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한나의 기도 (삼상 1:9-18)

鶴山 徐 仁 2020. 8. 6. 06:22

08월 06일 (목)

   

한나의 기도 (삼상 1:9-18)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절).

당시 제사장 엘리는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 문설주 곁에 앉아 있었고,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 흐느껴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며 서원까지 드렸습니다. 한나의 이 서원기도는 구약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나실인>의 서원과도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의 그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무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어머니의 신앙적 결단에 의해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소명자였습니다.

 

한편 <나실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던 이유는,

① 머리털을 보존함으로써 자기 위에 자신을 주관하시는 자가 계심을 인정한다는 뜻(고전 11:3-10)과

② 자기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언제나 절대 복종하겠다는 의지(민 6:5)를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그 기도하는 모습을 오해했습니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13절).

한나의 기도는 스스로 완전히 몰입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온 심령을 토로하는 깊고도 은밀한 내적 기도였습니다. 사실 그런 기도는 처절한 소원과 깊은 신앙 없이는 드릴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영적 기도입니다.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16절). 그제서야 엘리 제사장이 <평안히 가라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7절)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한나처럼 언제나 바른 목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바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순종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관한 교훈인 신약 야고보서 4:1-3까지를 옮겨 적어보십시오.

-나실인에게는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는 것 외에 또 어떤 금기가 있었습니다(민 30:1-8)?

-본문 18절에서 한나가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주님, 유명한 기도의 여인이었던 한나는 통곡하며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술취한 여자로 오해도 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처절하게 영혼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음에 근심도 극복했고, 제사장의 축복도 들었고, 마침내는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도 받았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한나의 기도를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내 생각 속에서 만들어낸 하나님

 

“내 생각과 열정과 상상이라는 변화무쌍한 허깨비들을 뚫고 지나 사

랑의 팔과 손을 뻗어 실체를 더듬어 보아야 한다(중략). 그것들을 하

나님 대신 숭배해서도 안 되고 그녀 대신 사랑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자체를(중략). 종종 이러한 실

수를 저지르곤 하지 않는가? 그 사람 자체에게 말 걸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속에 만든 대략의 그림에다 대고 하는 것이 아닌가?”

 

C.S.루이스 저(著) 강유나 역(譯) 《헤아려 본 슬픔》

(홍성사, 95-9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진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 C.S. 루

이스는 하나님을 가리켜 ‘먹고 있는 수프를 낚아채는 어릿광대’,

‘문을 걸어 잠그는 무자비한 교도관’, 사람을 반으로 잘라 버리는

‘생체 해부자’, 피조물의 고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우주적인 사

디스트’ 등으로 묘사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가

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하나님 상象)’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자

체!”를 묵상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

하는 체리만 뽑아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신앙도 체리 피킹할 수 있습니다. 내 취향에 맞게 골라

믿던 하나님, 내 생각대로 믿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

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전1:17)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NIV)

   

주님은 누구의 기도를 받으셨는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주님의 은혜에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것인데

그런데. 바리세인은 헌 누더기만도 못한

자기의 공로를 하나님 앞에 자랑하고 있다.

스스로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본다면

이렇게 기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다.

벌써 하나님이 그에게서 떠났는데

하나님 앞에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요.

영원히 불쌍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는 전혀 달랐고

주님은 그의 기도를 받으셨다

-작자 미상의 글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에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 외마디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죄인이니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바리세인이야 어떠하던

누가 무슨 말을 하던 상관없습니다.

깨끗하게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리의 이 기도를 들으셨고

그를 사랑하셨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