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가기 전에 제가 러시아에 대해 알고있는 지식은
학교에서, 또 매체를 통해 주워들은 단편적인 사실 뿐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황제의 폐위와 처형, 소비에트 연방, 공산주의와 레닌 그리고 스탈린...
물론 우주비행사 가가린이나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이름을 알고 있었고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등 문인과 음악가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그리고 발레단의 예술성도 들어보았지만
동유럽에서의 점령 탄압, 우리 항공기 격추, 핵무기 개발과 중앙 아시아 분쟁 등과 함께
최근에는 각종 시위와 테러, 테러에 대한 강제 진압, 사법권의 남용 등등
주로 부정적이고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동서 냉전시대에 교육을 받았으니 제겐 가상 적국의 하나임에 분명했고요,
한반도 북쪽에 꼭둑각시 정권을 세우고 한국 전쟁을 사주한 나라이므로
양국 관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우방국으로 여기기에는 좀 찜찜한...
하지만 지금은 역사는 역사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게다가 실제로 만나본 러시아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열정과 낭만을 알며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광활한 국토, 풍부한 자원, 잠재력이 큰 시장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서구 어느 열강에 못지않게 자부심을 가질 만한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고 있어서
앞으로 더 깊이 알아보고 교류증진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하간 쌍뜨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의 특별한 '피'의 역사의 현장을
품고 있는 곳이어서 방문 전부터 더욱 관심을 가졌었지요.
아래는 이 도시 엽서에서 대표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리스도 부활 사원, 일명 '피의 사원'과 은행 다리 장식입니다.
대학 방문후 일행은 이 성당을 보기 위해 강변로를 따라 넵스키 대로로 향했습니다.
네바강 강변로를 지나며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러시아에서는 아래 사진과 같이 도로 위에 전선줄이 많이 있다는 점입니다.
전차와 버스의 중간쯤 역할을 하는 교통수단이 전기를 동력으로 하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전선줄을 따라 뜨람바이와 뜨롤레이부스라고 부르는(선로 유무에 따라 구분)
지상에서 다니는 전동차들이 지하철과 함께 대중교통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에르미따쥐 앞을 지날 땐 강변에 우리 기업의 광고판도 눈에 띄지요...
모스크바든 뻬쩨르부르그에서든 길거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곳에서는
삼성과 LG의 광고판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도로변이나 건물벽에 세운 커다란 입간판들, 시내버스의 몸체를 덮고 있는 광고,
심지어 모스크바의 LG다리처럼 아예 하나의 구조물 전체를 광고로 도배하기도 하고
주요 유적지 앞이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에서는 우리 기업의 광고를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세웠더라고요, 광고를 피해서 사진찍기 힘들 정도로요.
많은 분들이 이런 광고를 보고 뿌듯한 생각으로 가슴을 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겐 그리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물론 이러한 광고홍보 덕분에 러시아 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전자제품 경우 최고급으로 인식되어서 수출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거리 광고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브랜드로서 친숙해진다는 것은
한계와 위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도입 초기라서 마구잡이로 허용하고
또 시장들이 시의 재정 확대를 위해 장려하기는 하지만요,
아름다운 건물을 가리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이런 광고가 많아지면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미의식'을 가진 유럽인이니까요...
서유럽 국가에서 이러한 광고판 광고를 눈여겨보는 소비자는 많지 않고요
게다가 유적지나 주요 지형물의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되거든요.
우리 일행은 먼저 그리스도 부활 사원을 보기 위해 넵스키 대로가 멀리 보이는
그리보예도프 운하 옆에서 정차했습니다.
모스크바의 성바씰리 사원처럼 알록달록하고 특이한 아홉개 돔을 가진
이 사원(정교회 성당)은 운하 바로옆 도로에 세워져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인민당(?) 소속 테러범이 황제 알렉싼드르 2세에게 폭탄을 폭발시켜서
당일날 에르미따쥐에서 사망하게 했다고 하지요...
알렉싼드르 2세는 러시아의 농노를 해방케한 치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26년 재위기간을 이러한 폭탄테러로 시해당했으므로
시민들이 속죄하는 의미로 시민의 헌금을 걷어 이 사원을 세웠고요,
'그리스도 부활 사원'이라는 이름 대신 '피의 구원'이라는 속칭이
더 많이 사용되어서 지금은 아예 '피의 사원'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현재까지 러시아식 건축예술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고요,
이 성당의 내부는 전체가 성서를 주제로 한 모자이크 작품으로 덮여있다고 합니다.
알렉싼드르 2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바로 그 장소를 보여주는 작품 등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고 현재 박물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은 입장시간 마감이 다가온데다 입장료(250+50루블)가 너무 비싸서(?)
내부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피의 사원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물론 황제 시해장소라는 점도 있지만
당대에 이미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태동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9세기는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대혁명의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러시아의 귀족계급과 상류층의 젊은이들에게 개혁의 기운이 급속히 확산되는 시기였는데
전임 황제 알렉싼드르 1세는 비밀경찰과 헌병대를 창설하고 유럽유학을 금지 시키는 등
강권과 억압으로 통치했었다고 합니다.
