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의 의미
<역사창조>
사람이 지구상에 나타난 때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겠지만 그때를 50만 년 내지 1백만 년 전으로 잡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비슷한 의견인 듯하다.
그러나 이른바 문명의 시대는 한 5천 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니 50만년, 1백만 년에 비한다면 5천 년은 지극히 짧은 세월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말(言語)을 가지게 된 지는 어지간히 오래 되었겠지만 그 말이 글(文字)로 적혀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되기까지의 세월은 이른바 역사 이전의 시대라 하여 이를 역사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고, 사람의 생각이나 뜻이나 느낌이나 살림이 문자로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지게 된 때부터를 역사시대라 하여 이를 역사가의 주요 관심의 영역으로 삼는 것이니, 이 학문의 한계는 우선 여기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역사는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인간의 경험 전체를 파헤치고 문제삼아야 마땅하리라고 믿는다. 사람은 뱀이나 비둘기와는 달리 지나간 수십만 년 동안 부단히 변화하고 진화한 것이 분명한데 사실상 그 변화와 진화 어느 과정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는 없을 테니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인간의 오늘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창조의 첫날부터 우리는 '인간 생존의 영원한 수수께끼'를 풀어보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종교와 철학, 심지어 과학과 예술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인간적 노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이라는 학문도 어차피 그 노력의 일부라 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삶이 무엇인지를 밝히 아는 사람은 없다. 삶은 땅 속에 파묻힌 구슬 서 말과도 같다. 그 한 개를 캐내어 물로 씻고 헝겊으로 닦는 노력을 과학이라고 한다면, 역사는 서 말의 구슬을 다 꿰어 하나의 목걸이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목걸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 예술이 되고 이것의 의미나 가치를 따지면 철학과 종교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구슬 서 말'의 명제에서 나는 역사와 다른 학문들과의 관계를 이해코자 한다. 우선 하나의 공리(公理)를 설정하고 그 모순이나 예외의 대한 보충설명을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는 많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 공리는 단순하게 공식화될 수도 있다.
가령 과학을 S로, 역사를 H로, 철학을 P로, 종교를 R로, 예술을 A로 표기하여 분자로 삼고, 인간을 M으로, 시대정신을 알파(α)로 표기하여 분모로 삼고, 삶이라는 영원의 수수께끼를 X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은 항등식이 성립된다.
S+H+P+R+A X = ―――――――― M+
역사학이라는 학문도 궁극적으로는 이 항등식을 풀어보려는 노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바탕이 사실(facts)인데 사실을 추구하는 것은 과학이다. 그렇다면 과학정신 없이 역사는 불가능한 학문의 영역이다. 아무리 수백 년 수천 년을 두고 신성불가침으로 간주된 문헌이나 기혹에도 사실 아닌 것이 끼어들었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 일단 의심하고 다루라는 경고는 역사학도에게 다시 없는 귀중한 교훈이다. 우리가 가진 역사책의 내용의 반은 거짓일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역사상의 사건들이란 물이나 화학의 실험처럼 되풀이 될 수 없고 오직 한 번으로 끝나 버리기 때문에 어느 사건 하나도 정확하게 사실대로 기록되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4?~425? 그리스의 역사가, 여행가)가 페르시아 전쟁사 를 썼지만 기원전 5세기에 기록된 이 책이 정확한 사실만으로 엮어졌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BC 460?~395? 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가 기원전 431년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련된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진실을 추구하기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는지? 믿어도 좋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과학이 있어 역사에는 많은 도움을 준다. 과학이나 과학정신이 없었더라면 역사가는 야담가(野談家)나 이야기꾼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 명백하다. 그러면 다시 '구슬 서 말'의 근본 명제로 돌아가보자. 땅에 묻힌 구슬 서 말을 다 캐냈다 하여도 끈을 들고 이 구슬을 꿰어야하는 책임은 역사가에게 있다. 구슬 서 말이 다 필요한 것도 아니거나와 그것으로 두서너 번 못을 감을 긴 목걸이를 여러 개 만들 수도 있다.
베버리지(Albert J. Beveridge, 1862~1927)라는 이는 '사실들을 옳게 배열만 하면 설명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Facts when justly arranged interpret themselves)' 라고 했지만, 천지개벽 이후 우리 인류가 끊임없이 겪어온 그 다양한 경험에 얽힌 엄청난 사실들을 '옳게 배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아무리 사실이라 하여도 그 구슬을 추려서 꿰어야 보물이 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그 사실들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말이다.
역사는 과학의 도움을 받지만 그 반면 철학이나 종교는 역사의 도움 없이 제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인류의 오늘만을 가지고는 깊이있는 생각이나 진지한 행동의 근거를 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어제라고 하는 광범위한 체험이 있기에 비로소 철학과 종교에도 씨가 먹어들어가는 것이다. 깊이가 생기는 것이다. 역사의 바다가 아니고는 철학이나 종교와 같은 큰 물고기가 헤엄치면서 노닐 장소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확실하게 있는 것은 역시 과거뿐이다. 역사뿐이다.
예술은 인간의 모든 업적, 모든 문화의 꽃이나 다름없다. 물론 예술가는 직관(直觀)을 존중하지만 S와 H와 P와 R 없는 예술은 물 위에 떠가는 부평초(浮萍草)나, 아니면 하늘가에 흘러가는 구름조각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이 감정의 유희(遊戱)가 되지 않고 애상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먼저 든든한 뿌리와 확실한 바탕을 지녀야 한다. 그렇다면 S,H,P,R은 예술의 부수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필요불가결의 필수품임을 깨달아야 한다.
분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분모인데 M+ 는 매우 흥미있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M은 인간이다.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본질의 알맹이는 역시 식욕과 성욕이다. 이렇게만 풀이하면 사람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다를 바가 없지만 그렇지는 않다. 동물에게는 본능적 욕망을 제어하는 자동장치가 날 때부터 달려있어서 때를 가려가며 성교(性交)하고, 한때에 먹는 먹이의 분량이 소화력의 한도는 넘는 일이 없지만, 사람은 계절이나 처지를 가리지 못하고 성욕을 느끼며 배탈날 것을 생각 않고 과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본능은 반드시 이성(理性)의 도가니를 거치고 항상 그 경고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을 잃고 신세를 망친 사람은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본능의 상전(上典)이 따로 있는데 그 이름이 이성이라는 말이다.
동물계에도 서로 패권(覇權)을 다투는 일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처럼 그렇게 처절하고 심각하지는 않다. 사람은 배를 타면 선장이 되고 싶어하고, 군대에 가면 장군이, 정계에 나서면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 사실 이런 욕심은 동물에게는 없는데 사람만이 이를 무한정 타고난 셈이다. 여기에도 이성의 브레이크가 꼭 필요하다. '분수를 알아야'라는 속담이나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격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이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성을 잃은 사람은 과학이고 역사고 철학이고 종교고 논할 가치가 없는 셈이다. 그 까닭은 이 모든 인간의 정신적 노력이 사람의 이성을 분모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을 제거한 일체의 인간의 노력은 X로 표시된 '인간 생존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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