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열심 왕하 19:29-37
06월 29일 (수)
여호와의 열심 왕하 19:29-37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29절).
히스기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사 환난 가운데서 유다 백성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예언이고 그들이 모두 평안히 거하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30절). 유다가 앗수르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멸절되지 않고 다시 번영할 것을 가리키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요시야 왕 때 실제 성취되었습니다.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31절). 이것은 유다 백성의 구원의 근거가 <여호와의 열심>에 있음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열심>은 곧 당신의 백성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초합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34절). 여호와의 구원의 근거란 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은 유다 백성이나 히스기야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제1의 목적입니다. ② 다윗을 위해섭니다. 이것은 다윗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그와 맺은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실실성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37절). 에살핫돈은 후에 자기 아버지 산헤립이 다 이루지 못한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애굽의 멤피스까지 함락시켰습니다. 유다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지독히도 악랄한 정복자였습니다. 므낫세 통치 기간 중 유다를 침공하여 므낫세 왕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다와 베냐민 족속의 상당수를 포로로 잡아가거나 강제 이주시키기도 하였습니다(스 4:2). -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징조>(29절)들을 찾아보십시오(20:9-11, 사 7:11, 14, 8:18, 20:2-3).
-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선지자들이 자주 사용한 <남은 자>(31절)를 찾아보십시오(사 10:20, 11:11, 14:22, 46:3, 렘 23:3, 31:7, 40:11, 15, 42:2, 43:5, 44:14, 미 2:12, 4:7, 5:7, 8). - 본문 35절을 읽고 당신의 느낌을 적어보십시오. 주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배교와 불순종에 대해 맹렬히 진노하시고 징계를 내리시지만 그러나 언제나 거룩한 씨인 <남은 자>는 보호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역사와 세상을 주관하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열심>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저희들 그런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더욱 주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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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현실도 현실인가
“수십만 년 동안 아날로그적 플랫폼에서만 살아가다 보니, 우리는 유
일하게 가능한 현실이 아날로그 현실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인터넷은 이미 또 다른 형태의 현실, 즉 디지털 현실이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김대식 저(著) 《메타버스 사피엔스》 (동아시아, 12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은 뒤로하고, 우리는 분명히 아날로그 현실 뿐 아니라, 디지털 현실 속에서도 살게 되었습니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디지털 트윈이라고 하는 디지털 현실이 실제로 우리의 안전을 돕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디지털 현실 에서는 우리의 경험이 지역과 시간을 뛰어 넘습니다. “아날로그 현실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경험하고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경험하려면 한국과 브라질 사이의 지점들을 연속적으로 지나가야 하는 반면, 디지털 현실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 관한 경험에서 브라질에 관한 경험으로 곧장 건너뛰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28쪽) 디지털 현실까지도 인식하는 우리 인간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인식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디지털 세계가 있듯이, 분명 보이는 세계 너머에 영원한 세계가 있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 십니다. 아날로그 세계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디지털 세계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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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장 13절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for all the cedars of Lebanon, tall and lofty, and all the oaks of Bashan, Isaiah 2:13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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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로만 말하는 것은
세상에는 게임에 직접 참가하지 않으면서
룰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일을 직접 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말하는 것은 건설적인 일이 아니다. 특별히 요즘 한국교회의 가장 부정적인 면은 바로 이것이다. 듣는 귀가 커져만 가고 전하는 입술도 커져 가는데 전하는 자나 듣는 자의 행동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말은 그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자. 겉만 번지르르한 말에는 이제 정말 지쳤다. -최승일 목사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에서- 행동이 없는 허울뿐인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외식하지 말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마 23:27) 말로만 떠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어렵게 보이는 문제가 실제로 부딪혀 보면 의외로 쉽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성공자들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하나 되어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행동하는 신앙인이 될 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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