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의 제단 (삼상 3:15-21)
08월 27일 (목)
실로의 제단 (삼상 3:15-21)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하나님으로부터 엘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받은 사무엘은 정작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15절) 하였으나 엘리는 사무엘을 불러 <내 아들 사무엘아>(16절)하며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한다>(17절)며 그 모든 말씀을 다 듣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다 들은 후에는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18절)고 했습니다. 이것은 엘리가 사무엘이 전하는 모든 말씀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임을 인정한 발언입니다. 그게 비록 자기 집안의 멸망과 죽음에 관한 무서운 심판을 선고하신 내용이었지만 엘리는 강퍅하게 부정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시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무서운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옷을 찢으며 통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엘리 선지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당시의 영적인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대목 같기도 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후덕하고 지적이었으나 공적인 처신에 있어서는 유약하고 미온적이며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고 또 신앙적으로도 철저하지 못했고 정신적 영적인 지도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던 리더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 선지자와는 대조적인 사무엘을 세우사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20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21절). <실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성막을 세웠던 곳으로 이후 사무엘 시대까지 하나님의 언약궤가 머물렀던 성지로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빼앗긴 후에는 그 하나님의 궤가 다시 실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옛 지도에서 사해 북쪽에 위치한 <실로>를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최북단과 최남단의 성읍을 적어 보십시오920절). -당신이 이해하는 엘리와 사무엘의 리더십을 간략히 비교해 보십시오.
주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들었던 사무엘은 두려워했고, 엘리 선지자는 그 내용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들은 후에는 <여호와께서 선하신 대로 다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감히 피할 수도 없습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늘 성령으로 단속하시고 강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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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담긴 상품
“장 마리 플로슈(Jean-Marie Floch)가 제안한 소비의 가치론을 참조하 면,사람들은 특정 상품을 구매할 때 본래 사용 목적에 충실한 실용적 가치나 여러 면에서 타 상품보다 뛰어난 비판적 가치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상품을 미적이고 오락적인 면에서 판단하는 유희적 가치, 또는 특정한 상품의 가치나 속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가치 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김정희 저(著)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북스, 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마케팅, 디자인, 광고 분야의 명성 높은 비즈 니스 컨설턴트인 프랑스의 장 마리 플로슈의 소비가치론에 따르면, 소 비자는 네 가지 가치를 근거로 상품을 구매합니다. ①실용적 가치(상품의 사용목적) / ②비판적 가치(다른 상품보다 우 수한 상품) / ③유희적 가치(미적, 오락적 가치) ④유토피아적 가치 (자기 정체성 대변) 이 중에서 현대는 유토피아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유토피아적 가치는 그 상품에 공감과 자부심을 일으킬만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소비자는 상품에 담긴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 하고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로 실현시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소비자는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포 라이터에 담긴 베트남 참전 용사의 ‘이야기’나, 에비앙에 담긴 프랑스 후작 ‘이야 기’를 사서 자신의 이야기와 동일시하고자 합니다. 오늘날은 기술의 발달로 상품의 실용적인 기능은 일정한 수준 이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슷한 수준의 상품 중 이야기가 담긴 상품이 좋아합니다. 사람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 님과 깊이 동행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사 람입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6:17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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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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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돕는 배필을 히브리어로는 ‘에제르 크네그도’라고 한다. ‘에제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사용했던 단어로 절대적인 도움을 말하며, 돕는자, 구원자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에제르’는 여자가 단순히 남자를 보좌하는 열등하거나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남자에게 강력한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뜻이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만큼이나 막강한 존재라는 것이다. ‘크네그도’는 히브리어로 ‘둘이 완전하게 마주하여’, ‘대면하여’, ‘상웅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그 사람과 동등한’, ‘그에게 적합한’의 뜻도 있다. 따라서 돕는 배필이란 하나님이 지으신 동등한 존재로서 서로가 협력하여 부족함을 보완해 주는 삶의 동반자, 동역자라고 할 수 있다. -신언혁의 [사랑, 다시 한 번] 중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나 부부가 되게 하셨고 한 가정이 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서로 사랑과 순종이 있을뿐, 종속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돕는 자로 서로를 세우셨습니다. 이 원리를 지켜 나갈 때 아름다운 부부관계가 세워집니다. |
08월 26일 (수)
