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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탑과 타워 (10): 피라미드와 금자탑

鶴山 徐 仁 2005. 12. 26. 18:19

 

두 차례에 걸쳐서 세계7대 불가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서 '엉뚱한 일'도 많이 했습니다만, 7대 불가사의는 지금도 경이롭습니다.  그 중에서도 피라미드는 불가사의의 챔피언 격이지요.  인류가 만든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도 규모가 엄청나고 아주 정치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말과 한국개념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고 궁금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금자탑'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금자탑이 바로 피라미드입니다.  중국사람들이 피라미드를 '찐쯔투(jin zi tu)'로 번역해서 쓰던 것을 우리는 그걸 빌어다가 한국 한자음으로 읽어서 '금자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피라미드의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피라미드의 원래 이름은 '피라미드'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메르(mr)'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고 '페르네테르(pr.ntr)'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습니다.  '메르'는 '올라간다'라는 뜻으로 죽은 왕을 피라미드에 묻으면 그 영혼이 올라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해석됐습니다. 

 

한편 '페르네테르'는 '집'이라는 뜻의 '페르'와 '자연/에너지'라는 뜻의 '네테르'가 합쳐진 말인데, 그러면 피라미드는 왕의 묘지가 아니라 자연의 에너지가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피라미드의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모양입니다.  그 이름에 따라서 피라미드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 어째서 우리는 '메르'나 '페르네테르'를 '피라미드'라고 부르게 됐을까요?  그것은 이집트에 관한 연구가 모두 서유럽에서 시작됐기 때문이고, 서유럽인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문헌 자료가 모두 그리스어로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르' 혹은 '페르네테르'의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처음 기록에 남긴 사람들은 그리스인들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에 피라미드에 대한 기록을 처음으로 남긴 헤로도투스나 기원전 3-4세기에 피라미드를 비롯한 7대 불가사의를 정리한 비잔틴의 필론(Philon of Byzantine)이나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 도서관장이던 칼리마쿠스(Callimachus of Cyrene), 그리고 기원전 2세기에 다시 한번 7대 불가사의를 정리한 시돈의 안티파테르(Antipater of Sidon)는 모두 그리스인들입니다.

 

이들 그리스인들은 (특히 그 말을 처음 기록에 남긴 것으로 여겨지는 헤로도투스는) '메르'나 '페르네테르'라는 이집트 말을 외래어로 그냥 채용하지 않고 나름대로 번역해서 새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게 바로 '퓨라미스(pyramis)'입니다.  

 

퓨라미스는 불이라는 뜻을 가진 '퓨르(pyur)'와 중심이라는 뜻의 '미스(mis)'의 합성어입니다.  '퓨라미스'는 이집트 이름 '메르' 보다는 '페르네테르'의 뜻을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가 모인 집'이 '불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의역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퓨라미스'는 현대 그리스어에서 '퓨라미다(pyramida)'로 변했는데, 잉어권에서는 이를 피라미드(pyramid)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요즘은 '메르'니 '페르네테르'라고 하면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고대 헬라어식으로 '퓨라미스'나 현대 헬라어식으로 '퓨라미다'라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 잉어식 표현인 '피라미드'라고 해야만 알아듣기에 이른 것이지요.

 

그런 현상은 요즘 한국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예컨대 프랑스인 종교개혁가 '쟝 칼뱅'을 '존 칼빈'이라고 부른다든지, 나라 이름 '에스빠냐'를 '스페인'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그런 겁니다.  요즘 하도 잉어가 판을 치다 보니까 프랑스 이름이나 에스빠냐 이름조차도 잉어식으로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힘이 지식을 좌우합니다.

