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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4>

鶴山 徐 仁 2005. 9. 11. 19:16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④높이 오를수록 비싸다
 ◇에베레스트 가는 길목에서 만난 네팔 소녀와 필자.
김형은 내게 히말라야 협곡마다 산재해 있는 로지의 방값을 물었습니다. 어디 방값뿐이겠습니까. 밥값도 알고 싶고 포터의 하루 일당도 알고 싶겠지요. 우리는 길을 떠나도 계획경제의 습관을 버릴 수 없습니다. 꼭 가난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법의 절반을 이룬다고 설파한 밀레르파의 시대와 달리, 이제 돈이 아니곤 길을 떠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보편적 사실을 우리가 너무도 깊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쿰부 지역은 이렇습니다.

쿰부 지역 쪽으로의 트레킹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면 카트만두에서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와 내리게 되는 지리(Jiri)에서 시작합니다. 버스 요금은 우리 돈으로 2000원을 넘지 않습니다. 지리에서 비행장이 있는 루클라까진 보통 일주일 이상 걸립니다.

▲루클라 비행장의 경비행기.

그러나 나는 압니다. 김형이 이곳에 온다면 틀림없이 해발 2642미터의 루클라까지 경비행기를 이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는 관성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나 시간이 많거나 간에 일단 히말라야에 오면 목표를 해발 고도로 바꿔 생각하는 강력한 경향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회로부터 줄곧 요구받았던 개발의 효율적 전략이 그랬으니까요.

카트만두∼루클라 비행기 값은 편도 100달러입니다.

내국인은 무조건 외국인의 반값으로 계산하면 되니까 만약 안내자인 세르파 한 명과 동행한다고 치면 김형은 일단 카트만두 여행사에서 300달러를 지불해야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로 접어드는 루클라에 도착하게 됩니다. 목표에 대한 전략적 습관의 값인지도 인식 못하면서, 김형은 지도에 표시된 고도에 흥분되어 기꺼이 300달러를 지불하리라고 나는 봅니다.

포터는 루클라에서 구하면 됩니다.

▲히말라야 고지대의 식수공급지.

포터를 구해 달라는 내 말을 듣고 로지 주인은 몇 미터까지 올라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내 목표는 검은 바위라는 뜻을 가진 칼라파타르(해발 5545미터)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짐꾼들이 품삯을 더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밥을 내가 사 먹이는 경우와 포터 자신이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도 당연지사 값이 다릅니다. 나는 일당 500루피를 달라는 걸 사정없이 깎습니다. 400루피로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고 나자 포터는 나중에 후하게 팁으로 달라고 말했습니다.

“오케이, 돈 워리!” 내 목소리는 이럴 때 시원시원합니다.

미국돈 1달러가 대략 70루피니 나는 어린 포터의 일당에서 겨우 1500여원 정도를 깎은 것입니다. 나는 흥정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에 잠시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 순간, 겨우 1500원의 에누리에 만족감을 느끼는 내가 과연 나일까요? 아니면 어떤 경우든지, 남보다 손해봤다 싶으면 모든 행복감을 일시에 스스로 날려버리고 마는, 우리 사회가 훈련시켜온 조건반사 같은 나의 습관일까요?

나의 포터 로레스는 18세입니다. 루클라에서 카트만두 쪽으로 꼬박 사흘을 걸어가야 고향에 당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말이 열여덟 살이지 키가 겨우 150센티미터인 로레스는 불과 열두어 살쯤밖에 안돼 보이는 소년의 얼굴입니다. 포터들은 60킬로그램의 짐을 이마에 걸머지고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갑니다. 어떤 짐들은 포터들 자신조차 앉아서 지고 상반신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을 어귀마다 포터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돌계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허리 높이의 돌계단에 짐만 내려놓은 채 서서 쉬는 것입니다.

▲18세 포터 로레스

첫날 점심값은 210루피가 들었습니다.

볶음밥이 130루피, 야채수프가 80루피였지요. 3000원짜리 점심이었는데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밥값 역시 외국인과 내국인은 비교 안될 만큼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해발이 높아질수록 모든 물가가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해발 5000여미터의 루부체(Lobuche) 마을에서 고소(高所)에 따른 설사 때문에 흰 쌀죽 한 그릇을 시켜먹고 450루피를 지불한 적도 있습니다. 높아질수록 음식값은 그것을 조리하는 데 드는 장작 값에 비례한다고 보면 됩니다. 모든 요리를 장작불로 해야 되는 이곳에선 장작 값이 물가의 바로미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를 베는 것은 네팔 정부에서 엄격하게 단속합니다. 해발 4000여미터쯤 되면 벨 나무도 없습니다. 사람과 야크가 일일이 등짐을 져서 몇날 며칠씩 날라야 되니 음식값은 물론 생수 한 그릇도 해발에 따라 값이 높아지는 게 당연합니다. 남체바자르(Namche Bazaar·3440미터)를 지나면 따또바니(따뜻한 물) 한 컵을 꼬박꼬박 돈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세수 한번 흡족하게 하려면 최소한 100루피(약 1500원) 정도의 따뜻한 물을 사야 되겠지요.

방값은 원칙적으로 100루피입니다.

좀더 시설이 좋은 로지가 가끔 큰 마을에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시설은 동일합니다. 두 평도 채 안돼 보이는 허술한 방에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곧게 뻗기에도 작은 나무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습니다. 화장실은 한층 아래거나 로지 밖의 외부에 있습니다. 더러 보조 이불을 주기도 하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 김형은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짊어지고 간 슬리핑백이 나를 한밤의 추위로부터 보호해줄 이부자리의 전부입니다.

▲히말라야 여행자 숙소.

만약 로지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면, 만약 이부자리 수준의 높낮이가 돈 따라 다르다면, 히말라야 깊은 협곡에 와서도, 나보다 좋은 호텔에서 나보다 좋은 이불을 덮고 자는 자들에 대한 경쟁적 정보 때문에 내 잠자리가 불편할 테지만, 너나없이 똑같이 대접받고 똑같이 누리니 슬리핑백 속에 누웠어도 행복을 느낍니다. 남체바자르의 내가 머물렀던 로지 거실엔 오래 전 그 집에서 자고 간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때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도 히말라야 산행길에선 나와 똑같이 100루피의 나무침대에서 자고 10루피짜리 따뜻한 물 한 컵을 사 먹으며 걸었다고 생각하자 나의 비좁고 추운 방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김형은 이곳 트레킹의 계획경제를 짐작하겠지요.

요점은 악을 쓰고 깎으나 안 깎으나, 이리저리 더 좋은 로지 더 좋은 음식점을 찾아다니나 안 찾아다니나, 이곳 히말라야에선 도진개진이라는 사실입니다. 효율성과 비효율성의 구별이 없고, 전략적 소비의 개념도 필요 없으며, 계획경제의 기민한 습관도 없습니다. 만약 김형이 더 황제처럼 트레킹을 하고 싶다면 슬리핑백이나 속옷이나 지팡이 따위를 명품으로 장만해 오십시오. 보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으니 명품이 무슨 소용있을까마는, 그걸 지니고 있는 자신은 명품을 아니까 보다 행복해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김형.

그러려면 유럽이나 미국의 휴양지로 가지 뭐하러 고생고생하며 히말라야를 걷겠느냐고, 볼멘소리로 반문하는 김형의 모습이 눈에 뵈는 것 같아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김형. 우리가 히말라야에서 만나고 싶은 것은 육체의 호사가 아니라 바로 영혼의 안식입니다.


 
가져온 곳: [킬리만자로의 표범]  글쓴이: 킬리만자로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