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연상케하는 단어가 많이 있지요?
백야, 시베리아, 백학(노래 제목), 마뜨료쉬까(인형) ...
그런데 제겐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보드카였어요.
술꾼은 아니지만 즐거운 자리에서 마시는 다양한 술을 즐기는 편이고요,
개인적으론 그중에서도 40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
이상하게도 거품나는 술(맥주, 샴페인)은 잘 안맞는데
스카치 위스키, 프랑스의 브랜디(꼬냑과 아르마냑)와 오드비...
40도 술들은 오히려 체질에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드카는 아래 엽서와 같은 이미지 땜에 거의 마셔보지 않았습니다.
보드카는 술주정뱅이의 술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쌍뜨뻬쩨르부르그 방문때 이날 저녁장소를 보드카 박물관으로 예약했다고 듣고는
좀 의아했습니다, 보드카와 함께 저녁식사를? @.@
별 맛이 없는 독주가 음식과 어울릴지... 물론 모스크바에서 마셔보기는 했지만
보드카는 위스키나 꼬냑과 같은 향취가 있는 술이 아니니 후주로도 별로일테고,
그렇다고 포도주처럼 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이삭 성당 근처의 카나그바르젠스끼 거리 5번지의 박물관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2003년의 쌍뜨뻬쩨르부르그 개도 300주년 기념행사 바로 전
2001년에 개관했고요, 규모는 작지만 러시아에서도 유일한 보드카 박물관입니다.
보드카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12세기 키에프 사람들(당시 몽고와 전쟁을 많이 했던)이 만들었다고 이야기 하고요,
14-15세기에 러시아 전역으로 전해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혹자는 16세기초에 지금의 보드카와 같이 만들어졌다고,
그래서 역사가 500년되었다고도 하구요...
박물관 입구에 있는 이 모형은 15세기의 승려(정교회 신부)가 이 술을 연구하는 모습입니다.
대략 이때쯤부터 곡물(밀, 호밀, 옥수수, 감자)로 만든 증류주 원액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여기에 물을 섞어서 마셨다네요...
18세기에는 자작나무 활성탄을 이용해서 여과하는 방법을 이용하기 시작했고요,
이때부터 무색, 무취, 무미가 보드카의 특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번 걸러낼 수록 부드럽고 물과 같이 순수한 보드카가 되겠지요...
박물관 내에는 빽빽하게 보드카의 기원,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보드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 '바다'(물)에서 나왔습니다. 원래 이름은 '생명의 물'인데
그게 줄어서 물이라는 단어만 남은 거예요. 그러니 보드카 = 물 @.@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40도 이상되는 독주를 오드비(eau de vie, 생명의 물)라고 부르고요,
제가 좋아하는 쁘와르 윌리암스(차갑게 마시는 배 술) 같은 것도 이 오드비에 속하거든요.
라틴어 아쿠아 비태(aqua vitae)도 '생명의 물', 이런 독주를 가리키는 말이니
유럽 곳곳에서 독주 = '생명의 물'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영어로는 spirits라고 하지요...
수도원의 승려들에 의해서 보드카 제조법이 만들어졌지만
오래전부터 보드카 제조와 판매는 러시아의 국가 전매 사업이었는데요,
물론 지금은 여러 양조회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보드카를 현재와 같이 40도의 술로 정하고 그 제조법을 표준화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이곳 쌍뜨뻬쩨르부르그 대학의 교수들이었다네요...
대학의 연구실에서 보드카 증류와 여과에 대해 연구하여 방법을 표준화하고,
'가장 마시기 적합한 농도' 연구를 통해 40도(뒷끝이 없는 농도)로 정했다고요.
러시아에서 흔한 자작나무 숯으로 술을 걸러내는 방법 역시 대학교수가 제안했다니... @@
오래된 광고 포스터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관심이 많이 가는 그림도 많았구요...
러시아에서는 40도 이하의 술은 술이 아니고,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곳에서 물어보니 요즘 젊은 세대는 예전세대와 달리 보드카를 즐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맥주나 와인을 마신다고요...
