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다 (삼상 4:7-15)

鶴山 徐 仁 2020. 8. 29. 14:10

08월 29일 (토)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다 (삼상 4:7-15)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다 (삼상 4:7-15)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느는 죽임을 당하였더라>(10-11절).

<삼만>이면 당시 이스라엘의 한 지파의 장정들과 비슷한 숫자입니다(민 26장).

그 처참한 패배로 당시 이스라엘이 받았을 충격은 실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 법궤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담보물이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확인시켜주는 지극히 거룩한 상징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정말 견디기 힘든 비극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치욕적인 사건을 통해 서도 ① 전능하사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상징물이나 공간적 성역에 제한되시거나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②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법궤는 더 이상 아무 쓸모없는 하나의 궤짝에 불과핟는 사실, 그리고 ③ 백성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기된 곳에서는 더 이상 그 어떤 의식도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깊이 일깨워주셨습니다.

 

<엘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렸다>(13절)고 합니다.

사실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두 아들의 죽음보다도 법궤를 빼앗긴 사실에 더 경악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 리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18절)고 합니다.

법궤에 대한 실책이 결국 그를 죽을 지경으로 비통하게 했고 또 극단적인 슬픔에 빠뜨리면서 정신을 잃게 한 것입니다.

 

말년의 죄와 고뇌가 그의 육신을 어지럽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게 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자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 예언의 준엄한 성취였습니다.

 

-적에게 법궤를 빼앗긴 이 초유의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엘리의 두 아들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11절)?

-엘리 제사장은 몇 세에 사망했습니까(15절)?

 

주님, 이스라엘 군대와 엘리 제사장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은 가차 없었습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다 현실이 됐습니다.

보병 3만이 죽고, 하나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도 또 엘리 제사장 자신도 죽고 말았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엘리의 집을 생각하며 이 시대 저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를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지혜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기에

부모의 지혜로운 태도야말로 가장 필요하다.

부모가 혹시 어느 자식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행동에 있어서는 공의롭게 행하도록

기도하며 마음을 살펴야 한다.

공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공의롭지 못하면

하나님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도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을 기쁘다고 하셨을까

-신언혁의 [지혜롭게 키운 자녀가 성공한다] 중에서-

 

부모의 행동이나 처신은 공의로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상을 만드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 큽니다.

부모의 편애나 편중은 자녀를 모멸감을 주거나 열등감을 줄 뿐입니다.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녀의 느낌은 다릅니다.

그래서 할수만 있으면 말의 지혜를 구하고,

차별없으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