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1921 ~ ) 1921년 서울 출생.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졸업.
예술에 뜻을 두고
법학도의 길을 접었던 열정으로 생(生)과 자연에 대한 찬미를 화폭에 담아온 이대원.
그는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감동과 생의
즐거움을 화사한 색점들로 화면가득 채운다. 작품 <농원>에서처럼 무수한 원색의 점들이 속도감과 생명력을 한껏 발산하며 생의 환희를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재료나 기법은 서양적일지 모르나, 전통회화의 기본이 되는 선과 점, 전통자수의 색감을 바탕으로 자연과 깊이 교감하는
우리 고유의 정서를 표출해 왔다.
홍익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예술원 회원이다.
끊임없이 바라보는 자연을 화폭에
초기의 일부 정물화나 풍물화를
제외하곤 근 50년 동안 화가 이대원씨가 그린 그림은 전부가 자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끊임없이 자연을 그려 왔다. 그것도 꾸며진
것이나 거창한 것을 상대로 그린 것이 아니고 산과 나무, 못과 풀섶처럼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대상으로 그려 온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는 늘 되풀이되는 화제와 모티브로 늘상 똑같은 그림을 그려온 것 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아주 자연스러운 자연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그리기 위해 수없이 같은 대상을 그릴 때 마다 새로운 그림으로 그리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 그는 여러 조형적 사고와 표현방법을 모색하였으며 그 같은 과정이 바로 다름 아닌 그의 화력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 스스로도 말한 바 있다.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입니다." 라고, 그림 속에는 늘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산과 나무, 풀섶을 그려 넣더라도 그것은 이미 같은 형태, 같은 색채, 같은 시각이 아닌 다르고 새로운 화면으로 형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천정,
90.9×60.6cm, 1961,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 따라서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려 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베껴놓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지니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차원의 실제를 화폭에
회화적으로 재발견하는 일에 있다 하겠다.
그러한 일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자연대상을 응시하고 파악하여 그때 그때마다 마지막
단계에서 터득하게 되는 응집된 표현방법을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의 표현법은 옛날 선조들이 그들의 관찰과 예지에 근거하여 독특한
방식으로 실현시켜 온 일이지만 그와 같은 일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같은 정신에서 새롭게 관찰, 파악, 터득하는 데에 이 작가의
무게가 있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이게 되는 그의 그림들은 하나도 의도적이 아닌 것 같이 보이게 하는 그의 의도가
얼마만큼 자연의 실체에 가까운 것이었나를 증명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는 그림을 여유있게 즐기는 마음으로 행하였으며 그 마음까지를 그의
그림은 전하게 된 것이다.
살아있는 힘의 자연을 그리는 일
같은 대상을 두고 형태와 색채, 모티브와 구도를
그릴 때마다, 변경시켜 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화가에게 있어 그같은 작업을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가 물을 것 같으면 아마 살아 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려는데 그 뜻이 있다고 대답할는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 형체가 있든, 빈 공간을 나타내든 간에 그것은 단순히 그것만의
존재로 그 의미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 가득히 충만해 있는 이 기운을 어떻게 적절하게 이들 수단을 통해 전할까 하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그
점은 이 화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중심적 과제가 된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원시의 종합적인 자연관점이든지, 근시의 분석이고
해부적인 시점이든지 간에 화제나 모티브의 서열에 차이가 없이 모든 경우에 있어 이 자연에 감도는 발랄한 기운을 전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바르고 지워가는 사이에 색면과 그 위에 칠하는 색점, 이들이 어울려서 그같은 기운을 나타내는 주요 담당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위에 더 색필선의 속도에 따라 새로운 요소, 즉 대담한 운동감 속도감을 가함으로서 더욱 살아있는 자연의 힘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60, 70년대에 중기의 평온에서 이와 같이 근래에 와서는 보다 동적이고 표현적인 방향으로 그 방향을 바꾸고
있다. 거칠 만큼의 색필선을 개별적인 대상의 형태감을 넘어서서 화면을 크게 지배한다. 중심적인 요소로서 부각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과
시도도 보기에 따라서는 자연의 힘과 그것에 의해 가득찬 기운을 담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보다 중요한 문제로 전환하는 그의
예술적 과제에 연관된다는 점을 알 수 있겠다.