 

아무튼 '메르/페르네테르,' 혹은 '퓨라미스/피라미드'를 중국사람들은 '금자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피라미드를 금자탑으로 번역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피라미드를 옆에서 보면, 어느 방향에서 보나, 그 모습이 삼각형 네 개를 맞붙여 놓은 꼴입니다.  그래서 피라미드의 네 옆면은 모두 거대한 삼각형이지요.  중국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옆면을 이룬 거대한 삼각형이 한자 쇠 금(金)자를 닮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금(金)자(字)를 닮은 탑(塔)'이라는 뜻으로 '금자탑(金字塔)'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실 이런 식의 번역은 중국어에서도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중국사람들이 외래어를 번역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뜻을 옮기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전기로 작동되는 두뇌'라는 뜻으로 '띠엔나오(電腦)'라고 부르거나 '인터넷'을 '서로(互) 연결된(聯) 그물(網)'이라는 뜻으로 '후리앤왕(互聯網)'이라고 옮기는 것이 바로 이 방식입니다.  컴퓨터 '파일'을 '문건(文件)'이라고 한다든지, '커맨드'를 명령(命令)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뜻을 번역한 것의 예가 됩니다.

 

두 번째는 소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주로 고유명사를 옮길 때는 이 방식을 씁니다.  그래서 메국의 수도 워싱턴을 화성돈(華盛頓)이라고 쓰지만 그 중국식 발음은 '후와싱두안' 쯤 되어서 원래 발음인 '워싱턴'에 그나마 근사하게 됩니다.  앞에서 본 도이치 사람 파렌하이트의 이름을 활런하이(華倫海: hua4-lun1-hai3)라고 번역하거나 스웨덴 사람 셀시우스의 이름을 쉐얼쓰(攝爾思: she4 er3 si2)로 번역한 것도 소리를 옮긴 번역어인 것이지요.

 

물론 한 단어를 번역할 때에 소리 옮김과 뜻 옮김을 합성해서 사용한 것도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 사람들은 인터넷을 '인터왕(因特網)'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원인(因)이라는 말과 특별(特)하다는 말은 '인터넷'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인터(inter)'라는 발음을 흉내내기 위해서 인터(因特)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거기다가 뜻을 옮긴 왕(網)을 합쳐서 '인터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뜻 옮김과 소리 옮김을 절묘하게 활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코카콜라를 옮긴 '커우코커울러 (可口可樂)'이 바로 그것입니다.  소리를 옮기기 위해서 유사한 음절의 한자를 동원했지만 다 합쳐놓고 읽으면 '가히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뜻도 됩니다.  이렇게 중국인들이 외국어를 옮길 때는 동음이의어가 많은 한자들을 동원해서 뜻도 근사해 지도록 번역어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그러나 피라미드를 금자탑이라고 옮긴 것은 뜻 옮김도 아니고 소리 옮김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모양을 옮긴 번역어이지요.  한자가 상형문자라서 가능한 번역방법입니다.  피라미드의 외형이 한자 금(金)자와 유사하다는 데 착상한 기발한 번역이지요.  그래서 피라미드의 형태가 활용된 개념, 예컨대 '음식 피라미드'나 '피라미드식 판매'같은 말도 중국에서는 '음식 금자탑'과 '금자탑식 판매'라고 부릅니다.  형태가 삼각꼴이나 삼각형으로 생긴 것을 금자탑이라고 부르는 것이 변용된 것이지요.

 

중요한 개념이나 번역어를 중국어에서 가져다가 그걸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는 버릇이 있는 한국어에서 '금자탑'이라는 말을 그대로 빌어온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요즘 한국어 사전을 보면 어떤 사전이나 '금자탑'의 뜻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뜻이 '피라미드'이고, 두 번째 뜻은 '후세에까지 빛날 훌륭한 업적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요즘 한국어에서는 금자탑이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말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게 사전의 '첫 번째' 뜻인데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금자탑이 피라미드의 번역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전을 찾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일인데다가, 사전을 찾아보더라도 어째서 금자탑이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한국어 '금자탑'은 두 번째의 뜻, 즉 '후세에 남을 훌륭한 업적'이라는 파생된 뜻으로만 주로 쓰입니다.  아마도 한자와는 달리 음성문자인 한글로는 '피라미드'를 훌륭하게 음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라미드'라는 더 정확한 직접적인 음차어가 있는데 굳이 중국어를 거친 간접적이고 덜 정확한 음차어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습니다.

