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광야에서 레바논까지 신 11:18-25

鶴山 徐 仁 2022. 7. 9. 08:57

광야에서 레바논까지 신 11:18-25

 
 
 
07월 09일 (토)
   
광야에서 레바논까지 신 11:18-25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2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23.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22-24절).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란 남쪽 아라비아 사막 광야지대로부터 북쪽 레바논까지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씀하는 영토의 경계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만 잠시 이루어졌을 뿐 거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들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18-20) 그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며 오직 그에게 의지하여 살아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시점에 직면했습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 분단의 극복과 통일을 갈망하는 시대적 요청 앞에 선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계와 분단된 국토의 통일이며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이 우리의 소유가 되는 문제는 인간의 뜻 이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축복하셔야 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순종할 때 보장되는 은혜라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25절)고 하셨습니다.
부디 당신의 삶의 지경과 이 나라의 경계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 보다 확실해지고 든든해져서 그야말로 우리가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 다 우리의 소유가 되는 큰 은혜와 축복이 있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22-24절).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란 남쪽 아라비아 사막 광야지대로부터 북쪽 레바논까지 이르는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씀하는 영토의 경계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만 잠시 이루어졌을 뿐 거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조건들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18-20) 그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며 오직 그에게 의지하여 살아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시점에 직면했습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 분단의 극복과 통일을 갈망하는 시대적 요청 앞에 선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계와 분단된 국토의 통일이며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이 우리의 소유가 되는 문제는 인간의 뜻 이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축복하셔야 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순종할 때 보장되는 은혜라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25절)고 하셨습니다.
부디 당신의 삶의 지경과 이 나라의 경계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 보다 확실해지고 든든해져서 그야말로 우리가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 다 우리의 소유가 되는 큰 은혜와 축복이 있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주님, 실로 중요한 기로에 선 저희 나라, 저희 민족을 기억하사 분단의 문제와 남북의 화해와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한 나라의 경계는 하나님이 정해주시고 그 지경을 보장해 주심을 믿사오니 저희에게도 이 한반도를 민족의 지경으로 잘 지키고 관리하여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너희가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며 오직 그에게 의지하면>(22절) 그같은 축복을 허락하신다고 하셨사오니 저희 민족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겸허히 그의 말씀과 뜻을 받들게 하사 약속하신 은혜를 꼭 입게 해주시옵소서. 
 
   
중간에서 잘하는 사람이 복의 통로입니다
 
띄어 쓰기의 중요성


서울시 체육회 → 서울 시체 육회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 → 서울시장 애인 복지관
무지개 같은 사장님 → 무지 개 같은 사장님
게임하는데 자꾸만 져요. → 게임하는데 자꾸 만져요(중략).
오늘 나온 분 말고 추가 확진자인가요?
→ 오늘 나온 분말고추가 확진자인가요?


Fun 유머연구회 편저(編著) 《사이다 유머》 (브라운 힐, 236-23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띄어 쓰기를 잘못하면 말의 의미가 삼천포로 가게 됩니다.
중간에서 말 하나를 살짝 바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누가 조각했느냐는 시험문제가 나왔습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로댕’이라고 썼습니다. 그 옆에 눈이 좀 나쁜
학생이 흘겨보며, ‘오뎅’이라고 썼습니다.
그 옆에 있는 아이는 잔꾀가 있는 아이였습니다. “오뎅”이라는 답을
그냥 쓰면 베껴 썼다고 들킬 것 같아 고쳐 썼습니다. “뎀뿌라”
그 옆의 아이도, 공부는 못하지만 잔머리를 잘 굴리는 아이였습니다.
“뎀뿌라”를 자기 나름대로 고쳐 썼습니다. “어묵”
중간에서 말을 살짝 비틀면 로댕이 어묵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공동체이든 로뎅이 어묵이 된 루머들 때문에 진통을 겪습니다.
거짓 증거를 하거나 거짓 풍설을 퍼뜨려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것은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복의 근원, 즉 축복의 통로로 살라고 하
셨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이웃과 이웃 사
이에서 이들이 잘 되도록 축복하는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중간에서 잘하는 사람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묵묵히 봉사해야 하는데
 몇 년 전 일이다.   
“그거 있잖아, 나 때문에 된 거야.” “어 그래?” “그래!” 
말하고 돌아서는 순간 후회했다. 
‘이런 쪼다! 말하지 말았어야지! 하나님만 아셔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또 온다면 그때는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하나님만 아셔야 하고, 자랑하면 안 되고,
 섬겨야 하고, 묵묵히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묵묵히 봉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김남국 목사의 ‘삶으로 흘러넘치게 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고, 말씀을 좀 안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인 줄 착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신앙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루하루 겸손히 주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주신 인생 속에서 하루하루 신앙이 자라고 배워가기 원하십니다.
 신앙은 머리나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삶으로 흘러나오느냐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