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 신 3:23-29
04월 28일 (목)
너는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 신 3:23-29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모세가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25절).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26-27절)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습니다. 이게 다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므리바 사건 때문이지 않습니까? 물이 없어 백성들이 아우성치며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민 20:4-5). 그때 하나님이 일러주신 방도가 바로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며 손에 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후려쳤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과격했어도 물은 솟았으나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너가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는 이 회중을 내가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백성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사람이 누군데... 하는 항변도 가슴 가득히 차올랐을 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백성들이 저지른 죄보다 모세의 대응 자세를 더 문제 삼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를 이 시대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야 옳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늘 불만만 터뜨리는 <패역한 백성>들의 행위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도리어 불의한 방법의 유혹에 빠진다면 그것은 도리어 자기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 모세의 뼈아픈 경험이 우리들의 인생살이, 세상살이에도 두고두고 귀한 일깨움이 되기를 빕니다. -므리바 사건을 전하는 민수기 20:1-13를 찾아 읽어 보십시오.
-당신은 므리바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이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에 대한 보다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면 당신은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 모세는 간절히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은 결국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고, <이 일로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이 영광보다는 자신의 권위와 자존심을 앞세우려 할 때 그것은 곧 하나님에게 큰 반역이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 여기서 꼭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모세의 뼈아픈 실패를 통해 오늘 저희도 과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를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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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장하는 게 아니라
“‘아픈 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중략). 아픔을
겪는다고 무조건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략). 그러니 엄밀히 따져보면 ‘아픈 만큼 성장한다’보다는 ‘아 픔을 극복한 만큼 성장한다’가 더 맞는 말입니다.” 김선현 저(著)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웅진하우스, 14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땅바닥에 유리를 떨어뜨리면 깨지고, 진흙을 떨어뜨리면 달라붙고, 공을 떨어뜨리면 튀어 오릅니다. 고난과 실패를 뼈를 깎는 아픔을 자기 성 숙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마라에 이르렀을 때 그곳 물이 써 서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달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쓴 물이 단 물이 됩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얼룩이 남습니 다. 쓴 상처가 주님을 만나 아물면 무늬가 남습니다. 주님은 일곱 번, 아니 열 번의 고난과 넘어짐 속에서도 우리를 일으켜 주시며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 드로 등 믿음의 용사들은 한결같이 넘어졌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실패 속에서 자아가 죽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큰 믿음을 배워간 사람들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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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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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고난은 우리를 동등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 모두를 형제 자매로 만들어 줍니다. 병실 신세를 졌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함께 병실을 사용했던 자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함께 고난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종종 그들은 이상하게도 서로에 대해 친밀감을 느낍니다. 그 이유중 하나는 고통이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엘스워스 칼라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위한 12가지 원리] 중에서-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참된 신자로 만들어줍니다. 고난을 겪게 되면 자신의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양보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유독 아픔을 겪고 있는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경 말씀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고난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삶이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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