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시 받은 십계명 신 10:1-11

鶴山 徐 仁 2022. 7. 1. 10:31

다시 받은 십계명 신 10:1-11

 
 
07월 01일 (금)
   
다시 받은 십계명 신 10:1-11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2.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3.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4.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길을 떠나 모세라에 이르러 아론이 거기서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7. 또 거기를 떠나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를 떠나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으며
8.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9.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10.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1절). 
하나님의 명령대로 두 번째 돌판을 다듬고 나무궤까지 준비해 시내산에 올라가는 모세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삭을 바치기 위해 장작을 준비하여 모리아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시던 주님의 모습도 봅니다. 
실제 백성들의 죄악으로 비통해 하며 시내산을 오르던 당시 모세의 심정은 그게 그대로 중보자셨던 주님의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5절). 
 십계명 두 돌판은 언약궤 안에 있었고, 언약궤는 속죄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속죄소는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는 곳으로, 십계명에 의해 정죄 받은 죄를 처리하는 곳이었므로 지성소 안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십계명, 즉 모세가 다시 받은 두 개의 돌판 앞에서는 오늘 우리들도 다 어쩔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의인됨을 주장할 수 없게 하는 게 바로 모세가 다시 받은 그 두 개의 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그 모든 연약함과 허물과 죄악을 십자가로 덮어버리셨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속죄소인 셈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죄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의지하여 죄책감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생기에 찬 모습으로 새출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하나로 내 모든 빛이 청산되었다는 확신과 함께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덤으로 받은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생의 목적을 이제까지와는 달리 좀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식으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부디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키자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성스러운 사명을 더욱 깊이 깨닫는 삶이되길 빕니다.
 
-십계명 돌판과 언약궤에 깃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미를 적어 보십시오.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은 당시 모세의 심경을 간략히 유추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레위 지파는 어떤 지파였습니까?(8,9절)
 
주님, 모세가 다시 시내산에 올라 두 번째 십계명 돌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다시금 그렇게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도 늘 하나님을 배반하며 범죄 하나 주님은 저희를 용서하사 다시 부르시고 속량하시므로 새출발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있었던 모세처럼 저희를 위한 주님의 중보자 되심도 확신하게 하사 늘 힘을 얻고 산 소망을 보며 승리하는 저희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질문이 틀려서 답이 없는 경우
 
“박찬욱 감독의 영화〈올드보이〉를 기억하는가?  존재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15년간 갇혀 있던 주인공 최민식이 자신을 감금한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렸다(중략).  영화 속 대사에서 우리는 이 ‘올바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얻게 된다.  유지태의 질문 중 ‘틀린 질
문을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다.”


박용후 저(著) 《관점을 디자인하라》(프롬북스, 41-42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올드보이〉주인공 최민식은  “누가 나를 가뒀을까?”, “왜 가두
었을까?” 라는 질문에 집중합니다.  이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최민식을 잡아 가두었던 유지태는 “틀린
질문을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라고 말합니다.  그러
면서 “왜 15년 동안 감금해두었을까?” 가 아니라,“왜 지금 15년
만에 풀어주었을까?” 가 맞는 질문이라고 합니다.
질문이 틀려서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질
문을 올바로 바꾼다면 일의 본질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누구나 하는 질문이지만,  이것은 점쟁이에게나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그 질문이 먼저입니다.  
“주님, 주님의 주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옳은 질문입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행22:10)
   
이사야 2장 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Stop trusting in man, who has but a breath in his nostrils. Of what account is he?
Isaiah 2:22 [NIV]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신부가 되어
자본주의가 우상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리스도인들 또한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길 바라지만, 
돈과 비즈니스와 세상적인 권력에 절대 말려들면 안 된다. 
성도의 사업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성도는 끝까지 순결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신부가 되어 
세상의 어떤 유혹과 핍박에도 타협하지 않고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거룩한 신부의 길을 가는 것이 성도의 마지막 갈 길이다.
-하용조 목사의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에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곧 혼인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한 사람은 절대 방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과 시간을 써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룩한 신부가 되어
 시간, 건강, 직업, 인생 모두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고
 아낌없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집착 없이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착하십시오. 
이것이 종말론적 신부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