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軍事 資料 綜合

육사 1-9기 졸업생의 23%가 죽었다

鶴山 徐 仁 2005. 10. 10. 15:58
이 름   이동복 날 짜   2005년 10월 8일 토요일
육사 1-9기 졸업생의 23%가 죽었다
대한민국보다는 북한에게 충성하는 이 나라의 좌익 무리들과 그들에게 현혹되어 기를 쓰고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주한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을 저지하겠다고 죽창과 철봉으로 무장하고 설치는 철없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들려 줄 얘기가 하나 있다.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얘기다.

육사가 4년제 정규과정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10월에 입교한 11기 때부터였다. 그 전의 육사는 1기부터 9기까지는 기에 따라 어떤 기는 45일, 어떤 기는 6개월(5-7기), 어떤 기(8기)는 22주, 어떤 기(9기)는 23주의 교육만으로 임관하는 약식 교육의 장이었다. 1950년 6월 북한의 6.25 남침이 있던 그 해에 입교했던 10기는 생도 1기와 2기로 나뉘어서 생도의 신분으로 전장에 투입되었다가 1기 가운데 생존한 생도들은 현장에서 소위로 임관되었고 2기 중 생존자는 육군종합학교를 거쳐 임관되었다.

7기와 8기 ‘특기’를 포함하여 1기부터 9기까지 이렇게 약식으로 배출되어 북한이 일으킨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육사 출신 장교의 숫자는 모두 6천 명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23%가 전쟁 중에 적탄에 맞아서 전사했고 69%가 적탄으로 부상을 입었다. 모두 92%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 밖에 많은 수의 비육사 출신 장교들과 더 많은 수의 사병 및 노무자들의 희생의 은덕으로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을 면하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으로 살아남아서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클 수가 있었다. 거기에 더 하여 미군을 포함하여 참전 16개국의 귀한 젊은 군인들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군 전사자 가운데는 워커 육군중장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정구라는 사이비 교수가 미국에 유학하여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동국대의 순진한 학생들을 사상적으로 오염시키고 자신의 대를 이어 그의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면서 오히려 미국을 욕하고 맥아더를 비방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부도덕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육사 출신 젊은 꽃들과 그 밖의 호국 영령들이 그들의 목숨으로 김일성의 침략군을 물리쳐서 수백만의 아사자를 발생시키고, 수십만 명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오직 '위대한 수령'만을 '찬양'하며 지내야 하는 공산북한의 마수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었다.

강정구와 그를 추종하는 이 땅의 좌익세력들은 지금 그 때 김일성의 침략에 저항하지 말고 공산화 통일을 수용했으면 될 일을 무엇 때문에 저항해서 그렇게 귀한 목숨을 버렸느냐고 비아냥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에 살 자격이 있는가? 차라리 대한민국이 그들을 법으로 처벌하기 전에 그들 스스로가 북한으로 이주해서 그 곳에서 김일성에서 김정일을 거쳐 김정철로 3대에 걸쳐 이어지려 하고 있는 세습독재를 찬양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 통일부가 북한에 넘겨주어야 할 군상들은 소위 ‘미전향 장기수’들이 아니라 강정구 같은 무리들이 아닌가? 다른 분들은 이 같은 나의 상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모두 우리의 의견들을 말해 보지 않으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