당신의 상처 때문에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전도서 3장 1-17절)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인생을 살다보면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솔로몬이 쓴 전도서 말씀을 읽다보면 “때”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보면 솔로몬이 “때”를 놓쳤던 것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이 “때”는 헬라어로 “카이로스”이며 그냥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때”에 맞게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의 잘못을 안아주지 못해서, 압살롬이 자신을 반역하다 죽었을 때, 죽은 아들을 안고 후회합니다. 야곱과 에서는 서로 화해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생을 원수로 후회하며 살다가 20년 만에 만나 서로 안고 통곡합니다. 오늘 솔로몬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때”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흘려버려 내가 손 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가 영원할 것 같지만 그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회개해야할 것이 있다면 오늘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두막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 영화의 주제는 자신의 상처 때문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 왔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꿈에서 천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이후에 그는 보게 됩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가족들과 회복해야 할 때를 놓쳐버리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제일 힘들 거 같지만, 사실은 나 때문에 누군가가 더 힘들고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우리의 하루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때”를 놓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지금 나에게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을 향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무엇인지 기억해 봅시다. - 계속 마음을 주셨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오늘 실천해 보기 원합니다.
주님! 나는 내가 가장 힘들고, 그래서 이렇게 할 만 하다고 핑계 대왔지만, 사실은 나 때문에 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더 이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무시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순종하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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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책 제목을 바꾸어도 됩니다”
“제 소설 중 어떤 것에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농담』, 『우스운 사랑들』로 이름 붙여도 무방합니다. 제목들은 서로 바뀌어도 별로 상관없어요. 그 제목들은 저를 사로잡고, 정의하고, 한편으로는 불행히도 저를 제한하는 몇 개의 주제들을 반영하거든요. 이 주제를 넘어서서는 다른 아무것도 말하거나 쓸 게 없습니다.”
파리 리뷰 저(著) 권승혁 김진아 공역(共譯) 《작가란 무엇인가?》 (다른, 306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 중 하나인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농담』, 『우스운 사랑들』 등입니다. 그런데 쿤데라는 자신의 이 작품들의 제목을 서로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같은 주제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쿤데라에게 꽂힌 강렬한 한 가지 주제가 있었던 겁니다.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들의 홍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억만 이야기가 있어도,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꽂혔던 것을 반복하여 이야기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늘나라 3층천을 체험한 사람은 바울 밖에 없 습니다. 세 가지 층으로 되어 있다는 하늘 나라. 누군가 3층천을 체 험하였다면 평생을 간증하며 다닐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3층 천에 대한 이야기를 오직 한 곳에서만 합니다. 그것도 체험의 생생한 감정이 많이 사라진 후, 살짝 지나가는 말 같이, 또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체험한 것같이 말입니다. 바울 사도가 강조한 것은 3층 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 사도에게 꽂힌 것 한 가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복수’를 끝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염려’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이 평생의 주제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꽂힌 것 한 가지. 그것이 그 사람의 행복을 좌우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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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Marriage should be honored by all, and the marriage bed kept pure, for God will judge the adulterer and all the sexually immoral.(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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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경이 전하는 교회는 이와 다릅니다. 기독교는 도시운동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도시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약성경 각 책은 모두 도시에서 쓰였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은 도시의 수신자들에게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한 사회학자는 “기독교는 처음부터 도시 운동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김형국의 [도시의 하나님 나라] 중에서-
기독교의 시작이 도시였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도시라는 곳에 사람들과 다른 생소한 모임이 생긴 것입니다. 낮선 공동체가 도시안에 세워져 도시를 섬기고 도시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자기가 있는 곳에 생소한 가치관을 가지고 세워졌지만 그 삶과 섬김을 통해 감동이 되고, 감격이 되어 예수 따르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도전해야 할 것은 믿는 우리가 품어야 할 곳이 도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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