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안철수는 죄가 없다
입력 2022-02-17 00:00업데이트 2022-02-17 03:29
YS-DJ 분열 노렸던 1987년 개헌
‘단일화 꼬리표’ 安은 제도의 희생양
결선투표 개헌 조건으로 단일화 받아
정권교체 주역되어 국민에 감동 주길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주로 야권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다. 정권교체가 아니다. 후보 단일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완주한다고 계속 얘기해도 ‘단일화 꼬리표’만 붙이려 한다”며 13일 여론조사 경선을 국민의힘에 제안했다. 5자 구도로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선 선거 2주일 전 ‘중도·보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까지 열렸다. 2012년 좌파인사들이 단일화를 강요했던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본뜬 모임이었다.
그렇게 ‘대선 단일화’ 역사를 파내려가다 나는 혼자 탄식을 하고 말았다. 후보 단일화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때마다 불거졌던 구조적 문제였던 것이다.
야권에선 후보가 여럿 나오니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제발 후보들께서 단일화해 달라고 유권자들이 애걸해야 한다. 그러나 1, 2위 후보끼리 한 번 더 겨루는 결선투표제만 있으면 국민은 ‘전략적 투표’로 속 썩일 필요가 없다. 후보들은 비생산적 논란으로 시간 낭비 않고 더 중요한 문제를 논할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2014년 현재 대선 결선투표제를 둔 89개국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1987년 개헌 때 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기이하지 않은가. 민주당 김영삼 총재, 김대중 고문은 곧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에 세심한 고려를 못 한 것 같다. 개헌안을 논의한 7월 15일 의총에서도 결선투표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YS는 대통령 되는 게 급해선지 “대선을 빨리 앞당기자”고 했을 뿐이다.
민정당 개헌안에 결선투표제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전두환은 2017년 회고록에서 “김대중 씨를 사면복권했을 때 나는 이미 양 김씨의 동시 출마를 예상했고, 양 김씨가 동시 출마하면 노태우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썼다. ‘4자 필승론’은 DJ 아닌 전두환에게서 먼저 나왔던 거다. 여야가 각기 마련한 개헌안을 토대로 7월 31일∼8월 31일 ‘8일 정치회담’을 13차례나 가졌음에도 누구의 입에서도 결선투표제의 ‘결’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개헌안을 의결한 10월 12일 국회에서도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말한 의원이 없다는 점 역시 놀라운 일이다. 당시 신민당 이철승 의원이 “투표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지 않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소수의 의사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으로서 이는 다수의 저항과 도전에 부딪히게 된다”고 우려했으나 귀 기울이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
만일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1987년 13대 대통령은 노태우 아닌 YS가 당선됐을 것이라는 예측 결과가 있다. 2019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어 실시요건에 관한 연구’ 논문이다. 제도가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뒤늦게 깨닫고 1990년 결선투표제를 주장한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를 비롯해 야권과 정치학자들은 끊임없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2017년 대선 전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무리하게 단일화를 할 필요가 없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청와대발 개헌안에 결선투표제를 포함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그 개헌안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강화시키고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리는 등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야 3당이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단일화 사슬’에서 풀려날 방법이 있다. 2017년 대선 전 결선투표제를 주장했던 안철수가 바로 결선투표제 개헌을 조건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만 실현돼도 안철수가 요구하는 ‘더 좋은 정권교체, 즉 구체제 종식과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교체’는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통성, 통치의 안정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정당연합이나 정책공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군소 정당의 영향력이 커져 사회경제적 갈등 완화에도 도움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렇게 안철수가 진정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된다면, 국민은 감동한다. 안철수는 새정치를 펼칠 수 있고, 그와 나라의 미래도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이 독을 품고 기다리는 여론조사 단일화만 고집하다 완주한다면, 안철수는 5년 후 또 출마해 단일화 요구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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