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른 비 늦은 비 신 11:8-17

鶴山 徐 仁 2022. 7. 8. 10:43

이른 비 늦은 비 신 11:8-17

 
 
 
07월 08일 (금)
   
이른 비 늦은 비 신 11:8-17



8.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10.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9절)이란 가나안 땅의 기름짐과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가나안을 지칭할 때면 흔히 사용되는 별칭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반드시 가나안 땅의 자연 조건만을 뜻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축복의 땅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나안은 성도들의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의 예표가 되기도 하는데, 성경은 천국을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아픔이 없는 낙원(계 21:1-4)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때를 따라 <그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14절) 내리사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고 가축들이 들에 돋아나는 풀들을 마음껏 뜯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른 비>란 유대력으로는 제8월이지만 오늘날의 양력으로는 10, 11월 경에 내리는 <가을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농사 일정상 이 때는 파종기로 이른 비는 건기 동안의 메마르고 딱딱해진 흙을 적셔 땅을 갈기에 좋도록 해줍니다. <늦은 비>란 유대력 제1월, 양력으로는 3, 4월 경에 내리는 봄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런 <이른 비>, <늦은 비>처럼 때를 따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들의 삶을 좌우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면 과연 건강하고도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까요? 
<연초부터 연말까지>(12절) 평안한 삶이 보장될까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14절)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존에 꼭 있어야 하는 3대 필수 식품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사 하늘을 닫으시면 땅이 이 모든 소산을 더는 낼 수가 없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섬기므로 특히 이 이른 비, 늦은 비의 축복으로 당신의 삶이 더욱 복되고 풍성하길 빕니다. 
 
-당신이 이해하는 <젖과 꿀이 르는 땅 – 가나안>에 대해 적어 보십시오. 
-<적당한 때>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합니까?(13절)
-본문 16-17절까지를 다시 한 번 적어보십시오.
 
주님,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허락하시고 함께 하시는 땅은 다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천국도 실은 저희의 영원한 가나안임을 확신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게 하사 늘 <이른 비>, <늦은 비>의 은총을 누리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에게 절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사 하늘 문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사오니 더욱 하나님만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내가 그러했다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서였다. 우선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자만심이
채워졌고,동시에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저(著) 이강은 역(譯)
《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 3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잘 나가는 법원 판사였는데 갑작스레 죽게 됩니다. 그의 장례식장에 참
석한 동료들은 그의 부재로 인한 인사이동에 더 관심을 둡니다. 이반의
미망인 또한 비슷했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나올 국가의 지원금을
어떻게 하면 더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기 바빴습니다.
죽어가는 이반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죽음보다 더욱 슬펐습니다. 그는 특별히 잘못 살지도 않았고,
특별히 탐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동료의
현실적이며 메마른 모습을 보고 한없이 슬펐습니다. 그런데 그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가해자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
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112쪽)
진실이 없이 적당히 살았고, 욕먹지 않을 만큼 주변 사람과 아내에게
건성으로 대했던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가 결혼한 것도 신부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류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좋다고 인정했기 때
문이었습니다. 아무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적당한 삶, 그러나 진실이 아
니었던 삶! 그게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행해야 할 삶의 자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
행하고” (마5:41)
적당한 선의 차원이 아니라 감동의 차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이든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도 욕먹지 않을 차원까지만 복 주실지 모릅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27-2
강남 비전교회
한재욱 목사

   
예레미야 49장 25절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Why has the city of renown not been abandoned, the town in which I delight?
Jeremiah 49:25 [NIV]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일하는가?
기존의 교회 중 어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겠는가?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이다.
-갈릴리 공동체의 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고 있는지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십시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는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