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 03일 (월)
아름다운 걸작품 (시편 8 : 1~9)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와트 비치호텔에서 미국 최대 부호 아홉명이 자리를 같이 했을 때 언론에서는『20세기의 신화』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25년 후인 1948년에 그들 중 한 명은 미치고, 셋은 파산하고, 둘은 출옥 후 패인이 되었고, 셋은 자살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돈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올바른 목적을 상실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면 나침반 잃은 배와 같습니다. 나침반을 잃으면 목적하는 항구는커녕, 그 배의 결과는 파선이요, 침몰이요, 죽음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주의 이름을 온 땅에서 정말 아름다우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1,9).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작시한 다윗은 참으로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면서 정말 좋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감동하고 있습니다. 감동해 보신 지가 얼마나 된 것 같습니까?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세계를 보고 그 안에서 살면서 그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합니다. 바쁘게 만들고, 짜증나게 하고, 염려하며 낙심하게 합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 있는 신앙생활하시고,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다윗은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3) 감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체험과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외롭게 양을 치면서 밤하늘에 영롱히 빛나는 달과 별빛을 보았습니다. 은하수의 강을 보았을 것이고,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고, 한 낮의 강렬한 태양을 보았으며, 저녁노을을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대자연을 보면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을 것입니다. 대자연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앞에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4절에서 ‘사람이 무엇이관대’라는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을 둘 대상이 아닌데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니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생각한다는 말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관심이 있기에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각하셨던지 자신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님 당신의 죽음의 자리가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권고는 조심스럽게 충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의 대화의 파트너로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어느 피조물에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을 이러한 영화로운 존재로 삼으신 이유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그 임무를 주시기 위해 이런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6-8).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모든 걸작품을 인간에게 확실하게 맡기신 것입니다(창 1:28). 다윗같이 순수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심으로 감격이 넘치는 아름답고 복된 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나는 삶의 목적을 주의 이름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의 신분에 대한 자아정체성이 있으십니까? - 가까운 공원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소리도 들으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봅시다.
창조의 하나님, 지금 보고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걸작품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함부로 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겸손함으로 사명 다하게 하시옵소서.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책임감 있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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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의미
“유럽의 소수민족인 사미족에게는 눈을 일컫는 단어가 200개, 혹은 300개 이상이라고 한다(중략). 순록과 함께 자신들의 삶도 결정되는 사미족에게 눈은 바라보고 감상해야 하는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아니라, 감당하고 극복하고 경외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쌓이는 눈인지, 또 어떻게 얼거나 해빙될 눈인지 하나하나가 다 생존과 연결 되는 문제였을 터이다.”
「2019년 2월 10일 경향신문 ‘김인숙의 조용한 이야기’」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단어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일 뿐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평생 ‘눈’ 을 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 원주민 들의 언어에는 ‘눈’이라는 단어가 없고, 평생 눈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대한 단어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나타내는 단어가 히브리어 헬라어 합쳐서 7개나 됩니다. 미드바르, 네게브, 아라바, 찌야, 에쉬몬, 에레모스, 에레미야 등이 그것입니다. 눈이 많은 곳에 눈에 대한 단어가 많듯이, 광야에 대한 단어가 많은 이스라엘은 한마디로 ‘광야의 백성’입니다.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시온’은 히브리어로 ‘찌욘’이라고 하는데, 성경학자들은 ‘메마른’ 광야를 의미하는 ‘찌야’에서 온 단어라고 추측합니다. 헬레니즘 시각에서 본다면 광야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래서 영어는 광야를 ‘버려진 땅’(desert)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시각에서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광야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히브리 단어가 ‘미드바르’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바르’라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를 ‘드비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광야는 ‘미드바르’입니다. 말씀, 지성소, 광야의 어근이 모두 같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광야를 버려진 땅이라고 하지만,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광야는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세상 음 성에 찌들어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는 시간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 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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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gives you a cup of water in my name because you belong to Christ will certainly not lose his reward.(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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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적 감사의 적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뭐든지 삐딱하면 좋게 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대화할 때 매우 빠르게 말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평균 1분당 150-20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하지만, 자기 자신과 속으로 대화할 때는 1분당 130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10배정도 빠르게 많이 말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셀프 톡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대화할 때 어떤 대화를 많이 할까? 이것에 대해서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상상은 엄청납니다. 그 상상은 홀로 하는 대화로 연결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생각과 마음으로 이미 범죄 하였습니다. 우리의 내면적 대화가 얼마나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생각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말로 나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과 마음으로 채우는 일이 숙제입니다. 더욱 더 감사하는 삶을 위해 나 자신안에 일어나는 대화를 점검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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