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 04일 (화)
풍성한 결실의 비결 (마가복음 4:10~20) 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계속되지만 이젠 완연한 봄이 왔습니다.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고향 생각을 잠시하며 감사했습니다.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자라나며 불평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감사한 조건입니다.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농부의 그 순박한 마음을 사랑하는 것과 그들이 땀 흘려 생산한 농작물을 대하며 감사하는 것도 농촌 출신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농부는 땅을 소중히 여기고 기름지고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유는 땅이 좋아야 풍성한 결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는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햇빛, 공기, 수분)과 좋은 종자와 비옥한 땅입니다. 그러나 모든 환경 조건이 좋아도 땅이 나쁘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복음의 씨가 뿌려짐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풍성한 열매 맺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밭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4). 생명의 양식이요, 복된 구원의 소식입니다. 지금도 이 복음의 씨는 온 열방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밭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4종류의 밭이 소개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먼저 사탄을 조심해야 합니다(15). 사탄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멍청하지 않고 지혜로우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지 못하게 하고 의심과 분쟁과 욕심따라 살아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하며, 예배 시간에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마치 새가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쪼아 먹어버리듯 말씀을 뺏어가 버리고 맙니다. 굳은 마음 깨뜨려 달라고 성령의 단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감정을 초월해야 합니다(16). 우리의 감정은 시시 때때로 변합니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함으로 정서적으로 유쾌하고 기분도 좋아 신앙생할 잘할 것 같았는데 조금한 어려움이 닥쳐도 사정없이 흔들리게 됩니다. 마치 밭은 밭이지만 돌과 자갈이 가득하다면 씨앗이 돌 사이에 있는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지만 흙이 깊지 못하여 쉬 말라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위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캐내어 버리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제어해야 합니다(18). 현대인의 염려거리는 좀 더 잘살고 편안하게 생을 즐기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가시떨기는 돈과 명예와 쾌락입니다. 가시떨기가 무섭게 번지고 좋은 땅을 점령하듯이 성공주의와 쾌락지상주의가 현대인을 정복해 가고 있습니다. 가시밭은 가시와 함께 식물이 자라기에 가시가 기운을 다 뺏어버려 열매 맺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은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결실을 기대할만한 결정적일 때 쓰러지는 경우입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불로 온갖 잡초와 가시를 태워버려야 합니다. 나는 어떠합니까? 신앙인으로 외형적인 모습은 갖추었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없다면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입니다. 이제 시편기자처럼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시50:10). 이 기도가 옥토화의 첫 단계입니다. 그리고 결단하셔야 합니다. 굳은 마음은 깊이 갈아엎어야 합니다. 돌을 캐내고 골라내어 제거해야 합니다. 가시덤불은 걷어내어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풍성한 결실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 나의 마음은 어떤 밭과 같은지 살펴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봅시다. -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지금 결단하시고,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 마음의 옥토화를 위한 결단과 실천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천국을 깊이 이해하고 깨달아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 강팍하고 굳어있는 마음 깨뜨려 주시옵소서. 온갖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마음 정결케 하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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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좋은 것(good)은 큰 것(great), 거대하고 위대한 것의 적이다. 그리고 거대하고 위대해지는 것이 그토록 드문 이유도 대개는 바로 그 때문이다.”
짐 콜린스 저(著) 이무열 역(譯)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1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명강의 교수로, 미국 경영학의 대부라 불리는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명작을 저술합니다. 5년에 걸쳐 2,000여 명의 심층 인터뷰와 6,000여 관련 논문을 통해 20년 동안 살아남은 기업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책입니 다. 이 책에 의하면 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이 그런대로 ‘좋은 삶’에 만족하며 그 너머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이 만하면 되었다면서 위대한 삶을 미리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거대하고 위대한 학교는 없다. 대개의 경우 좋은 학교들이 있기 때 문이다. 거대하고 위대한 정부는 없다. 대개의 경우 좋은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개의 경우 좋은 삶을 사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회사들은 위대해지지 않는다. 바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제법 좋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주된 문제점이다.” (17쪽) 그리하여 짐 콜린스는 유명한 교훈을 줍니다. “Good is the enemy of Great!”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좋은 것에 취해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 생활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들이 많아도 하늘 나라의 그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에 취해 하늘의 위대한 것을 잃어버린다면 가장 어리석은 인생이 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1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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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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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추는 자가 큰 자이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묻는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 질문 구체적으로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누가 높은 자리에 앉겠습니까? 베드로입니까? 요한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하는 뜻이다. 예수님 무엇이라 대답하셨는가?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고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다. -작자 미상의 설교‘ 겸손함으로 끝까지’에서-
낮추는 자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맞습니다. 스스로 높아진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고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끌어 내려서라도 낮추실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지는 자는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기어코 높여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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