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 07일 (금)
그를 생각하시다 (삼상 1:19-28)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19절). 창세기를 보면 라헬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30:22). <생각하다>는 말인 히브리어 <자카르>는 <표시하다, 기억하다>는 뜻으로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창 8:1, 느 5:19, 시 25:7). 그렇습니다. 가난하거나 슬픈 마음을 가진 자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시고 생각해 주십니다.
성경에는 한나 외에도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창 15:1-21:7), 요셉을 낳은 야곱의 아내 라헬(창 30:1-24), 삼손을 낳은 마노아의 아내(삿 13:2-25), 세례 요한을 낳은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눅 1:5-58) 등이 모두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생각하사 은혜를 입은 여인들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① 기도 응답으로 늦게 얻은 자식들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되었다는 것과 ② 그렇게 얻은 자식들 역시 모두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된 믿음의 인물들이 됐다는 것입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들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22절). 사무엘은 레위인이었으므로 당연히 성소에서 봉사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레위인의 봉사라 해도 일반적으로는 30세에서 50세까지였습니다(민 4:30). 그럼에도 사무엘의 경우는 어머니 한나의 서원이 있었으므로 <평생을>(11절)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28절). 이렇듯 한나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를 바치겠다고 한 것은 결코 일시적인 위탁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양도를 의미했습니다. 한나의 그것은 모성애를 초월한 헌신의 결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한 자만이 가능한 결단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의 출생이 전적으로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요 은총임을 굳게 믿었기에 자신의 서원을 파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도로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런 한나의 귀한 믿음을 보시고 그를 생각하사 사무엘 외에 다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2:21).
-한나의 서원과 그 이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무엘은 약 몇 살쯤 성소에 맡겨졌을까요(23절)? -본문 21절이 말씀하는 <매년제>란 어떤 절기를 말할까요?
주님, 누구든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시면 반드시 은혜를 입습니다. 한나도 라헬도 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생각하사 태를 열어주셨다고 했고,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출산에 이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저희도 다 한나처럼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필요하다면 한나처럼 서원도 마다않게 하사 꼭 그 서원을 지키므로 더 큰 은혜를 입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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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looks at a woman lustfully has already committed adultery with her in his heart.(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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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의 사람이 되려면 어느 목사님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기상이 좋지 않아 계속 흔들리고 사람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자꾸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귀에 리시버를 끼고 . 코미디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웃는데 모든 사람이 긴장하고 있는데도 자기는 즐거운 것이다. 그것을 보고 목사님이 '저 사람하고 나하고 다른 점은 저 사람은 듣는 것이 있고 나는 듣지를 못한다. 그것이 틀리구나.' 여기에 큰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옥한흠 목사의 ‘골방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에서-
늘 기뻐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다른 데가 있습니다. 삶은 힘든 것 같고, 어깨에 지워진 십자가는 무거운 것 같지만, 그러나 여유가 있고 평안이 있고 그 얼굴에 기쁨이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그런 사람을 살펴보면 그에게는 골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잠잠히 보시며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 그 분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웃지 못하는 환경에도 그 사람은 웃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과 골방에서 만나십시오.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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