알렉싼드르 2세는 국민여론을 인식해서 농노 해방이라는 역사적 대개혁을 실시했지만
이미 대학생과 지식인들간에는 '인민 속으로' 운동이 확산되고 있었고
그 중 행동적인 인민주의자들은 정당을 구성해서 폭력에 의한 개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황제에 대한 테러는 범죄자에 의한 우연한 사고가 아니고 '피'를 부르는
폭력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사원의 바로 뒤 예술 광장(쁠로샤지 이스꾸스트프)에 있는 푸쉬킨의 동상입니다.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푸쉬킨의 동상은 이곳저곳에 있지만
러시아 박물관 앞에 있는 이 동상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푸쉬킨의 작품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가장 널리알려진 시 한편을
소개해봅니다.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예스리
쥐즌 지뱌 압마니엣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니에
삐촬쌰, 니에 시에르지스!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브
진 우늬니야 스미리스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 астанет.
진
베셀야, 베르, 이 아스다니엣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ёт;
씨에르찌에
브 부두쉠 쥐뵷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나스타야쉐에
우늬로
Всё
мгновенно, всё пройдёт;
프쇼
므그나벤나, 프쇼 쁘라이죳
Что
пройдёт, то будет мило.
슈또
쁘라이죳, 또 부짓 밀라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간 것이니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오래전에 '마피아의 사랑'(krasota) 카페에서 펌)
지나가는 거리마다 건물의 발코니와 창틀을 꼼꼼하게 보면서
19세기 건물들의 장식성에 감탄하는 사이 일행은 넵스키 대로로 들어섰습니다.
이곳 넵스키 거리(넵스키 쁘라스뻭뜨)는 이 도시의 최고 번화가라고 합니다.
상당히 긴 대로이고요, 양 옆으로 상가, 카페, 음식점, 호텔 등이 이어지는 곳이었어요.
중간 쯤에 있는 카잔 성당(까잔스끼 싸보르)는 사진 한장에 담기 어려울 만큼
큰 규모에 웅장한 자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빼앗은 프랑스 군기들도 전시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프랑스로 돌려주고 전쟁 관련 다른 전시품만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초 건설될 때에도 귀족을 위한 공간이 아닌 시민을 위한 성소였는데
현재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무료로 자유로이 출입하는 곳이라네요...
어쨌거나 이날 오후에는 천천히 둘러볼 시간이 없어서 차창밖으로만 지나칩니다.
넵스키 대로에는 큰 상점과 백화점들도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 이 특이한 돔을 가진 건물은 '돔 끄니기'라고 불리는 최대의 서점이예요,
1919년 10월 혁명 직후에 세워진 최초의 국립 서점이라네요...
구 해군성 건물 앞까지 이어진 넵스키 대로의 끝은 이 곳, 궁전 광장입니다.
일명 '피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궁전 광장(드라브쪼바야 쁠로샤지)은
구 해군성 옆으로 겨울 궁전 에르미따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뒤로는
노란 색의 웅장한 참모본부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장의 중심에는 알롁싼드르 원주라고 불리는 거대한 기둥이 우뚝 솟아 있고요,
이 광장에서 명절이나 축제 행사도 벌어지고 시위대의 집회나 공연도 개최된다고 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습니다.
높이 약 50미터의 이 원주는 19세기초 러시아를 침략한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조국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물이라네요.
궁전 광장의 북쪽과 남쪽에은 이렇게 에르미따쥐와 구 참모본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지붕에 마차에 탄 '승리의 여신' 조각이 있는 웅장한 구 참모본부 건물은
중앙의 개선 아치를 통해서 넵스키 대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건물과 조각으로 둘러싸인 이 '궁전 광장'이
어째서 '피의 광장'이라고 불리냐고요?
이 광장은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인데요,
러시아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1905년 '피의 일요일'시위가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에 식량과 자유를 원하는 민중은 네프스키 대로를
행진했고
이 궁전 광장에서 황제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고자 집결하였습니다.
이들은 생활고와 노동자 해고에 대해 황제에게 호소하기 위해 총파업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1917년에 처형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는 이들 농민과 노동자를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고 이때의 발포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소위 '피의 일요일' 사건이라고 불리우는... @.@
이 사건 이후 황제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동란의 기운이 급속히 고조되서
전국적으로 총파업이 일어나고 노동자 대표 쏘비에트가 발족하게 되는 거지요...
러시아 혁명은 바로 이 '피의 광장'에서 싹튼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사건의 시발점은
극동 아시아의 정세 판도를 바꾸어 놓은 러일전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극심한 상실감과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했고
승리한 일본은 우리나라와 만주 등을 집어삼켰으니... -.- )
저녁을 먹으러 향하면서 차를 타고 마린스키(=마리야) 극장 앞을 지났습니다.
상연하고 있는 발레 공연의 안내판이 보이네요...
유럽 도시를 방문하면 공연장에도 자주 찾는 편인데
이날은 저녁과 민속공연 관람이 예약되어 있어서 입맛만 다실수 밖에요 ㅜㅜ
러시아 방문 중에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못 본게 지금도 아쉽습니다.
극장 광장의 한 쪽, 음악 아카데미 앞에 있는 림스키코르사코프 동상을 스쳐지나
저녁을 예약한 보드카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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