그럼 생산량이 점차 줄어드는가 했더니 그렇진 않다네요, 해외 수출도 많이 되고요
러시아에서만 보드카를 생산하는게 아니고 핀란드, 프랑스, 미국 등에서도 좋은 브랜드의
보드카가 생산되는데 다들 러시아 혁명 이후 조국을 떠난 생산자들이
망명지에서 보드카 산업을 계속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드카를 담는 술병과 각종 용기들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병의 크기가 표준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양한 용량의 용기를 사용하나 봅니다.
마뜨료슈까처럼 생긴 작은 병들이 참 예쁘죠? ^^
제가 좋아하는 상표 '루스끼 스딴다르뜨(스탠더드)' 보드카예요.
해외 유명 브랜드로는 미국의 ‘스미르노프’, 스웨덴의 ‘압술루트’, 핀란드의 ‘핀란디아’
등등이 있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칵테일 원액으로도 많이 사용하지만
러시아에서 보드카는 스트레이트로만 주로 마십니다, 딱 제 취향이네요 ^^;;
여기 펭귄 모양의 크리스탈 병에 담긴 보드카는
현재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장 비싼 보드카라고 합니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 일행은
바에 진열된 다양한 보드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질문도 하고요
추천하는 보드카 두 병을 주문했습니다.
테이블 곳곳에 놓여진 이 그릇 속에 보드카 안주가 담겨있는데
식초, 소금, 향신료에 절인 오이, 양배추, 길쭉한 고추(우리나라 삭힌 고추 맛) 등이
보드카에 가장 적합한 안주라는 설명이었어요.
짭짤하고 시큼한 야채 한조각과 보드카 한잔... 이상할 것 같았는데 맛있네요~
저녁 식사는 별반 특이할 것이 없는 간단한 전채-본식입니다.
하지만 역시 보드카와 잘 어울이는 음식이었어요.
각자 술잔(소주잔 처럼 생긴 작은 잔)을 여러개 두고 있는 이유는
다 똑같아 보이는 보드카도 상표가 다른 것은 섞어마시지 않는다고 해서요...
즐거운 기분으로 몇 사람이 각자 다른 보드카를 주문했고요,
덕분에 여러 종류의 보드카를 한자리에서 맛보게 되었습니다.
흥이 나서 이야기하고 러시아 노래도 듣고요~~
백학(Журавли, 주라블리)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예전에 '모래시계' 덕분에 유행했었죠.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따라부르는
노래인데 부를수록 정말 슬프네요...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현재 러시아의 정치인입니다.
러시아 국영 TV 생방송에 등장한 화면이고요,
전에 자주가던 '마피아의 사랑(Krasota)' 카페에서 퍼 왔습니다.
Мне кажется порою, что солдаты,
(나는 가끔
병사들을 생각하지)
С кровавых не пришедшие полей,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Не в землю нашу полегли
когда-то,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А превратились
в белых журавлей.
(학으로 변해버린 듯하네)
Они до сей
поры с времен тех дальних
(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날아만 갔어)
Летят и подают нам голоса.
(그리고 우리를 불렀지)
Не потому ль так часто и печально
(왜, 우리는 자주 슬픔에 잠긴 채)
Мы замолкаем, глядя в небеса?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잃어야 하는지?)
Летит, летит по небу клин усталый,
(날아가네, 날아가네 저 하늘의 지친 학의 무리들)
Летит в тумане
на исходе дня,
(날아가네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И в том
строю есть промежуток малый,
(무리 지은 대오의 그 조그만 틈 새)
Быть может, это место для меня.
(그 자리가 혹 내 자리는 아닐는지)
Настанет день, и с журавлиной стаей
(그날이 오면
백학들과 함께)
Я поплыву в такой же сизой мгле,
(나는
회청색의 어스름 속을 끝없이 날아가리)
Из-под небес по-птичьи
окликая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의 이름자를)
Всех вас, кого оставил на земле.
(하늘 아래 새처럼, 소리내어 부르며.)
술 한잔 마시고 물로 입안을 씻고, 다시 술 한잔 마시고... ...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보드카는 저녁식사와 잘 어울리는 반주가 되었고요,
디저트까지도 보드카와 어울렸던 듯... (< 이건 아마 취해서일지도 ^^*)
아래 사진은 박물관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본 전시물이예요.
물론 누구의 초상화인지 아시죠? (힌트: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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