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 20:1-11

鶴山 徐 仁 2022. 7. 4. 10:40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 20:1-11

 
 
 
07월 04일 (월)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 20:1-11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1-3절).
결국 하나님이 히스기야 왕의 그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5절).
이것은 눈물로 간절히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벽을 향하여 앉았다는 것은 다른 그 무엇도 보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며 심히 통곡하였다는 것은 여호와의 은총을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히스기야의 기도와 같이 진실하고 간절한 간구만이 하나님의 심금을 울릴 수 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절)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경건하게 생활한 것이 주님께 기도할 때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가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바르게 살았다는 사실이 그의 신앙 양심을 통해 증거된다면 고난이 닥칠 때 더욱 담대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마치 인간들처럼 당신의 뜻을 쉽게 번복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즉 1절에서는 히스기야에게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5절에서는 다시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병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또 그런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여호와의 은총뿐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죽음까지도 친히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7절).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그 단순한 처방이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식의 단순한 방법을 택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무화과 반죽이 상처를 낫게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치유의 권능과 말씀에 순종하는 히스기야의 믿음이 그를 구한 것입니다. 
 
- <그때>(1절)란 언제를 가리킬까요?
- 하나님의 예언이 바뀐 경우를 요나 3:4-10에서 확인해보십시오.
- <아하스의 해시계>(11절)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주님, 히스기야 왕은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낙담하고 포기하기보다 벽을 향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님, 믿음의 기도는 죽음으로 가는 해시계도 뒤로 다시 물러가게 합니다. 
멸망이 아니라 번영으로 가게도 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권능을 확신하게 하사 기도하므로 뒤로 물러간 아하스의 해시계와 같은 이적을 체험하게 하시옵소서.
 
   
깨닫지 못하는 심판
 
“《햄릿》에는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오필리아가 익사하는 대목이 나
옵니다. 그녀가 죽은 것은 나뭇가지가 부러졌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셰
익스피어가 희곡의 그 시점에서 그녀가 죽기를 바랐기 때문입니까?
(중략) 셰익스피어가 그 희곡 전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C.S.루이스 저(著) 홍종락 역(譯) 《피고석의 하나님》 (홍성사,
93-9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려 하고, 그 법칙
대로 자연이 움직이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법칙이 왜 생겼는지,
그 법칙의 배후 그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에 관한 교훈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
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8,39)
일찍이 노아의 시대에 일어난 홍수 심판 이전에 먼저 ‘깨닫지 못하는
심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죄도
아니고 나쁜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대
부분의 인생들이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시집가고 잘 장가가는 것이 전
부인 줄 알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
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삽니다. 진정 은혜가 임한
사람은 “자연은 스스로의 법칙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로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햄릿》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오필리아가 익사하는 장면은 셰익스
피어가 희곡의 그 시점에서 그녀가 죽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9장 21절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
At the sound of their fall the earth will tremble; their cry will resound to the Red Sea.
Jeremiah 49:21 [NIV]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이라 하면 탐심이라든가
 거짓말이라든가 간음이나 도적질 등 파렴치한 범죄, 
반 율법적인 범죄 등으로 규정하기 쉬우나 그런 것이 아니다. 
고상하고 품격 있는 인격자 중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육신에 속한 사람, 육신을 쫓는 사람,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작자 미상의 글 ‘영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에서-


​아무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치 아니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그들의 생활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 된 증거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는 
분명하고 명확한 증거인 것입니다.
 
 
 
07월 04일 (월)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 20:1-11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1-3절).
결국 하나님이 히스기야 왕의 그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5절).
이것은 눈물로 간절히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벽을 향하여 앉았다는 것은 다른 그 무엇도 보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며 심히 통곡하였다는 것은 여호와의 은총을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히스기야의 기도와 같이 진실하고 간절한 간구만이 하나님의 심금을 울릴 수 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3절)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경건하게 생활한 것이 주님께 기도할 때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가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바르게 살았다는 사실이 그의 신앙 양심을 통해 증거된다면 고난이 닥칠 때 더욱 담대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마치 인간들처럼 당신의 뜻을 쉽게 번복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즉 1절에서는 히스기야에게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5절에서는 다시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병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또 그런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여호와의 은총뿐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죽음까지도 친히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7절).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그 단순한 처방이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식의 단순한 방법을 택하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무화과 반죽이 상처를 낫게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치유의 권능과 말씀에 순종하는 히스기야의 믿음이 그를 구한 것입니다. 
 
- <그때>(1절)란 언제를 가리킬까요?
- 하나님의 예언이 바뀐 경우를 요나 3:4-10에서 확인해보십시오.
- <아하스의 해시계>(11절)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주님, 히스기야 왕은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낙담하고 포기하기보다 벽을 향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주님, 믿음의 기도는 죽음으로 가는 해시계도 뒤로 다시 물러가게 합니다. 
멸망이 아니라 번영으로 가게도 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권능을 확신하게 하사 기도하므로 뒤로 물러간 아하스의 해시계와 같은 이적을 체험하게 하시옵소서.
 
   
깨닫지 못하는 심판
 
“《햄릿》에는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오필리아가 익사하는 대목이 나
옵니다. 그녀가 죽은 것은 나뭇가지가 부러졌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셰
익스피어가 희곡의 그 시점에서 그녀가 죽기를 바랐기 때문입니까?
(중략) 셰익스피어가 그 희곡 전체를 만들었음을 기억하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C.S.루이스 저(著) 홍종락 역(譯) 《피고석의 하나님》 (홍성사,
93-9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려 하고, 그 법칙
대로 자연이 움직이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법칙이 왜 생겼는지,
그 법칙의 배후 그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에 관한 교훈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
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8,39)
일찍이 노아의 시대에 일어난 홍수 심판 이전에 먼저 ‘깨닫지 못하는
심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죄도
아니고 나쁜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대
부분의 인생들이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시집가고 잘 장가가는 것이 전
부인 줄 알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
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삽니다. 진정 은혜가 임한
사람은 “자연은 스스로의 법칙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로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햄릿》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오필리아가 익사하는 장면은 셰익스
피어가 희곡의 그 시점에서 그녀가 죽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9장 21절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
At the sound of their fall the earth will tremble; their cry will resound to the Red Sea.
Jeremiah 49:21 [NIV]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이라 하면 탐심이라든가
 거짓말이라든가 간음이나 도적질 등 파렴치한 범죄, 
반 율법적인 범죄 등으로 규정하기 쉬우나 그런 것이 아니다. 
고상하고 품격 있는 인격자 중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육신에 속한 사람, 육신을 쫓는 사람,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작자 미상의 글 ‘영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에서-


​아무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필요치 아니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그들의 생활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 된 증거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는 
분명하고 명확한 증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