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오호라 내 형제여 왕상 13:23-34

鶴山 徐 仁 2021. 11. 24. 14:05

오호라 내 형제여 왕상 13:23-34

 
 
11월 24일 (수)
   
오호라 내 형제여 왕상 13:23-34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안장을 지우매
28.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24절).
<사자>는 당시 팔레스틴에 아주 흔한 맹수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벧엘의 산간 지대와 요단 계곡의 숲은 사자의 주요 서식지였습니다(왕하 2:24, 렘 49:19, 슥 11:3).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드러나는 종교적 초자연성은 본문이 전하는 예외성에서도 잘 확인되고 있습니다. 즉 사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해 죽인 후 시체를 삼키거나 물어가지 않고 그냥 그 곁에 서 있었다는 것이고 더욱 신기한 것은 나귀조차도 달아나지 않고 사자와 함께 그 자리에 그냥 붙박여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이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목적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들을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25절).
행인들이 그 특이한 현장을 목격하고 그 성읍의 늙은 선지자와 여러 성읍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며 널리 화제를 삼았다는 얘기인데, 일단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그런 죽음에 대해 충격과 큰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이 사건의 진정한 주인공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분은 바로 인간의 실패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당신의 뜻을 관철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의 실패는 오늘 우리들까지도 몹시 두렵게 합니다. 그토록 충성스럽고 신실했던 인물도 부지중의 실수로 무너지는데 어찌 연약한 우리가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듯 인간의 좌절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허사로 돌리지 않으시고 기어이 당신의 의지를 드러내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성공적인 삶을 거둘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32절).


부디 사자에게 죽은 <하나님의 사람>이나 벧엘의 <늙은 선지자>와는 달리 푯말이 분명하게 세워진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이상 헤매는 일 없이 온전한 결단을 내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 없이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 죽음에 이르게 한 <늙은 선지자>가 그를 장례한 이유를 설명해보십시오.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은 언제 멸망했을까요?
-<여로보암 집에 죄>(34절)가 되었다는 <이 일>이란 무엇일까요?
 
주님, 누구보다 강직하게, 신실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던 <하나님의 사람>이 결국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 실패하고 멸망했습니다. 
속이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속는 사람 또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부족한 탓이었음을 생각할 때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 저희로 하여금 여기에서도 큰 깨달음을 얻고 새롭게 다짐하며 결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여로보암의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다>(34절)는 말씀이 이 시대 저희에게도 큰 경종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디지털 세상과 아날로그적 감성
 
“디지털화된 삶의 방식은 빠르고 편하다는 장점을 대가로 우리가 알지
못한 채 발휘해온 수많은 잠재적 능력을 빼앗기도 한다. 중요한 것을
기계가 아닌 머리로 기억하는 힘, 정겨운 손글씨 편지로 타인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힘,전자 기기로 만들어진 음악이 아닌 사람의 손
으로 한 박자 한 박자 연주되는 어쿠스틱 음악의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감성만이 해낼 수 있는 지극히 육체적인
소통이다.”


정여울 저(著) 《그림자 여행》 (추수밭, 13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
다.
분명 전자책 판매량이 늘고 있지만,완전히 종이 책의 자리를 꿰차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종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속에서 단순히 지
식과 정보만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같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좋고, 종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잉크 냄새가 좋고,책의
여백에 이것저것 메모를 하는 즐거움,책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닌 물성
(物性)을 좋아합니다. 책이라는 사물 자체가 주는 시감(視感)과 촉감과
온도와 무게감 또한 좋아하는 것입니다.
디지털은 편리함,자동화,정밀함,속도가 있어서 여간 유용한 것이 아
닙니다. 아날로그는 단순하고, 느리고, 몸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
러나 그리움,기다림,사람 냄새 나는 정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에 흐르고 있는 디지털 문화와 문명을 이해하고 유용
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동시에 디지털 세계가 품지 못하는 사람의 향
기가 가득한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무조건 주님께 무릎 꿇는 아날로그적
신앙으로 이 세상을 승리해야 합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대상12:32)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Preach the Word;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성경 속에서 그토록 찾으시던 의인의 삶을
나는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염세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맛을 알고 세상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세상 유혹에 대하여 그 누구 못지 않게 약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가장 큰 소원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그것도 아주 열심히 살면서도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낙오하지 아니하고 성공하면서도 
 이 세상에 대하여 아주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보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겠지만 나는 세상에 얽매여 
세상 욕심 때문에 온갖 죄를 다 지으며
 추하게 부끄럽게 남을 시기하며 싸우며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싶다. 근사하게 살고 싶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 훌륭하게 살고 싶다.
 반듯하게 살고 싶다.
-김동호 목사의 ‘주기도문’에서-


이런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싸워야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정말 쉬지 않고 기도해서 그런 삶을 사십시오
그와 같은 삶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발버둥질 치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삶 즉 다시 말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대하여 자유하며 
세상을 욕심으로서가 아니라 소명으로 살아가는
 진짜 그리스도인 하나님이 성경 속에서 그토록 찾으시던
 의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으나 우리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그와 같은 사람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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