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상한 갈대 왕하 18:13-24

鶴山 徐 仁 2022. 6. 21. 12:53

상한 갈대 왕하 18:13-24

 
 
06월 21일 (화)
   
상한 갈대 왕하 18:13-24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여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13-14절).
이것은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침공한 첫 번째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18:37까지 계속됩니다. 


사실 산헤립의 1차 원정 목적은 애굽에 대한 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가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조공을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히스기야가 블레셋의 가사 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블레셋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려했던 산헤립의 계획에 상당한 차질을 안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먼저 공격해 장애물을 제거하려 한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히스기야가 <내가 범죄하였다>며 많은 배상을 제시해 산헤립을 돌아가게 하려 하였습니다.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삽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14-16절).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요구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 그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성전까지 그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21절).
이것은 랍사게를 통한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말이지만 애굽을 <상한 갈대>라 한 것은 실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일 강변에서 많이 자라는 갈대, 파피루스야말로 애굽을 상징하기에 적절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 있고 안전해 보일지 몰라도 갈대는 결코 기댈 만한 것이 못됩니다. 
한편 성경은 그리스도야 말로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고 마침내는 승리하게 하시는 위로와 치료와 희망의 주님이시라 합니다(마 12:20).


사실 우리는 다 상한 갈대입니다. 세상에서 아픔과 상처와 슬픔과 탄식, 고통과 절망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부디 상한 갈대도, 꺼져가는 심지도 꺾거나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십시오. 주님께 희망이 있고 내일이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14절)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 <다르단>(17절)이란 앗수르 군대의 어떤 직함일까요?
- 본문 18절에 나오는 <엘리야김>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주님, 맞습니다. 
히스기야 시대 애굽은 힘 있고 가장 안전해 보였으나 실은 상한 갈대처럼 결코 기댈 만한 나라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애굽뿐 아니라 세상 나라는 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어떤 나라나 권세도, 그 어떤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도 결코 저희들의 안녕과 내일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주님께만 의지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나는 잘 살아 온 것인가?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저(著) 이강은 역(譯)
《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 11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톨스토이는 평생을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좋은
환경과 좋은 실력이 있었기에, 죽음만 아니면 다 좋은데, 그만 죽음이
라는 것 때문에 이 땅에서 편안히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 그를
철학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동안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며 소설을 썼습니다. 『유년 시대』부터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많은 소설들은 죽음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 이반은 죽음을 앞두고 깜짝 놀라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잘 살아온 것인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던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추구하던 성공을 향해 달려왔던 이반은, 누구나 추구하는 ‘성
공적인 삶’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가장 부러운 사람은 구약성경의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누려본 그는 이 모든 것들의 허무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하)
 
솔로몬의 영화를 부러워하지 말고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를 부러워
해야 합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수만 개 가진 사람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단 몇 개만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하고 부자입니다.
이 진리를 죽기 전에 깨달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My sheep listen to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빈 무덤을 보라. 
아무도 주님의 부활과 빈 무덤의 의미를
 막을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1 세기부터 일어난 성도들을 보라. 
그리스도를 가까이 따르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이 돌아가시자 모두 도망갔고 숨어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 
완전히 변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왜 갑자기 변화 되었는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김승욱 목사의 ‘내 안에 있는 소망’에서-


주님은 죽은 분이 아니라 살아나신 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은 자를 따르지만 
우리는 산 자를 따르는 성도들입니다.
 부활에는 역사적 증거가 있기에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참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세상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만큼 핍박을 많이 받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세계만방의 교회들이 왕성하게 부흥하고 있는 것은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말씀 선포는 헛된 것이 아니며.
그 은혜, 그 능력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기관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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