는 'ㄷ, ㅅ, ㅈ'은 된소리로 발음한다.
갈등[갈뜽]   발동[발똥]   절도[절또]   말살[말쌀]
불소[불쏘]   일시[일씨]   갈증[갈쯩]   물질[물찔]
발전[발쩐]   몰상식[몰쌍식]   불세출[불쎄출] 

 

다만, 같은 한자가 겹쳐진 단어의 경우에는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다.

허허실실[허허실실](虛虛實實)    절절-하다[절절하다](切切-)

 

한자어 경음화 규칙은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리을(ㄹ)'받침 뒤의 '디귿(ㄷ), 시옷(ㅅ), 지읒(ㅈ)'이 된소리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자어의 경음화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런 규정에 따라서 '효과(效果)'를 /효꽈/로 발음하던 관행까지도 /효과/로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일부 방송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효과 있는 시책은 아닌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문제는 이 한자어 경음화 규정이 그것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국립국어연구원에 의해서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원은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야심작을 내놓았습니다.  옛말과 각 사투리, 전문용어는 물론 북한말까지 수록해 놓은 아주 방대한 사전이지요.  쪽수가 7,300쪽이 넘으니까 이미 있던 대사전들과 비교해도 두 배 가까이 됩니다.  1992년부터 약 8년 동안 500여 명의 인원이 편찬에 참여했고, 총 112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사전입니다.

 

이 사전이 자랑하는 것이 많지만 그 중의 한가지가 '원칙만 정해 놓았던 <표준어 규정>을 각 표제어와 예문에 일일이 적용해서 확정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국립국어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이야말로 우리 나라 국어사전의 결정판이라고 할만 한 것이지요.

 

그러나, 다른 점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경음화에 대해서만은 불분명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은 <표준 발음법> 6장26항을 바탕으로 해서 '불필요한 경음화'를 억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음화인 경우에는 사전 표제어 바로 다음에 발음을 밝혀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발음을 따로 밝히지 않은 한자어는 경음화 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 정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경음화 규칙만큼은 이 사전에 그다지 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글자 자(字)자가 들어간 표제어를 몇 개만 예로 들어보지요.

 

국자03 (國字) [-짜]
문자02 (文字) [-짜]
한자02 (漢字) [한ː짜]
한-문자02 (漢文字) [한ː-짜]
금자04 (金字)
은자03 (銀字)

 

여기에 든 예에서는 '금색 혹은 은색으로 된 글자'라는 뜻인 금자(金字)와 은자(銀字)에서만 경음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경음화를 일으킨 발음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국자'와 '문자'와 '한자'와 '한문자'에 적용된 경음화는 앞에서 밝힌 <표준어 규정>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리을 뒤에 따라오는 지읒'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스스로 무시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예외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문자'나 '국자'나 '한자'를 발음하는 데에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짜/와 /국짜/와 /한짜/로 발음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편화된 발음이라는 말입니다.  규칙도 규칙이지만 이미 그만큼 널리 쓰이고 있는 발음을 명시해야 하는 것도 국어사전의 임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외규정을 두는 데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금자'와 '은자'의 발음이 바로 그 예입니다.  요즘 '금자'나 '은자'라는 말이 자주 쓰이지 않기는 합니다만, 뜻을 알려주고 그 낱말을 발음해 보라고 하면 너나없이 /금짜/나 /은짜/라고 하지 /금자/나 /은자/라고 소리내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글자 자(字)'가 들어가는 한자 합성어의 '자' 자는 고유어나 한자어를 막론하고 /짜/로 발음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는 어쩌면 자(字)자의 한자음 사성과도 관련돼 있는 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에서 '기역자'는 /기역짜/로 소리납니다.  '거기에는 쇠 금(金)자를 쓰세요'라는 예문에서도 /쇠 금짜/라고 발음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금자(金字)를 /금자/로 읽으면 거기에 나오는 '자'자가 '글자 자'라는 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금짜/라고 읽어야 '아, 쇠 금자를 말하는군'하고 알아듣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글자 자'가 뒤에 붙은 한자어에서는 그 '자'의 발음은 예외없이 /짜/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표준국어대사전>은 '금자(金字)'와 '은자(銀字)'에서만 경음화를 적용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시험 삼아 이 사전이 직접 예문으로 내놓은 "금자를 박다"와 "은자가 새겨진 기념패"라는 구절을 한번 읽어보시지요.  거기에 나오는 '금자'와 '은자'가 /금자/나 /은자/로 읽혀지십니까?  저는 암만 읽어도 /금짜/와 /은짜/로 읽게 됩니다.  /금자/는 그냥 여자 이름처럼 들리고, /은자/는 '숨어사는 사람(隱者)'이라는 뜻이 자꾸 떠오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자탑'의 경우는 아주 독특한 예입니다.  글자 자(字)가 뒤에 붙은 말 치고 언중들이 /짜/로 발음하지 않는 말로는 금자탑이 유일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금자탑'을 /금자탑/으로 읽으면 듣기만 해서는 그 낱말의 본래 뜻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금짜탑/이라고 읽으면, '아, 탑인데, /금짜/ 모양의 탑인가 보다'하고 금방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자탑/이라고 읽으니까 '금과 관련이 있기는 한데, 그게 무슨 탑일까'하고 생각이 모호해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쓰이는 맥락에 따라서 그냥 '불후의 명작'이라는 간접적/파생적인 뜻으로만 이해되기에 이른 것이지요.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금자탑'은 /금짜탑/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국립국어연구원이 추구하는 '불필요한 경음화를 없애자'는 주장을 반박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말이 순화될 수 있다면 저도 좋겠습니다.  다만 이미 보편화된 말을 억지로 규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저 한국 언중이, 피라미드를 가리켰던 '금자탑'의 본래 뜻을 잊어버리고 '불후의 명작'이라는 파생적/간접적인 뜻으로만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아마도 그 한가지 이유는 '금자탑'의 발음이 /금짜탑/이 아니라 /금자탑/으로 굳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 언중 사이에 보편화된 '글자 자(字)'자의 발음(/짜/)에서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자탑의 '금자'로 '쇠 금자'를 연상하지 못하게 됐을 것입니다.  금자탑이라는 말이 생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 '쇠 금자'에 담겨 있는데 그게 사라지니까 전체 뜻이 모호해져 버린 것이지요.

 

금자탑의 발음이 왜,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굳어졌는지 알아내려면 아마 꽤 어렵고 복잡한 조사가 필요하겠습니다만, 그건 음운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어학자들이 풀 숙제이겠지요.

 


평미레/
조정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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