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바벨론 사절단 왕하 20:12-21

鶴山 徐 仁 2022. 7. 5. 06:22

바벨론 사절단 왕하 20:12-21

 
 
 
07월 05일 (화)
   
바벨론 사절단 왕하 20:12-21



12.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3.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4.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6.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9.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12절).
역대하 32:31에 의하면 바벨론 사절단의 방문 목적은 히스기야의 병회복을 축하할 뿐 아니라 그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이적에 관해서도 알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산헤립이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원정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복귀했지만 그때도 앗수르는 여전히 바벨론을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로닥발라단이 앗수르의 공격을 막아낸 히스기야와 동맹을 맺어 자국의 독립을 꽈히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13절).
바벨론 사절단이 찾아온 것이 히스기야에게는 특별한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바벨론과 동맹을 맺는다면 앞으로 앗수르의 침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들을 다 보여주며 신망을 얻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애쓴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14절).
이사야는 이미 히스기야가 이방 나라와 동맹을 맺으려는 의지가 있음을 간파하고 굳이 청하지 않았음에도 왕 앞에 나아와 물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는 그동안 오직 여호와께만 도움을 구하고 이방을 믿거나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해왔습니다. 


당시의 바벨론은 앗수르의 속국에다 세력도 매우 약해 대수롭지 않은 나라였고 더구나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히스기야로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이미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중요한 나라로 등장하고 있었습니다(사 13, 14:1-23, 43:14, 46:1-15, 미 4:10). 머지않아 앗수르가 아닌 바벨론이 큰 적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유다를 멸망시키게 될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은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으로 인해 어느 정도 자기교만에 빠져 있을 때 등장하여 여호와께서 히스기야를 시험하시는 잣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3장에서 모압의 반란이 이스라엘의 부패를 상징하고, 유다의 영토 손실이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듯 바벨론의 등장은 유다의 미래가 암울함을 상징하는 강력한 징조라 할 것입니다. 
 
- 역대하 32:27-33을 통해 히스기야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번영에 대해 확인해보십시오.
- 히스기야 왕이 통곡하며 기도하여 자신의 생명을 몇 년 더 연장받았을까요?
-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12절)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주님,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여 기적적으로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곧 교만하여 바벨론의 사신들 앞에서 나라의 부강을 자랑하다 결국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다시 심판의 예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부단히 자신을 살피게 하사 교만의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겸허하게 주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며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채플린보다 더 채플린 같은 가짜
 
“채플린이 남몰래 시골 여행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채플린 흉내 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채플린은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그 대회에 출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연기를 했습니
다. 그러나 심사 결과 채플린은 겨우 3등이었습니다. 말하자면,그 대
회에는 채플린보다 더 진짜 채플린처럼 보인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있었던 것입니다.”


강일석 편저(編著) 《신실한 믿음을 위한 예화선집》 (남성, 17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은 가짜 뉴스 및 허위, 조작된 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특히 선거 전에 두드러
지게 나타나, 투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치명적인 독을 품은 것일수록 아름답게 보입니다.  몸에 좋은 송이버
섯은 볼품 없지만, 독버섯은 치명적으로 예쁩니다.  가짜 채플린은 진짜
채플린보다 더 채플린스럽게 행동합니다. 마귀는 마귀스럽지 않고, 한술
더 떠서 아름다운 빛의 천사같이 보이게 가장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
나니” (고후11:14)
가짜와 헛된 것에 속아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미련한 일은 없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영원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가짜가 판치는 세상
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예레미야 49장 22절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그의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에돔 용사의 마음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Look! An eagle will soar and swoop down, spreading its wings over Bozrah. In that day the hearts of Edom's warriors will be like the heart of a woman in labor.
Jeremiah 49:22 [NIV]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사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상을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힘 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한 1서 4;20 」
-한태완 목사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에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아까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시간 바치는 것. 재능을 바치는 것‘ 
돈을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하는 것은 힘든 것이 없습니다.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