물론 이같은 문제는 나중에 언급할 그의 그림에 있어서의 색채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선 그의 그림에서 잠깐 엿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가 설정한 공간감의 일반적인 성격이 어떤 것인가를
몇가지 주요 구도에서 찾아보기로 한다.
얼핏 보기에 평범한 것 같은 이 작가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구도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면서 다양한 효과를 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다. 상식적이지않는 시점과 범상치 않는 구도 설정은 그의 그림에 아주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맛을 보태주는 역할을 가지게 한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연속된다면 나중에 가서 경우에 따라 추상화된 그림의 세계로 연결되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이같은 단순 모티브와 구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특유한 예를 서열에
관계없이 돌아보면 아래와 같다.
▲농원,
80.3×116.8cm, 1980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그제그선에 의해 이어지는 논, 그 뒤에 길, 그 뒷산의 연봉 그리고 약간의 하늘이라는 원시적인
구도라든가 앞에 깊숙이 들어와서 부각되는 단순 풀꽃이나 나무가지와 같이 그 뒤의 배경까지 거의 지배하는 근시적 표현과 같은 점은 어떻게 보면
대조적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구도는 그가 잘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감각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매우 넓은 공간을 앞에나 뒤 혹은 아래나
옆에 가지고 있음으로 매우 투명한 공기 소통을 직감케한다. 그의 그림이 대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숨쉬게 하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여유에 대한 미감으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마는 보다 이같은 모티브에서 오는 넓은 공간감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서양 그림에서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조상 때부터 내려 받아 오는 텅비면서 꽉찬 특유한 공간감이란
것을 여기에 적어두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공간감을 감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재를 그려서 평면적인 화면에 어떻게 입체적인 공간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그는 이와 같이 일종의 투명 공간의 설정과 시각적인 여백의 설정으로 그것을 수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점은 그의 그림에 있어 소재와 배경과의 관계에서도 언급될 수 있다. 그 점은 색채에서 분명하다 하겠다.
빛의
향연으로서의 색채의 의지
이대원의 그림 화면 하나의 정평있는 특징이 있다. 색점인지 색면인지 마치 물 속이나 가득한
눈속에서처럼 온 화면을 뒤엎은 색채 찬란한 그림이란 말이 그것이다. 누구든지 그의 그림에 대해서 일단을 그렇게 보고 느끼게 되며 또한 어느
때든지 그런 그의 그림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특징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 근거지는 그러면 어디에 있는가?
12계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그림에는 시절에 따라 독특하게 주도적으로 발휘되 색감이 있고 그 색감이 어울려 다시 한번 그림 배경에 반향을
일으켜 호응케 함으로서 독특한 조화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효과는 물론 대상표현과 공간표현간에 필법이나 필적의 방향에 따라 서로 계산된
관계와 엄밀하게 계획되는 작업 아래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만 그의 그림에 그러한 주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색채 사용방법에 있다는
것은 제언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화로운 가운데에 기운이 있는 그의 독특한 화면은 대상과 공간을 표현하는 필법뿐만 아니라 색채감의 조화요.
사용한 모든 색상의 반향작용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보랏빛, 노랑빛이라는 주조색의 하늘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오기도 하는 것이다.
