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늦을수록 고통도 크다 베이비붐 세대 816만명, 5년 후부터 정년 시작… 대량 퇴직사태 국가적인 문제로 정년은 빨라지고 수명은 길어지고, 40~50대 절반이 “은퇴준비 전혀 못했다” | |||||
현재 우리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에 대한 준비 없이 회사 정년(停年)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초 가족계획이 시작되기 전까지 출산율이 높았던 시기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현재 42~50세에 해당하는 816만명으로, 총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거대 인구집단이다. 국내 기업이 사규(社規)상으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정년인 55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가정하면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5년 후인 2010년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올 7월의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난, 실제로 직장을 그만둔 평균 나이가 53세라는 걸 고려하면 이르면 2008년부터 퇴직대란의 파도는 일렁이기 시작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45~46세(1959~1960년생)인 171만1000여명이 퇴직정년을 맞는 9~10년 뒤가 퇴직대란의 1차 파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45세 이후 세대는 1980년대 중반 삼저(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호황기에 국내 기업이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하던 시기에 입사했고, 각 기업에서 두터운 인력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인 ‘전쟁세대’보다 생활수준도 나아졌고, 콩나물 교실이긴 했지만 교육도 제대로 받았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이전 세대에 비해 늘어난 소득을 바탕으로 아파트·자동차·해외여행 등의 소비주체가 됐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집을 구입하던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거품이 생겼고, 1990년대엔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강남 아파트 붐도 일으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후에 대한 대비는 부족해 이들의 대량퇴직이 개인과 사회의 고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연령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데 비해 퇴직 전의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은 적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7600만명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 806만명도 각각 2006년, 2007년부터 60세를 맞아 은퇴를 시작하지만 그들은 은퇴하면서부터 공적 연금을 받는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퇴직 연령은 50대 초·중반이다.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60세까지 5~7년을 퇴직금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퇴직금도 연봉제와 1997년 도입된 퇴직금 중간정산 제도에 따라 미리 받아 생활비로 써버린 경우가 많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은퇴 설계 상담을 위해서 퇴직금 수령 여부를 조사해보면 월급의 일부로 생각하고 이미 써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작년 6월 현재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42%에 달했다.
정부는 55세부터 5년 이상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 제도를 올 12월 도입하지만 제도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려 베이비붐 세대가 당장 혜택을 받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민연금만으론 풍족한 노후생활이 불가능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30년간 가입한 직장인이 평균 월 100만원 내외의 연금을 받게 되는데, 이는 60세 이상 도시근로자의 월 평균 지출액(올 3분기 기준) 182만여원의 55%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확산된 것이 1999년이므로 베이비붐 세대의 짧은 가입기간을 고려한다면 그나마 월 평균 수령액은 100만원에도 못미친다. 더구나 연금기금의 조기고갈을 막기 위해 1953~1956년생은 61세부터, 1957~1960년생은 62세부터 연금을 받게 되는 등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는 늦춰진다. 개별적인 노후대비를 위한 개인연금 상품은 1994년에 도입됐지만 노후대비용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절세 혜택을 이용한 고수익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급전이 필요하면 중도에 해지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처럼 퇴직금·국민연금·개인연금 등으로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으므로 50대 중반 직장에서 퇴직한 후엔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돈벌이를 위해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실질 은퇴연령은 67~68세이다. 일반인이 꿈꾸듯 퇴직 후에 전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여유로운 은퇴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춘식 한남대 교수(노인복지학회 회장)는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 때문에 사회활동에서 물러난다 ▲ 퇴직연령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을 할 시기여서 퇴직하자마자 돈을 더 쓴다 ▲ 평균수명이 길어져 좀처럼 죽지 않는다 등 세 가지 현상을 현대판 ‘인생의 3대 비극’이라고 부른다. 임 교수는 “퇴직자들이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교육도 못받고 준비없이 내팽개쳐지고 있다”며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 데 비해 퇴직은 빨라지고 있어 개인이 은퇴를 준비할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은퇴에 대한 준비는 미흡하다. 올 8월 조선일보와 미래에셋증권이 공동으로 실시한 ‘은퇴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은퇴 이후에 대비한 준비를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세계 10개국의 국민에게 던져본 결과 한국인은 44.1%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캐나다(96.5%)·중국(87%)·미국(82.5%) 등의 은퇴 준비율의 절반이었다. 한국은 일본(32%)·브라질(43.5%)과 함께 은퇴 준비를 가장 안 하는 국가 그룹에 속했다. 한국의 40~50대는 평균 3억9000만원의 노후비용(주택 제외)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노후 준비를 전혀 못했다’는 대답이 39.8%, ‘뒤늦게 40대에 들어 노후준비를 시작했다’는 대답이 39.6%에 달했다. 또 급격한 산업화로 바뀐 현실 속에서 괴리감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부모가 은퇴하면 자녀가 부모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질문에 47.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정작 ‘내가 은퇴하면 자녀가 내 생활을 책임지려 할 것이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26.9%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런 ‘의무 부양’과 ‘실제 부양’에 대한 태도 차이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은 것이다. 조사를 담당한 한국리서치는 “40~50대가 자신은 부모를 모시지만 자식에겐 기대를 하지 못하는 이중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임춘식 교수는 “과거 주요한 노후 재원은 자녀가 주는 용돈이었지만 이제는 연금 등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등 변화의 추세 속에 있다”며 “퇴직자들은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 계획하는 한편, 사회는 고연령층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현철 주간조선 기자(banghc@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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