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의 사람 왕상 13:1-10

鶴山 徐 仁 2021. 11. 22. 15:36

하나님의 사람 왕상 13:1-10

 
 
 
11월 22일 (월)

 

   
하나님의 사람 왕상 13:1-10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보라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1절).
<하나님의 사람>이란 히브리어 <이쉬 하엘로힘>으로 <선지자>(나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쉬 하엘로힘>은 선지자의 <소명>을 강조하는 단어이고, <나비>는 선지자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역>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남왕국 유다 출신의 선지자란 사실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 6:11-12). 
선지자들을 가리켰던 구약 시대와는 달리 복음 시대에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곧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이 말씀은 굳이 디모데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모든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권면입니다.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깨닫길 바라고 계십니다. 모두가 세상 권력과 세상 문화와 세상의 온갖 우상을 좇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비록 그 수가 미미할지라도 끝끝내 하나님의 길을 지키고 하나님이 분부하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며 살게 되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사람>도 보십시오.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8-9절).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신념과 담대함으로 살아야 하고, 본문의 선지자처럼 세상 미혹과 회유에 대해서도 이같은 단호함을 보이며 결코 타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여로보암 왕의 손이 갑자기 마비된(4절) 이유를 적어보십시오.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을 회유한(7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주님,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에게 세속적인 모든 미혹을 피하고 오직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부디 오늘 이 시대 저희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각과 소명감을 주사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생을 취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주시옵소서.
 
   
베이스 캠프가 중요하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는 에베레스트(8,848미터)와 K2(8,611미터)
그리고 칸첸중가(8,598미터) 등 8천 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모두 14개 있
다. 이들 8천 미터급 봉우리를 등정하는 데 도전하려면 베이스 캠프를
몇 미터에 치는지 아는가? 대략 5천 미터 이상이다.”


정진홍 저(著) 《감성 바이러스를 퍼뜨려라》 (위즈덤하우스, 11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8천 미터급 히말라야 정상을 정복하려는 원정대는 5천 미터 이상 되는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치는 추세입니다. 그래야 3천여 미터만 더 올라
가면 정상에 이를 수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말이 5천미터이지 상
당히 높은 지점입니다. 백두산은 2,744미터, 한라산은 1,950미터, 지리
산도 1,915미터인데 말입니다.
주선용의《인생의 절반은 행복하게 살자》에 보면, 2004년을 기준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는 산악인의 수가 급증하고, 일 년에 평균
340명 정도가 등정에 성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베이스캠프를 과거에는 2,000미터 정도에서 설치를 했지만,2004년부
터는 6,000미터나 되는 높은 곳에 설치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스 캠프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베이스가 되는 기준을 높게
잡으면 그만큼 높은 성취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법칙입니다. 즉, 출발
점을 정상에 가깝게 비치함으로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
입니다.
인생은 베이스캠프의 싸움입니다. 베이스캠프가 높고 든든해야 정상에
오르는 승리를 합니다. 자기 힘을 베이스로 삼는 사람, 운명이나 철학
자, 시인, 사상가의 말을 인생의 베이스로 삼는 사람은 늘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
다. 가장 높고 든든한 베이스캠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8)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예수님께 초점을 딱 맞추자
불의 시험도, 물의 시험도 우리를 어떻게 해치지 못한다. 
왜? 주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 NIV 성경을 보면,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초점을 딱 맞추자.” 이렇게 되어 있다.
 주님께 초점을 딱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위대한 축복이, 
승리가 우리게 다가오는 것이다. 
 -작자 미상의 글 ‘너는 내 것이라’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자꾸 낙심하고 절망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게 중병이 다가왔을 때, 
여러 가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통을 당할 때,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만 바라보십시오 
 모든 인생의 삶에서 승리하시려면.
 
 
11월 22일 (월)
   
하나님의 사람 왕상 13:1-10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보라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1절).
<하나님의 사람>이란 히브리어 <이쉬 하엘로힘>으로 <선지자>(나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쉬 하엘로힘>은 선지자의 <소명>을 강조하는 단어이고, <나비>는 선지자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역>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남왕국 유다 출신의 선지자란 사실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 6:11-12). 
선지자들을 가리켰던 구약 시대와는 달리 복음 시대에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곧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이 말씀은 굳이 디모데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모든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권면입니다.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이란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깨닫길 바라고 계십니다. 모두가 세상 권력과 세상 문화와 세상의 온갖 우상을 좇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비록 그 수가 미미할지라도 끝끝내 하나님의 길을 지키고 하나님이 분부하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며 살게 되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사람>도 보십시오.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8-9절).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신념과 담대함으로 살아야 하고, 본문의 선지자처럼 세상 미혹과 회유에 대해서도 이같은 단호함을 보이며 결코 타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여로보암 왕의 손이 갑자기 마비된(4절) 이유를 적어보십시오.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을 회유한(7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주님,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에게 세속적인 모든 미혹을 피하고 오직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부디 오늘 이 시대 저희에게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각과 소명감을 주사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생을 취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주시옵소서.
 
   
베이스 캠프가 중요하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는 에베레스트(8,848미터)와 K2(8,611미터)
그리고 칸첸중가(8,598미터) 등 8천 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모두 14개 있
다. 이들 8천 미터급 봉우리를 등정하는 데 도전하려면 베이스 캠프를
몇 미터에 치는지 아는가? 대략 5천 미터 이상이다.”


정진홍 저(著) 《감성 바이러스를 퍼뜨려라》 (위즈덤하우스, 11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8천 미터급 히말라야 정상을 정복하려는 원정대는 5천 미터 이상 되는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치는 추세입니다. 그래야 3천여 미터만 더 올라
가면 정상에 이를 수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말이 5천미터이지 상
당히 높은 지점입니다. 백두산은 2,744미터, 한라산은 1,950미터, 지리
산도 1,915미터인데 말입니다.
주선용의《인생의 절반은 행복하게 살자》에 보면, 2004년을 기준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는 산악인의 수가 급증하고, 일 년에 평균
340명 정도가 등정에 성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베이스캠프를 과거에는 2,000미터 정도에서 설치를 했지만,2004년부
터는 6,000미터나 되는 높은 곳에 설치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베이스 캠프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베이스가 되는 기준을 높게
잡으면 그만큼 높은 성취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법칙입니다. 즉, 출발
점을 정상에 가깝게 비치함으로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
입니다.
인생은 베이스캠프의 싸움입니다. 베이스캠프가 높고 든든해야 정상에
오르는 승리를 합니다. 자기 힘을 베이스로 삼는 사람, 운명이나 철학
자, 시인, 사상가의 말을 인생의 베이스로 삼는 사람은 늘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
다. 가장 높고 든든한 베이스캠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8)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예수님께 초점을 딱 맞추자
불의 시험도, 물의 시험도 우리를 어떻게 해치지 못한다. 
왜? 주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 NIV 성경을 보면,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초점을 딱 맞추자.” 이렇게 되어 있다.
 주님께 초점을 딱 맞추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위대한 축복이, 
승리가 우리게 다가오는 것이다. 
 -작자 미상의 글 ‘너는 내 것이라’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내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자꾸 낙심하고 절망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내게 중병이 다가왔을 때, 
여러 가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통을 당할 때,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만 바라보십시오 
 모든 인생의 삶에서 승리하시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