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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10>

鶴山 徐 仁 2005. 9. 11. 19:16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⑩전설 속의 '예티'를 찾아
 ◇히말라야 설산에서 먹는 감자는 꿀맛이다.
아침 일찍 데보체 마을을 떠납니다.

열여섯 살 소녀 파생 세르파가 동구까지 따라나와 배웅을 합니다. “나마스테”라고 인사하는 파생 세르파의 눈가에 눈물이 어리는 것도 같습니다. 겨우 하루를 묵었을 뿐인데도 나와 헤어지는 파생 세르파의 자태와 표정은 연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카트만두에서 살다 견디지 못하고 사방이 설산이 둘러쳐진 이 깊은 산골로 쫓겨 들어와 살고 있는 파생 세르파로선 문명의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곧 그리움 자체일 것입니다. 파생 세르파가 자신의 주소를 적어 내게 건네며 뭐라고 빠르게 말을 합니다. 말 사이사이에 ‘코리아’가 끼어드는 걸 보면 ‘한국에 가고 싶다’ 뭐 그런 말을 하는 듯합니다.

많은 네팔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꿉니다.

‘코리아’에 가기만 하면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거라고 그들은 상상하지만 꿈꾸는 대로 ‘코리안드림’을 이루는 네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네팔 청년은 처음 한국에 들어와 공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네팔에서 왔다고 하자 ‘어이, 촌놈. 니네 나라에도 해 뜨냐?’ 하고 묻더랍니다. ‘어이, 촌놈. 니네 나라에도 달 뜨냐?’ ‘어이, 촌놈. 니네 나라에도 텔레비전 있냐?’ 택시기사는 계속 물었고, 그때마다 꼭꼭 ‘어이, 촌놈’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순진한 이 네팔 청년은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한동안 네팔인을 가리키는 한국말이 ‘촌놈’인 줄 알고 자신을 소개할 때 곧잘 ‘아이 엠 촌놈’이라고 했다 합니다.

모두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종과 빈부에 대한 편견과 오만은 맹목적이고 잔인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얼굴색이 다른 인종을 보면 ‘괜히 패고 싶다’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나는 보았습니다. 우리가 필요해 데려다가 부리면서도 동남아권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무조건 가난하고 열등하니, 무시하고 모멸하고 착취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 또한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혐오감을 넘어서 무섭기까지 합니다. 잘 먹고 잘살진 모르지만 그의 영혼이 이미 ‘괴물’이니 무서울밖에요. 조국에서 멀리 떠나온 내 눈엔 그런 배금주의 신분자인 ‘괴물’들이 환히 보이는데, 그곳에 있는 김형의 눈엔 잘 차려입은 그 ‘괴물’들이 과연 보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데보체에서 팡보체(Pangboche)까진 완만한 비탈길로 임자콜라(Imjakhola) 강을 따라갑니다. 아마다블람봉이 오른편에 있고 로체(Loche·8516m)를 비롯한 에베레스트 산군(山群)들이 전방에 있으며 촐라체(Cholatse·6335m) 타보체(Taboche·6495m) 등이 왼편에 있습니다.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거대한 자궁 속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침이라서 짐을 실은 야크 떼가 연방 나를 추월해갑니다. 나는 야크 떼가 나를 다 지나쳐갈 때마다 한참씩 산비탈 쪽으로 비켜서서 몸을 오그리고 기다립니다. 큰 놈은 키가 2m나 되고 몸무게는 수백 킬로그램에 이릅니다. 워낙 체구가 큰 데다가 무거운 짐까지 싣고 있어 이놈들이 무리져 달리면 지축이 울릴 정도입니다. 강이 있는 쪽으로 비켜서 있다가 이놈들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어느 한군데 닿기라도 하면 추풍낙엽처럼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날아갈 판입니다. 검고 긴 털로 뒤덮여 있어 빙하지대나 눈 쌓인 6000, 7000m 산을 넘어가는 일도 이놈들에겐 여반장입니다. 지방이 많은 젖과 고기는 식용으로 쓰고 털은 모직물 원료가 되며, 똥은 주워다가 연료로 사용하니 히말라야 짐꾼 야크는 단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두 시간 만에 팡보체에 닿습니다.

