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은 비단 한국에 국한된 현상만이 아니고 일종의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가 있다.
해방 직후는 물론이고 6·25사변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학들의 역사학과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으며, 역사교육의 필요를 강조하는 학자나 교육자는 몇 되지도 않는 실정이었다. 역사란 어쩐지 따분한 학문의 분야 같아서, 이 길을 가라고 권하는 선배들이 설혹 있었다 하여도 우리는 별다른 큰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부르짖음이 여기저기서 떠들썩하게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는 해마다 50만 명의 대학생들이 역사과목을 택하여 등록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학생수가 많은 까닭은 학교당국이 교과목 편성에 있어 역사라는 학과를 매우 중요시하여 이를 저학년에서의 필수로 지정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지만, 상급학년에서도 전공의 분야가 과학이건 미술이건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무척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다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현상이란 말이다.
역사가 어찌하여 학문의 세계에서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첫째, 역사학은 인문과학의 바탕을 이루는 것뿐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류의 정치적 현실이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느껴지므로 이 미궁에서 빠져나가는 실마리를 지금까지의 인류의 경험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을 안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H.W. Longfellow, 1807~82)가 <인생의 노래>에서,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는 믿지 말자! 흘러간 과거일랑 죽은 채 묻어두고! 활동하게, 활동해, 살아있는 이 현재에!
라고 읊었지만, 사실은 '흘러간 과거를 죽은 채 묻어두고' '살아있는 이 현재에' 활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왜?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를 모르고는 현재를 올바르게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어려운 현실의 타개책을 역사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마치 곤경에 빠진 젊은이가 동네의 노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도움이 될만한 정직하고 지혜로운 몇 마디의 충고를 들려줄 수 있어야겠는데, 이 시대는 역사가에서 그런 무슨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각기 견해가 다르고 주장이 판이하다. 역사란 워낙 엄청나게 기나긴 인류의 복잡한 체험인데, 그것을 풀이하자니 자연 가지각색의 의견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역사는 위인의 전기라고 잘라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역사는 계급의 투쟁에 불과하다고 우겨대는 사람도 있다.
역사가는 저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때문에 얼른 보아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역사 풀이의 스타일을 다음 세 가지의 범주로 묶어볼 수는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역사란 인간이 과거에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남기고 간 말이나 생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견해다. 매우 단순하고 보편적인 무난한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역사를 전기(傳記)로 간주하는 입장이라고 하겠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역사란 '창조적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으로서, 역사를 쓰는 사람은 일정한 시대에 실제로 살았던 특수한 인물들의 생애나 사상을 그 작품 속에서 재생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사라는 학문은 인간을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의 그의 사회적 상황에다 놓고 연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사회성이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셈이다.
역사에 관한 모든 복잡한 견해가 따지고 보면 앞서 지적한 이 세 가지 카테고리 가운데 어느 하나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역사과학파들도 물론 예외일 수는 없다.
역사는 인간의 지나간 업적이나, 남기고 간 말이나 혹은 생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견해는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견해라고 하겠다. 이미 살고 간 사람들의 한 일이나, 남기고 간 말 또는 생각을 보편성 있게 묘사하려고 실제 노력하는 역사가들을 설화학파(說話學派)라고 부른다. 그런데 보편적 설화식의 역사 풀이가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역사를 다루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잡다한 인간의 행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을 추려내기란 매우 힘들며, 오늘날과 같은 빨리 움직이는 사회나 시대에는 그것은 더욱 환영을 받기 어려운 역사 풀이다.
그런데, 이 설화학파도 세분을 해본다면 그 안에 여러 갈래가 있다. 정치체제 연구에 중점을 두는 사학자는 인간의 업적이나 사상 중에서도 정치나 법률을 가장 중요시한다. 지성사(知性史)나 또는 사상사(思想史)를 다루는 학자는 철학, 예술, 문학, 과학에 나타난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점차 고도로 발전하는 과정을 역사가의 최대의 관심사로 여긴다.
경제사학자는 초점을 인간의 경제생활의 방편이나 환경지배의 방법 연구에 맞추어놓고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사상과 행동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된다고 주장한다. 문화사학자는 이념의 발전 단계를 사회적, 정치적 내지 경제적 측면에서 하나로 묶어 연구 검토한다. 그렇다면, 이 역사가는 그의 역사 서술의 초점을 사상과 감정의 흐름에다 맞추었다는 사실 외에는 일반론(一般論)의 테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셈이다.
둘째 카테고리가 기억되는가? 역사는 전기(傳記)라는 그 풀이 말이다. 하지만 누구의 전기나 다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똥 푸는 사람, 쓰레기 걷어가는 사람, 야경 도는 사람, 장성(長省) 탄광의 갱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못한 사람, 이리(裡里) 폭발사고 때 여관에서 자다가 그대로 날아간 사람 이런 불운한 사나이들의 일생이 죄다 역사가 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역사는 오직 위대한 남성, 위대한 여성들만의 전기란 말이다. 그런데 이 학파에도 두 갈래가 있다. 한편에서는 과거의 인물들의 업적의 동기(動機)를 현대 심리학적 이론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내세우고, 또 한편에서는 역시 역사 속의 인물은 그가 살고 간 그 시대를 기준삼아 그의 동기나 인물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각기 일리는 있는 풀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사회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역사 이해는 역사학을 사회학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고, 과거를 일종의 실험실로 여겨, 그 속에서의 실험을 통해 사회적 변화의 형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 관찰의 결과는 현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학설이다. 이 학파에서는 개인이라는 것은 문제도 삼지 않고 오직 집단이나 계급만을 역사발전의 요인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사회학파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가지고 사회의 변천을 설명하려는 역사가도 있고, 이와는 판이한 사회적 모델을 제시하는 학파도 있다.
모든 사회는 각기 근본적으로 독특하고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역사가가 있는 반면에, 비교사회학에 치우친 역사가는 온갖 사회현상이 대개 유사한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므로 모든 변화와 변천을 설명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발견한다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