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우리나라 畵壇

[스크랩] 이중섭 사건과 미술 감정의 문제

鶴山 徐 仁 2005. 8. 19. 13:39


1996년 1월 11일에 일어난 에릭 헵번(Eric Hebborn)의 살해사건은 20세기 최고의 미술품위조 전문가의 종말을 고했다. 그는 로마의 한 거리에서 등뒤에서 해머로 얻어맞은 듯 두개골이 부서진 채로 발견되면서 미술계뿐 아니라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은 그가 죽기 전 불과 몇 주 전에 예술품 위조 방법과 유럽 사회에서 어떻게 위조 드로잉과 페인팅을 유통시킬 수 있는가를 소개한 두 번째 저서 〈위조범을 위한 핸드북(Il Manuale del Falsario)〉의 출판을 마친 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궁굼증을 더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술품위조 전문가로 활약해 온 대표적인 인물들은 에릭 헵본 이외에도 영국의 존 미야트(John Myatt, 1945∼), 독일의 로타르 말스카트(Lothar Malskat, 1912∼1987), 헝가리의 엘미르 드 호리(Elmyr de Hory, 1905∼1976), 그리고 영국의 존 드류(John Drew, 1948∼)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진품으로 둔갑하여 이미 전세계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정보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니컬러스 터너가 폴 게티 미술관에 제기한 라파엘 작품의 진위사건을 비롯한 르네상스시대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위조 가능성은 미술계 전문가들을 경악케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도 위조품을 제작한 인물로 지목된 이가 바로 에릭 헵본이었다.

미술품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위인가? 사실상 일반적인 미술시장에서는 별 관심을 갖지 못하는 문제일 수 있지만 고가의 작품을 거래하거나 소장할 때 언제나 난관에 부딪히는 것이 바로 감정문제다. 그러기에 미술품감정 전문가들에게 이 부분은 가장 민감한 과제이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사건이 발생해 왔지만 지금까지도 면밀한 분석이나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위조 현태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완전모작--위작이 일정한 대상작품을 두고 이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으로 대체로 위작전문가가 가장 기초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훈련과정으로 여겨지는 이 방법은 실제 위작에도 다수 등장한다. 이 경우 최근 발달한 영상매체(슬라이드, 빔프로젝트)에 의한 복제가 가능하다. 2. 부분모작--위조하려는 대상작품을 모델로 하고 상당부분을 모작하지만 부분적으로 자신의 창작 요소를 가미하는 방법이다. 3. 모자이크법--위작 대상작가의 여러 작품을 한곳에 적당히 배치하고 각 부분을 모사하는 방식이다. 높은 수준의 안목과 위작기술이 필요하다. 4. 창작적 위작--위작 대상작가의 평소 기법을 오랫동안 연습하고 익혀서 위작자가 스스로 창작적인 구도와 소재를 개발하여 제작하는 방식으로 고난도 기술을 요구한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법은 완전모작이나 부분모작 단계이며, 갈수록 노련한 창작적 위작 기법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해외의 경우처럼 대규모적이거나 전문성을 갖춘 예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사건이 발생해 왔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로는 사건발생 이후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진 예가 극히 드물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검토를 통하여 결론에 도달한 예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대부분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리나 이성적인 대처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이 앞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품감정 영역을 쉽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미술평론이나 미술사 등의 학문적 연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있다고 하여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감정은 분명한 전문 영역이며, 최소 10년 이상의 경륜과 많은 위작을 직접 접하고 이를 상대로 다양한 비교와 연구를 반복하면서 위조수법에 대한 가견을 지닐 때 비로소 감정의 독자적인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학문적 경륜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는 원인은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 신중을 기하여 치밀한 준비를 거쳐야 하는데도 다소 성급한 판단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토론의 장을 전제한 논의가 결여된 예가 많았고, 단순히 감정기구의 결론이 상이하다고 하여 감정 자체가 문제 있다고 매도하는 것도 아마추어적인 판단이다.

