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이런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잠언 3장 27-35절)
02월 15일 (월)
주여, 이런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잠언 3장 27-35절) 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을 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자훈련을 하고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을 다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현재 이 땅에 우리 교회들의 문제는 제자훈련은 하고 예배는 열심히 드리고 모임을 통해서 토론은 하는데 삶에서 선을 실천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기도를 하면 그 일을 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에 문제에서 대해서 이야기하면 무언가 했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로는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면서 감동을 받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면 마치 그렇게 살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요즘 SNS를 보면 말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비난하기 전에,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한다.”고 “그렇게 산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도”는 “살기 위해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가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된다면 그것은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말씀만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을 항상 먼저 삶으로 사셨습니다. 말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기를 내려놓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 신앙의 롤러코스터가운데 업다운 되는 신앙에 갇혀, 삶에서 순종하는 것은 미루는 신앙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고난은 항상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은 10년 후에도 해결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나 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순종하는 삶을 결단하고 살아갈 때, 그 가운데 하나님을 뜻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내 문제가 제일 커 보이고, 내가 제일 고난 받는 것 같으나, 우리가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함께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나에게 이미 허락하신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많으며, 그 때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결단하고 한 발을 내딛을 때, 하나님은 그 속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해답을 발견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 한 가지 일을 미루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순종해 봅시다.
주님! 기도하면 그렇게 살았다고 착각했습니다.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 토론을 했으면 됐다고 착각했습니다. 전혀 살지도 않고 살았다고 착각했습니다. 주님, 나의 착각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작은 일에서부터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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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7년마다 새 왕을 뽑는데 필수적으로 전에 왕 이었던 사람은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이렇게 선발된 부족장은 7년 동안 이 미개인들 사이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향락을 누리는 것이었다 (중략). 그는 결국 7년 후에는 죽는다(중략). 그렇다고 해서 지원자가 나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년간의 호사와 권력을 위해 사람 들은 기꺼이 자기 생의 나머지 부분을 희생하길 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외수 저(著)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해냄, 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단 7년 만이라도 지금 여기에서 권력과 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영혼의 파산자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른바 ‘4무(無)’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목적, 무감동, 무책임, 그리고 무관심입니다. 그 중에 제일 악한 것은 무관심입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 젤은 현대 사회를 황폐케 하는 가장 악한 악은 ‘무관심’이라고 하였 습니다. 영원에 대한 무관심, 이웃에 대한 무관심! 우리 시대의 영성 깊은 기독교 작가 C.S.루이스도 현 세대를 이렇게 말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는 존재의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관심하다. 오직 어떻게 해야 성공할런지 고민할 뿐이다....” 이런 세대 가운데 영원에 대한 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 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의 삶이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 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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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7장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미가 7장 7절 But as for me, I watch in hope for the LORD, I wait for God my Savior; my God will hear me. Micah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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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그릇된 우리의 삶을 꺾으시되 주님께서는 죽음의 열매를 맺는 우리의 삶을 반드시 꺾으신다. 그분의 손은 공의, 즉 정의의 손이기 때문이다. 정의 아닌 모든 것은 그 공의의 손에서 뿌리 채 뽑혀버리고 만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릇된 우리의 삶을 꺾으시되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 않으셨다. 그 모든 허물과 죄의 책임을 당신 자신에게로 돌리셨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이 친히 그 책임을 지시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접붙여 주셨다. 그분은 사랑이란 또 다른 손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재철 목사의 ‘다메섹으로’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무자비한 인간처럼 결코 두 손으로 우리를 꺾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공의의 한 손으로는 우리의 잘못을 꺾으시되 나머지 사랑의 손으로는 반드시 우리를 새롭게 세우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공의는 사랑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공의는 곧 사랑하게 하는 힘입니다. 주님께서는 무절제한 인간처럼 두 손으로 우리를 쓰다듬으시지 않습니다. 사랑의 손으로 우리를 쓰다듬으시되, 공의의 손으론 자기 교만의 욕망 속으로 침몰하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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