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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이순신장군의 무덤은 3개다

鶴山 徐 仁 2005. 9. 3. 12:11
이순신장군의 무덤은 3개다
[오마이뉴스] 2005/08/26 08:55
이순신 장군의 두번째 무덤 완도군 묘당도 월송대
나는 이순신 장군의 무덤을 전남 완도군 묘당도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불과 두 달이 흐른 8월 중순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노량에서 또 다른 장군의 무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장군의 고향인 충남 아산에 있는 무덤은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강진군 마량항에서 배를 타고 5분을 가면 완도군 고금도가 나온다. 이 섬에 달린 작은 섬 묘당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마지막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이순신 장군과 이영남 장군을 모신 충무사가 있다.

▲ 장군의 두번째 무덤인 남해군 충렬사 가분묘
ⓒ2005 남해군청
묘당도는 남해에서 서해로 진입하는 길목으로 좌로는 마량, 우로는 약산도의 좁은 협수로를 두고 있어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증도, 넙도, 원도, 입도, 초완도, 장고도, 소죽도, 정개도 등 수많은 섬들이 진을 치고 있어 이곳을 치지 않고는 인근 완도, 강진, 해남, 진도 등에 대한 침입은 사실상 불가능해 방어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섬이다.

이 묘당도 충무사 앞 작은 언덕이 장군의 두 번째 무덤인 월송대다. 월송대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충무공이 유해가 잠시 남해군 관음포에 안치되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80일 간을 모셨던 곳이다. 기이한 것은 이 무덤엔 4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풀 한포기 돋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장군이 ‘죽어서도 바다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풀숲에 가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을 원치 않아 풀 한포기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충남 아산시 어라산의 세번째 무덤
ⓒ2005 아산시청
첫 번째 무덤은 1598년(선조 31년) 11월19일(양력 12월16일) 장군이 전사한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 인근 충렬사에 있다. 장군의 무덤이 여기에 자리 잡은 이유는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도망가는 왜군을 추격하다가 왜군 저격병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후 육지로 옮겨져 누운 곳이 인근의 고현면 관음포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순조32년)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의 글로 노량의 관음포에 이충무공번몰유허를 세웠으며 마지막 해전을 치르다 전사한 노량에는 장군의 가분묘가 세워져 있다.

▲ 남해군의 이순신장군전몰유허 이락사
그리고 세 번째 무덤은 전사한지 80일 뒤인 1599년 운구 되어 2월11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금성산에 장사되었으며 전사 16년 뒤인 1614년 어라산에 이장되었다. 돌아가신지 100일이 지나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야 고향땅에서 편히 눈을 감으신 것이다.

장군의 무덤이 지키고 서있는 묘당도와 노량은 감히 왜군이 다시 침범할 수 없는 땅이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30대 문무왕이 바다에 수중릉(대왕암)을 만들어 용이 되어 바다를 지켰듯이 장군 또한 죽어서도 남해바다와 서해바다 입구에 터를 잡고 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 남해군 관음포의 이순신장군전몰유허


▲ 완도군 묘당도의 충무사
ⓒ2005 김대호


▲ 묘당도 장군무덤엔 풀한포기도 나지 않는다.
ⓒ2005 김대호


▲ 이순신장군이 돌아가신 노량바다
ⓒ2005 김대호


▲ 남해바다에 버티고 선 거북선
ⓒ2005 남해군청

 

 

 


 
가져온 곳: [나노식품/나노푸드 (Nanofood)]  글쓴이: Truescience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