▲농원,
80.3×116.3cm, 1994 | 이와 같은 그의 독특한 색채감이 그에게 축적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색채를 빛 속에서 발견하며 그것이 자연이든
인공적이든 아름답고 영롱하게 빛나는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밝은 빛에 의해 아름답게 빛나는 그가 성장한 고장의
자연이라든가 자수, 나전칠기, 유기와 같은 인공적인 공예물, 즉 우리나라 전통공예물과 같은 데서 그는 일단 빛에 의해 빛나는 색채의 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와 같이 그의 그림에 터득했던 것이다. 대개 포함되어 있는 기본 색채는 적, 황, 청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광(日光)에 포함되는 기본 색상이다. 그러한 색상이 혼합됨이 없이 대개 중간색이 녹, 주황, 자색을 병행시키며 연결되어 독특한 아름다움과
밝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자기 색상 연결의 독특한 기법을 가령 우리나라 나전칠기 기법인 끊음지과 이음지과 같은 데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진작 그 같은 방법에서 여러 색상이 끊어지고 이어질 때 거기에는 뜻하지 않는 밝음의 빛의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단순하게 불연속적으로 연결된 색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어울려 밝은 빛을 만드는 발색하는 색깔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별 색채 상호간의 관계 그리고 위치에 따라 이같은 색채가 어울리는 빛은 필연적으로 차이가 날 것이다. 그의 그림에 12계절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다양한 색감의 자연표현은 바로 이러한 차이에서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덧칠하여 생기는
색면이나 색점, 그리고 긴 필치로 이어지는 표현적인 필법에서, 우리는 이 작가가 점이고, 면이고, 선이고 하는 조형적 표현요소를 동원하여 그가
정말 나타내려 해온 것은 '높은 차원의(동양적인)공간개념'이며 다름아닌 그것을 빛나는 공간으로 전환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색채 사용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의 화가 파울 루벤스가 생기있는 산을 그릴 때에 적과 청의 반점을 병렬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사항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작가 자신이 말한 적이 있는 것처럼 찬 색과 따뜻한 색을 병치시켜 화면 전체에 깔아 볼 때에 공간감과 동시에 색채의
조화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대단히 좋은 시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밝고 강렬한 색감으로 빛나게 한다는 점을
여기에 첨가하고자 한다.
이러한 색채 사용법은 그러한 밝음이 효과 이외의 공간의 깊이, 원근의 거리, 그리고 밝고 어둠의 효과까지를
그가 사용하는 점, 면, 선의 방법과 함께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정적 속에 찾아보는 우리의
미의식
소나무가 있는 고궁 담, 이것은 이 작가가 한 때에 즐겨 그리던 주제 중의 하나다. 1986년 워싱턴 주재 신축 한국
대사관저에 새로 설치하게 된 대형(200 x 500 cm)인 그의 신작도 역시 그런(담)의 작품이다. 고 김수근씨가 설계한 목조 건축 내 대형
응접실에 알맞게, 마치 우리의 미감이 되살아나듯 작품은 그 곳에 안치되고 있었다.
▲담, 50×65.1cm,
1970, 나상기 소장 | 60년대이래 그는 일반 서양 유채화가 보여주는 그림 내용과는 달리 애써 우리네의 미감이 깃든 60년대 이래 그는 일반
서양 유채화가 보여주는 그림 내용과는 달리 애써 우리네의 미감이 깃든 건축 구조물이나 소재에 집착하게 되고 또 그런한 내용에 맞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소나무가 있는 고궁담과 같은 소재에 집착하게 되고 또 그런 내용에 맞는 표현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소나무가
있는 고궁담과 같은 화제도 그런 맥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에 고귀한 품격이 우러나오는, 그러나 화면에 옮기기에
어려움이 많은 그런 주제에 그는 정신을 집중하였던 것이다. 그런 고귀한 품격에 대한 미의식의 발동은 더 나아가서 인간이 아닌 자연에 대한 우리의
미감을 되찾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자연 그림이 아무리 격렬한 색감과 역동적인 필치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그 저변에 깔린 고귀한
품격을 전제로 한 미의식은 그에게 결국 여유의 미로 나타나게 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는 결국 그같은 미의식이 인간이 아닌 자연에
근거를 두게 되었고 우리가 그 사이 자칫 잊어버리기 쉬었던 그러한 미감을 따라서 그는 되찾도록 자극을 준 격이 된 셈이다.