국내에서도 빈번한 위작 시비

감정과정에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신중하게 다양한 가능성을 전제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과학감정을 병행하면서 그 가능치를 추정하기도 하며, 이러한 결과에 따라 최종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수천 점의 작품을 감정하다 보면 극히 미미하게 상이한 결론이 도출되는 예는 세계적으로 얼마든지 있다. 다만 이러한 비율이 얼마나 많은지가 문제일 따름이다. 감정의 정확도도 중요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만의 하나라도 작용할 수 있는 부정의 소지나 최적의 인적 구성, 감정절차의 정당성이 언제나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감정기구의 통합논의와 같은 연대의 필요성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 나라는 전체 감정의뢰 작품 중 30% 가량이 위작으로 밝혀졌지만 사실상 감정의뢰작품의 신뢰도가 이미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하면 그 절반인 15% 정도의 고가작품은 일단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자료출처:월간미술

 

 

 

 

 

 

 

 

 



1996년 1월 11일에 일어난 에릭 헵번(Eric Hebborn)의 살해사건은 20세기 최고의 미술품위조 전문가의 종말을 고했다. 그는 로마의 한 거리에서 등뒤에서 해머로 얻어맞은 듯 두개골이 부서진 채로 발견되면서 미술계뿐 아니라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은 그가 죽기 전 불과 몇 주 전에 예술품 위조 방법과 유럽 사회에서 어떻게 위조 드로잉과 페인팅을 유통시킬 수 있는가를 소개한 두 번째 저서 〈위조범을 위한 핸드북(Il Manuale del Falsario)〉의 출판을 마친 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궁굼증을 더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술품위조 전문가로 활약해 온 대표적인 인물들은 에릭 헵본 이외에도 영국의 존 미야트(John Myatt, 1945∼), 독일의 로타르 말스카트(Lothar Malskat, 1912∼1987), 헝가리의 엘미르 드 호리(Elmyr de Hory, 1905∼1976), 그리고 영국의 존 드류(John Drew, 1948∼)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진품으로 둔갑하여 이미 전세계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정보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니컬러스 터너가 폴 게티 미술관에 제기한 라파엘 작품의 진위사건을 비롯한 르네상스시대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위조 가능성은 미술계 전문가들을 경악케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도 위조품을 제작한 인물로 지목된 이가 바로 에릭 헵본이었다.

미술품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위인가? 사실상 일반적인 미술시장에서는 별 관심을 갖지 못하는 문제일 수 있지만 고가의 작품을 거래하거나 소장할 때 언제나 난관에 부딪히는 것이 바로 감정문제다. 그러기에 미술품감정 전문가들에게 이 부분은 가장 민감한 과제이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사건이 발생해 왔지만 지금까지도 면밀한 분석이나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위조 현태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완전모작--위작이 일정한 대상작품을 두고 이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으로 대체로 위작전문가가 가장 기초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훈련과정으로 여겨지는 이 방법은 실제 위작에도 다수 등장한다. 이 경우 최근 발달한 영상매체(슬라이드, 빔프로젝트)에 의한 복제가 가능하다. 2. 부분모작--위조하려는 대상작품을 모델로 하고 상당부분을 모작하지만 부분적으로 자신의 창작 요소를 가미하는 방법이다. 3. 모자이크법--위작 대상작가의 여러 작품을 한곳에 적당히 배치하고 각 부분을 모사하는 방식이다. 높은 수준의 안목과 위작기술이 필요하다. 4. 창작적 위작--위작 대상작가의 평소 기법을 오랫동안 연습하고 익혀서 위작자가 스스로 창작적인 구도와 소재를 개발하여 제작하는 방식으로 고난도 기술을 요구한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법은 완전모작이나 부분모작 단계이며, 갈수록 노련한 창작적 위작 기법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해외의 경우처럼 대규모적이거나 전문성을 갖춘 예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사건이 발생해 왔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로는 사건발생 이후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진 예가 극히 드물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검토를 통하여 결론에 도달한 예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대부분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리나 이성적인 대처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이 앞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품감정 영역을 쉽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미술평론이나 미술사 등의 학문적 연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있다고 하여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감정은 분명한 전문 영역이며, 최소 10년 이상의 경륜과 많은 위작을 직접 접하고 이를 상대로 다양한 비교와 연구를 반복하면서 위조수법에 대한 가견을 지닐 때 비로소 감정의 독자적인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학문적 경륜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는 원인은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 신중을 기하여 치밀한 준비를 거쳐야 하는데도 다소 성급한 판단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토론의 장을 전제한 논의가 결여된 예가 많았고, 단순히 감정기구의 결론이 상이하다고 하여 감정 자체가 문제 있다고 매도하는 것도 아마추어적인 판단이다.