 

한국어에 '금자탑'이라는 말이 유입된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기록에 보면 적어도 고종2년(1865년) 경에는 이미 금자탑이라는 말이 사용됐습니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입니다.  그때 삼척 사금산 불경곡에서 베어낸 황장목을 한양으로 옮겨가 경복궁의 기둥과 서까래로 썼습니다.  이 황장목이 직경이 6자나 되고 길이가 60여자나 되는 나무라서 약 3백여명의 장정들이 70리길을 옮기는데에 보름 이상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목재를 베어내고 운반할 때에는 일꾼들의 신명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 불렀던 노래로 <도끼질 소리>와 <목도꾼 소리>가 있습니다.  <목도꾼 소리>의 마지막 부분에 '금자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두 노래가 모두 길기 때문에 <목도꾼 소리>의 일부만 적어 놓아 보겠습니다. 

 

여러분네 일심 동력 (후렴:웃야호호)/
앉았다가 일어서며/ 고부랑곱신 당겨 주오/
낭그는크고 사람은 적다/
엿차소리 낭기간다/ 마읍골에 낭기간다/
한치두치 지나가도/태산 준령 넘어간다/
앞줄에는 김장군이/뒷줄에는 이장군이/
여기 모인 두메 장사/심을네어 당겨 주오/
왈칵 덜컥 돌고개냐/타박타박 재고개냐/
굼실굼실 잘도 간다/

 

(중략)

 

삼각산에 내린 용설/한양 도읍 학의 형국/
무학이 잡은 터에/ 정도전이 재혈하야/
오백년 도읍할제/ 금수강산 삼천리에/
방방곡곡 백성들아/ 임임 총총 효자 충신/
집집마다 효부 열녀/ 국태민안 시회연풍/
국가부영 금자탑을/ 어서어서 쌓아 보세/
만고 불멸 은자성을/ 이낭그로 쌓아 주세.

<목도꾼 소리>

 

1백50년전의 <목도꾼 소리>에 나오는 금자탑이 '피라미드'를 가리켰는지는 좀 애매한 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노래를 이끌던 선창꾼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미 이때부터 '금자탑'은 '피라미드'라는 구체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만고불멸'과 '국가부영'을 가리키는 추상적인 상징어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이 벌목꾼들이나 목도꾼들이 나무를 찍고 옮겨서 지은 것이 피라미드가 아니라 경복궁이라는 점입니다.  피라미드와 경복궁은 그 모양과 기능은 물론 건축 자재가 전혀 다릅니다.  목도꾼들은 물론 아마도 경복궁 재건을 총지휘했던 대원군조차도 왕의 집무공간과 거처인 경복궁을 왕의 무덤이었던 피라미드와 혼동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은자성'이라는 없던 말을 만들어 '금자탑'에 대비시킨 것도 '금자탑=피라미드'임을 몰랐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한국어에 '은자성'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지금도 쓰이지 않는 말이고 국어사전에도 없습니다.  그저 목도꾼들이 아마도 '금자탑'에 대구가 될만한 말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냈던 것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노래에서는 대구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금자탑의 '금' 대신에 '은'을 넣고 '탑' 대신에 '성'을 넣어 만들어낸 말일 뿐이겠습니다.

 

만일 그때 목도꾼들이 '금자탑'이라는 게 '피라미드'이며 그걸 금자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피라미드가 금(金) 자 '모양'의 탑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면 은자성이라는 말을 쉽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은 은(銀)'자를 닮게 쌓은 성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없고 중국에도 없고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은자성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금자탑이라는 말뜻의 핵심이 금(金)의 '귀금속으로서의 속성'이 아니라 '피라미드를 닮은 그 글자의 모양'이라는 점을 목도꾼들이 몰랐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금자탑과 은자탑을 '국가 부영'과 '만고불멸'이라는 말로 수식한 것을 보면 목도꾼들이 '금자탑'이 무엇인지는 몰랐더라도 그 파생적인 뜻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째서 금자탑이 국가부영과 만고불멸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 내력은 몰랐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요즘도 금자탑은 그것이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는 점은 잊거나 간과되고 '만고불멸'이라는 뜻으로만 주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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