이러한
각성을 그는 물론 그냥 하게 된 것은 아니다. 1956~57 미국과 유럽을 여러 달 여행 하는 과정에서 그가 그 곳의 당대 미술을 직접 접하게
되었을 때 불현 듯 깨우치게 된 각성이었다.
그같은 귀한 경험을 귀국 직후 그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우리나라 미술의 높은
조형감각과 예술성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높여 주었고 그같은 좋은 미술문화 전통을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현대라는 시점에서 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이 작가의 그림에서 그동안 잊어버린 고유한 미감을 되찾으며 또한 그러한 미감을 통해 그의
그림을 통해 그의 그림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자료제공/박래경 미술
평론가..
“작품소재에 관한 작가자신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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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농원 나무 연못은 어린 시절 그곳에서 뛰놀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처음 눈떴던 나의 우주였습니다. 무덤 옆에서 피어나던 털이
보송보송한 할미꽃, 언덕 위 파밭에서 피던 파꽃…. 이런 기억들이 나이 들수록 더 생생해지는 것은 신기합니다. 내 그림의 빛깔들이 점점 밝아지고
또 즐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점점 동심으로 돌아가 자연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화가가 노년에 이를수록
추억은 더 따뜻해지고, 그 따뜻한 추억은 화폭에서 '천진한 즐거움'으로 빛난다. 계간미술 1986. 봄호
|
작업실의 화가 - 선과 점들로 되살리는 나의
소우주
그의 집과 뜰과 나무들은 그 자신의 일부로 마음속에 들어있다가 수없이 화폭에 옮겨지곤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은 오래 살아온 집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선생님의 그림들은 점점 더 즐거워지고, 밝아지고, 생동하며, 낙천적이 돼
가는 듯 합니다. 이런 의견에 선생님도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신다면 그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요.
"그 즐거움은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의 경험이 매우 행복했다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내가 계속 그리고 있는 산 농원 나무 연못은 어린 시절 그 곳에서 뛰놀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처음 눈떴던 나의 우주였습니다.
▲언덕의 파밭,
37.9×45.5cm, 1938 | 60이 훨씬 넘는 오늘도 나는 과수원을 거닐며 어린 날의 느낌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무덤 옆에서 이른 봄에
피어나던 털이 보송보송한 할미꽃, 한여름 마당의 꽃밭에서 붉게 타오르던 맨드라미, 언덕 위 파밭에서 피던 파꽃, 사냥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가 꿩
오리 노루 등을 잡던일…. 이런 기억들이 나이 들수록 더 생생해 지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내 그림의 빛깔들이 점점 밝아지고 또 즐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점점 동심으로 돌아가 자연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래오래 바라보는 동안 거의 나
자신의 일부가 돼 버린 대상이 아니면 여간해서 그리지 않는 편입니다. 1985. 한국일보. 장명수
내가 작품 속에 인물을 전혀 그리지 않는 이유도 속(俗)된 인간은 제외시키는 것이 오히려
순수하게 자연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 때문이지요.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 교교한 달밤에 서있는 대나무, 국화, 난초, 조선 후기
문인화에 등장하는 괴석 형태의 바위들은 동양화의 정신을 양화에 접목시키려는 그의 노력으로 읽혀진다.
70년대 이후 그의 그림은
커다란 전환기를 맞는다. 점묘가 두드러지면서 화제(畵題) 또한 압축되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 연못 하나에서
무한히 많은 것을 보게 됐지. 아무리 그려도 나무의 모습은 끝이 없는 걸, 계절마다 시간마다 또 내 심상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니 같은 소재를
반복해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느꼈다고 할까?"
"파노라마 사진같이 과수원의 춘하추동을 그려보고 싶어. 재료는 서양
것이어도 마음은 자꾸 동양화에 다가서는 걸 느끼지." 행복이 가득한 집 1994.1월호, 디자인 하우스 사이버 갤러리/한국의 대가
1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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