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4.12.28. 00:12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글을 쓰다 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노동요로 정훈희의 ‘안개’를 듣다가 지금 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바람이여 안개를 거둬가 다오”라는 노랫말처럼 안갯속 풍경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말이면 반복하는 일 몇 가지를 실천했다. 새 다이어리 사기, 다음 해의 습관 계획 세우기, 전화번호부 정리하기 등이다.
연말에는 다음 해에 만들고 싶은 새로운 습관을 정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정리하기 등 많은 실패에도 루틴을 반복하는 건 계획을 적는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우, 이런 심리적 만족감이 늘 결심 과잉을 만들었다. 습관 리스트 만들기에 몰두하면 애초 계획은 서너 가지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해가 된다는 부푼 마음에 목표에 대한 현실적 분석보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패가 계속 반복되면서 실패보다 훨씬 나쁜 측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작심삼일’이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신적 습관이 된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이제 나는 새해 목표 딱 한 가지만 세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참는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저녁형 인간에겐 ‘아침 운동’과 ‘7시간 이상 숙면’처럼 아무리 취지가 좋은 목표라도 실행 초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목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다.
해가 바뀔 때,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도 정리한다. 인연에도 생로병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는 물건을 애써 정리한다.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그릇 등은 치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비워야 소중한 것들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채워 간다는 건 다른 면에서는 공간을 잃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공간도 그렇다. 아무리 비좁은 곳이라 해도, 버리고 정리하면 새로운 공간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2025년 당신의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희망으로 채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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