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자신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십시오.(창세기 13장 5-13절)

鶴山 徐 仁 2020. 8. 5. 09:07

08월 05일 (수)

   

자신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십시오.(창세기 13장 5-13절)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우리가 흔히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선택을 하나님이 해 주신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잃은 조카, 롯을 항상 챙기며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이곳에서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산과 양떼들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롯의 선택에 따라 자신은 반대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동쪽 땅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버르장머리 없이...

롯은 전형적인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의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정말 좋은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실패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러한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을까? 그냥 만드시지 않으셨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회개는 책임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도 책임적인 자아에게 해당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드신 이유는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점 때문입니다.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핑계 댑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다고 하셔서,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할 때도, 정작 롯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당할 것을 알려주러 온 천사들을 마을 남자들이 상관하려고 때도, 자신의 딸들을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이것이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폐해입니다. 롯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가족과 천사들을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롯은 가족을 희생해서 상황을 무마시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우리의 눈에 문제의 환경들을 보여주실 때, 나에게 맡겨주신 상황을 책임지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를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삶에서 책임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나에게 보여주시는 상황들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상황이라고 믿고 책임지는 행동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 지금까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 정작 믿음으로 책임져야할 상황들까지도 회피하려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나에게 허락해 주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책임지는 자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전 단지 성공하고 싶은데요?

 

“제가 왜 꼭 위대한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전 단지 성공하고

싶을 뿐이라면 어쩌죠?”

 

짐 콜린스 저(著) 이무열 역(譯)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29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를 저술하고 ‘좋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위대한 것’을 추구하

라고 강연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왜 꼭 위대한 회사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전 단지 성공하고

싶을 뿐이라면 어쩌죠?”

이에 대해 짐 콜린스는 두 가지 답을 주었습니다.

첫째로, 위대한 것(great)을 만드는 일이 좋은 것(good)을 만드는 일

보다 더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것을 지속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요구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좋은 조직을 위대한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에너지가 투입되는 건

맞지만 추진력이 쌓여 감에 따라 연못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연못 속으로 되돌아온다. 반대로, 평범한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본질상 침체하는 과정으로서, 연못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연못 밖으로 빠져 나간다.” (299쪽)

둘째,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를 찾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보람을 찾을 때가 바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았을

때인데, ‘위대한 것’을 추구하면 의미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좋은 것’에 머물지 않고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참 환희스러운 일입니다.

신앙 생활도 나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 기도하는 차원에서 지경이 넓

혀져 이웃을 향하게 될 때, 좋은 신앙에서 위대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

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

이니라.” (약1:27)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NIV)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대통령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요나서는 니느웨의 멸망과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어떤 나라든지 말씀 안에 바로 서 있으면

그 백성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 복을 주시지만,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가차 없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으니라”(렘 18:6)

-작자 미상의 글 ‘요나의 회개’에서-

 

요나서의 핵심은 <회개>에 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회개만이 살 길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는 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나중에 받을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이 많다면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만이 복된 길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려면 우리의 삶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