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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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긷동길 교수의 역사학 강의-역사의 의미/인간 생존의 수수께끼

鶴山 徐 仁 2005. 7. 31. 11:27

제1부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의 의미/인간 생존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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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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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구슬 서 말을 다 캐내지는 못하였어도 캐낸 구슬만을 가지고도 이를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야하는 것이 역사가다.

수학자가 어려운 수학 문제는 하나 풀고 나서 'It is beautiful!' 이라는 감탄사를 던져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듯이 역사가도 꿰어놓은 구슬 목걸이를 손에 들고 'It is beautiful!' 하고 외치는 것이 사실이다. 한 시대정신으로 투시하는 역사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역사는 사람이 이룩한 것이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볼 때 역사는 또한 하느님의 옷이며 작품이다. 하느님의 옷에 대하여 관심이 없을 사람이 누구겠는가?

흔히 역사처럼 따분한 것이 없다고 불평들인데 그런 불평의 이유는 충분히 있다고 나도 믿는다. 내게도 역사책이 몇 천 권 있지만 그 가운데 재미있는 책이 과연 몇 권이나 될는지, 거들떠 볼 필요도 없는 책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시대정신을 파악함 없이 쓰여진 역사이기 대문이다. 시대정신이 결여되었다는 말은 얼이 빠졌다는 말이다. 얼이 빠지면 사람이건 작품이건 흥미가 없을 것은 뻔한 노릇이다. 구슬 서 말만 가지고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기번(Edward Gibbon, 1737~94. 영국의 역사가)의 로마 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가 계속 읽히는 까닭은 그 전체를 꿰뚫어 흐르는 기번의 시대정신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다고 잘라서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점(鮎)에 불과한 시대와 시대를 이어보면 선(線)이 되는 것이 물론이다. 그 선은 불확실하나마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 선의 끝에 역사의 위대한 목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에 펄쩍 뛸 까닭은 없다. 저 수평선 너머 남실거리는 흰 돛단배 한 척이 때때로 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가끔 역사의 그 끝을 보기도 한다. 지식의 눈만으로는 보지 못한다. 나는 믿음의 눈으로 본다.

역사는 '자유 인구의 저변 확대' 라는 말로 대충은 설명할 수 있다. 한 왕조나 정권의 업적을 물질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미 역사가 아니다. 피라밋을 보라. 밑으로 내려올수록 돌의 수효는 많아진다. 그렇게 퍼지고 확대되도록 방향은 이미 결정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역사의 이런 물결을 무시한다면 역사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각자 공적이야 무엇이라 내세우건 히틀러(A. Hitler, 1889~1945. 독일의 정치가)나 스탈린(I.V. Stalin, 1879~1953. 소련의 정치가)이나 프랑코(F.Franco, 1892~1975. 스페인의 정치가)는 다 한심한 사람들이며 역사의 실패작들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친구들도 있지만 사람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어디 가서 올바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경험 이상 훌륭한 스승이 없다고 하면서 역사를 스승으로 삼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면 평등은 어찌 되는가고 따지고 들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유를 강조하는 나머지 평등을 소홀히 여긴다는 비난을 종종 받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은 내 뜻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하나만 없어도 수레는 수레 구실을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손으로 바퀴 두 개를 당장에 다 만들 수 없을 때 어느 바퀴부터 만들어야 하는가 그 순서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명백하다. 자유의 바퀴를 먼저 만들고 평등의 바퀴를 만들어야지, 만일 평등의 바퀴를 먼저 만들려 든다면 만들기도 힘들 뿐 아니라 설사 평등의 바퀴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도 자유의 바퀴를 만들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우려가 있다(오지 않는다는 표현은 다소 과장이고 오기는 오되 매우 더디 오게 되리라는 말이다).

순서가 잘못되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는 우리 역사에도 허다하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유의 창문으로 내다보면 평등으로의 길이 훤하게 보이지만 평등의 창문에서는 자유로의 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소련이 자유의 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은 날이 갈수록 내 마음속에서 굳어지는 것 같다.

시인 밀턴(J. Milton, 1608~74. 영국의 시인)은 실락원 을 쓰면서 '하느님이 사람에 대해 하시는 일을 옳다 하기 위해서(새 justify the ways of God to man)'란 유명한 말을 남겼거니와 나는 역사를 공부하여 얼마만큼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게(知天命)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

역사를 공부하여 '인간 생존의 수수께끼'를 풀 수는 없다. 역사라는 학문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자그마한 노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노력 때문에 삶에는 보람이 더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삶은 여전히 아름다운 수수께끼가 아닌가!

출처 : 교육학 관련강의
글쓴이 : 관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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