데보체를 출발할 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는데 어느 틈에 구름이 잔뜩 낀 것이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습니다. 고소의 후유증이 남아서 이제 겨우 점심 때지만 팡보체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합니다. 팡보체 마을은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뉘어 있습니다. 경사면을 따라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말이 아랫마을 윗마을이지, 아랫마을에서 윗마을 끝집까지 올라가려면 삼십여분이나 걸립니다. 하일랜드 로지에 짐을 풉니다. 내 짐을 지고 온 포터 로리스가 하일랜드 로지를 지키고 있는 소년과 유난히 반갑게 악수를 합니다. 라이족으로서, 같은 종족에 고향도 비슷하다고 로리스가 더듬더듬 설명을 해줍니다.

◇히말라야의 짐꾼 야크.

로지는 텅 비어 있습니다.

제철이 아니어서 주인 내외도 카트만두로 내려간 데다가 손님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로지의 거실에 있는 무쇠난로에 곧 불이 붙여집니다. 난로의 땔감은 물론 야크의 마른 똥입니다. 화력이 좋아서 한 번 불이 붙자마자 이내 거실이 따뜻해졌습니다. 로지 거실은 본채 위로 망루처럼 높이 올려 짓고 사방을 유리창으로 해서 한눈에 모든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마을과 강 사이엔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너른 감자밭이 펼쳐져 있고 강 건너편으론 아마다블람봉 베이스캠프와 밍보(Mingbo)빙하가 환히 바라다보입니다.

드디어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리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테니 걱정인데, 나의 포터 로리스는 고향 친구를 만난 반가움에 파묻혀 내 걱정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때마침 로지 주인이 집을 비웠으니까 오늘밤 로지는 나보다 저들의 차지가 된 듯합니다. 로리스와 로지 종업원 소년이 감자를 쪄다가 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희희낙락, 포커판을 벌이고 앉았습니다.

눈발이 좀더 세어집니다.

아마다블람봉도 밍보빙하층도, 강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사방이 눈발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망루처럼 허공으로 솟은 이 로지 거실은 절해고도와 같이 느껴집니다. 룽다(風馬)가 눈바람에 격렬히 펄럭이는 소리 사이사이로 난로 속에서 야크 똥이 불타는 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리고, 로리스와 그의 친구가 키득거리는 다정한 소리가 그 위에 오버랩됩니다. 소리, 소리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세계는 너무도 고요합니다.

고원의 감자는 꿀같이 맛있습니다.

나는 우두커니 앉아서 창 가득 휘날리는 눈발을 봅니다. ‘사람’이 그리워 눈물이라도 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하듯, 나의 내부엔 초월적인 세계로 떠나고 싶은 원심력과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함께 사랑하며 살고 싶은 구심력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 두 개의 세계는 때로 자웅동체의 미물처럼 내 안에서 너무 가깝게 붙어 있고, 또한 때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붙어 있다고 느낄 땐 마음이 안정되지만, 그 두 개의 세계가 내 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땐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예티’를 믿습니다.

예티(Yeti)는 설인(雪人)으로서, 히말라야산맥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긴 회랑지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흰 털로 뒤덮인 ‘예티’의 존재는 히말라야 사람들에게 친근하면서도 두려운 형이상학적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겐 미신이나 전설처럼 느껴지는 ‘예티’의 존재는 히말라야 사람에겐 곧 꿈이고 현실이자 영원히 의지하고 살 신성(神性)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김형.

나는 ‘예티’를 찾아 여기 혼자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기 눈 내리는 만년 빙하의 어느 협곡 사이에서 홀로 걸으면서도 외롭지 않는 얼굴을 한 ‘예티’의 존재를 상실한 것이야말로 현대문명의 비극이 아닐는지요. 나는 금방이라도 ‘예티’가 나타날 것 같아 눈발이 휘날리는 창 너머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뜹니다.


 
가져온 곳: [킬리만자로의 표범]  글쓴이: 킬리만자로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