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박중현]‘국뽕’은 값이 비싸다
입력 2022-07-14 03:00 업데이트 2022-07-14 03:00
국뽕 뒤에 숨겨진 막대한 비용
반일·반중 과도 쏠림 경계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얼마 전부터 서울 지하철이 다른 나라, 특히 일본 지하철보다 얼마나 훌륭한지 소개하는 영상을 유튜브가 추천하기 시작했다. 각국 지하철을 타본 서구 여행객들이 “한국 지하철의 쉬운 환승, 쾌적성, 저렴한 가격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작동해 전기를 절약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놀라웠다”는 식이다. 나 자신도 몰랐던 ‘국뽕 취향’을 구글 알고리즘에 들킨 것 같아 좀 민망해진다.
교통카드 한 장으로 여러 지하철 노선과 버스를 갈아탈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경쟁력이 높다. 운영 주체가 여럿이라 환승이 복잡하고 값도 비싼 일본, 낡아서 냉난방도 잘 안되는 미국, 유럽의 지하철과 비교하면 감탄이 나올 만하다. 문제는 이런 국뽕 콘텐츠들이 숨겨진 비용에 대해선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7년째 요금이 묶인 서울 지하철은 매년 1조 원씩 적자를 낸다. 준공영제 버스 역시 연간 수천억 원 적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지만 요금 인상, 노인 무임승차 혜택 축소 등 인기 없는 정책에 총대를 메는 정치인은 드물다. 어쩌다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 최고”라고 칭찬하고, 유튜버들은 그런 모습을 콘텐츠로 만들어 돈을 벌지만 누적되는 적자는 결국 국민이 언젠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그래도 외국인의 칭찬에 유독 약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국뽕 콘텐츠는 인기가 높다. 부정적 감정, 경쟁심을 느끼는 나라와 비교한 콘텐츠는 카타르시스가 배가된다. 어깨 으쓱한 기분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정부의 정책이나 정치가 이런 감정에 편승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한 2019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은 ‘죽창가’를 소환했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거북선 횟집을 찾았다. 일본 의류점 고객에게 유튜버들은 카메라를 들이댔고, 청소년들은 일본 필기구를 내버리는 영상을 올렸다. 반일감정을 자극해 ‘토착왜구’를 공격하는 건 정치적으로 손해 보지 않는 게임이었다.
이때 시작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 3년의 성과는 아직 결론 내기 어렵다. 일부 품목은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다른 많은 소재, 부품의 대일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그나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을 놓칠 수 없었던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지은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부랴부랴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대체품을 개발하는 데 기업들이 얼마를 썼는지는 집계된 적이 없다. 만만찮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상이 중국으로 급선회했다. 중국을 빼고 자유민주 진영 국가끼리 글로벌 공급망을 짜려는 미국 움직임에 한국은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중국을 통한 수출호황 시대는 끝났고, 중국을 떠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대중 수출·수입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쉽지 않아 문제다. 당장 식자재 가격이 오르자 ‘알몸배추 파동’ 후 줄었던 중국산 김치 수입이 사상 최대로 늘었다. 중국 폭죽 수입이 어려워지자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가 곳곳에서 취소된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둘인데 중국과 한국이고, 중국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한국’이란 말이 있다. 국민 80%가 중국에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정치적 유혹도 있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뽕의 비용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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