국내에서도 빈번한 위작 시비

감정과정에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신중하게 다양한 가능성을 전제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과학감정을 병행하면서 그 가능치를 추정하기도 하며, 이러한 결과에 따라 최종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수천 점의 작품을 감정하다 보면 극히 미미하게 상이한 결론이 도출되는 예는 세계적으로 얼마든지 있다. 다만 이러한 비율이 얼마나 많은지가 문제일 따름이다. 감정의 정확도도 중요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만의 하나라도 작용할 수 있는 부정의 소지나 최적의 인적 구성, 감정절차의 정당성이 언제나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감정기구의 통합논의와 같은 연대의 필요성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 나라는 전체 감정의뢰 작품 중 30% 가량이 위작으로 밝혀졌지만 사실상 감정의뢰작품의 신뢰도가 이미 떨어진 상태임을 감안하면 그 절반인 15% 정도의 고가작품은 일단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자료출처:월간미술

 

 

 

 

 

이중섭그림 알고 감상하면 재미있다

 요즘 한창 위작논란이 뜨거운 이중섭그림은 비싸기로 유명하다.
 손바닥만한 엽서그림 한 점이 억대를 넘는다. 수억짜리도 많다.  그래서 화가중에 위작이 가장 많다.
 이미 나와 있는 이중섭그림 중 70%는 가짜라고 한다.
 
 그러면 이중섭그림은 뭐가 특별한가 그리고 특징이 뭔가.알아보자.
 이중섭 그림은 그 특징을 알고 보면 재미도 있고 역시! 그렇군 하고 이해가 된다.
   
 이중섭그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묘다.
 그의 탁월한 선묘는 형태의 윤곽선이 아니라 작품 구성의 주요한 부분으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은지화 등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선묘는 단순해 보이지만 자유분방하고 강렬하면서 대상의 특징을  율동감과 생동감있게 묘사한다.   

 최근 위작파문을 일으킨 일련의 작품들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또  이중섭의 인물그림은 생략과 과장이 특징이다.
 이중섭특유의 생략과 과장은 그만의 독창적인 인물상을 그려낸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정상적인 인체비례가 무시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정확한 비례감을 갖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몸동작이지만 인체 각부분의 특징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그린 이중섭그림은 인체비례나 움직임이 철저히 과학적이다.   
 
언뜻보면 이중섭그림은 붓가는대로 그린 것으로 느껴지지만, 묘사의 생명감과 비례의 정확성, 선 자체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표현미는 이중섭예술의 3대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래 그림 참조)

 아래 두 그림 중 하나는 가짜고 하나는 진짜다.
 어느 그림이 진짜일까?  (뭐~ 알아 맞춰도 상품은 없다) 
 
 파란 칠이 안된 맨 아래 하얀 그림이 진짜작품이다
 왜냐고? 
 
 흠 흠~~고걸 지금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중섭그림 공부 좀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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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그림에서  기어가는 두 아이와 오른쪽 새를 보자.
 똑같다.. 그러나 다르다

 뭐가 다르냐고?

 파란 칠이 된그림을 보자 
 바탕이 파란 물(바다)로 표현했다.
 
 1. 물의 표현

  사람이 물위를 기어갈 수 있을까? 두아이가 모래 위를 기어가듯 물위를 기어간다 가능한가?
 또 물위에서 새들은 다리를 보이며 걸어 다닐 수 있을까?
 물위라면 새들의 다리는 보이지 않는 게 묘사의 기본! 

 원작그림은 어떤 색칠도 안했지만 아이가 기어가는 부분과 새가 서있는 부분은 모래밭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기어다니며 새들도 다리를 보이며 걸어 다닐 수 있다.

 2. 수평선 오른쪽에 뭔가 보인다
 
 진짜그림은 고깃배를 나타 내고 있지만 위작은 건물 또는 굴뚝으로 처리했다. 바다에 한가운데에 웬 건물과 굴뚝? 작품을 베끼면서 뭔지 모르고 베낀 것이다.
 또 진짜작품은 고깃배 아래 몇개의 점선으로 바다를 나타내고 있다.
 
 몇개의 선과 점선만으로 이중섭은 모래와 바다를 절묘하게 구분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그림은  파랗게 칠을 해서 어디가 바닷가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안된다. 

 이중섭그림은 이처럼 선과 점만으로도 충분한 표현을 하는 작가다. 완벽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를 천재화가라고 부른다.
 


 
가져온 곳: [..]  글쓴이: 너와집나그네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