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14일 (화)
행복의 조건(1) (야고보서 3:1~12)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6)하시며 살아있음에서 오는 행복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심장이 뛰고 있고, 내일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다음 달에 할 것에 대해 계획을 잡아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행복입니다. 현대인들의 관심의 중심은 행복이지만, 그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돈과 명예만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한 답이라 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소유’보다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종적관계와 가족과 이웃과의 횡적관계를 바르게 하고 살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마22:37-39). 이러한 두 영역의 좋은 관계를 위해 인간에게만 언어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언어부터 바꿔야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말을 많이 사용하십시오. 돌아보면 감사하다는 말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을 때가 행복했을 것입니다. 지금 불행하게 느껴진다면 언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불평하고 짜증스런 말을 많이 사용한다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불평과 짜증스런 말보다는 감사하는 말을 많이 사용함으로 언어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엡5:4).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말은 버리고 감사의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서부터 평안이 자리를 잡을 것이며 행복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긍정적인 말만 하십시오. 말이 씨가 된다는 교훈처럼 말은 성취의 능력이 있습니다. 5절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야를 다 태우는 것처럼,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말 한마디는 행복의 전당들을 숯덩이로 만들어 버리고 태워버리게 됩니다. 신앙인은 “할 수 없다”는 말 대신에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는 ‘큰일’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통해서도 다듬으시고 준비해 가시는데 무슨 큰 일이 있겠습니까? 부정적이고 불평적인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무의식중에 던지는 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하는 말을 하십시오. 사람들은 칭찬 듣기를 원하는 강한 욕구가 있으며, 칭찬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상대의 ‘장점’을 발견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모든 사람들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고 그들을 칭찬해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문에 고삐 없는 힘센 말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훈련하듯이 혀를 단속하고 절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3). 그래도 어렵기에 생각과 말과 습관이 바뀌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하며 성령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사하는 말과 긍정적인 말과 격려하며 칭찬하는 말을 많이 사용함으로 행복한 인생이 되길 기원합니다.
- 하나님의 자녀인 나의 감사의 조건은 무엇이 기준입니까? - 나의 생각과 말이 하나님의 능력을 종종 부정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 언어의 변화를 위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주 하나님, 나의 언어생활의 부족함이 많으니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나의 인격의 변화를 통해서 말이 바뀔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감사를 통해서 행복의 조건들이 삶에서 나타나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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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물을 깨끗하게 하는 법
“뿌옇게 혼탁한 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함은 기다림뿐이었다. 그 충분한 기다림 후에야 비로소 물은 깨끗해지고, 뿌연 속을 바라볼 수 있었고, 원하던 것도 손쉽게 건져낼 수 있었다.”
강원상 저(著) 《나다움을 지킬 권리》 (경향BP, 28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뿌옇게 혼탁한 물을 정화한다고 휘저으면 더욱 혼탁해 집니다. 이런 경우, 기다림이 답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 나이고, 사랑의 다른 이름이 기다림입니다. 성경에는 기다림의 이야 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누가복음 15장의 집 나간 탕 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오는 모 습이 먼 발치에서 보이자 아버지는 달려갑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0)
성공해서 돌아오는 아들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집으로 당당히 들 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아들은 다릅니다. 그래서 아버 지는 날마다 문 앞에 나가 눈이 짓무르도록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리고 돌아오는 아들이 보이자 ‘아직도 거리가 먼 데’ 아버지는 달려가 영접을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십니다. 방탕한 아들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혼탁한 물이 되어 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기 다리십니다. 면목이 없어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멀리서 서성일까 봐, 문 앞에 나가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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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23-24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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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양 사막에는 길이 없다. 그러나 베두인들은 길을 알고 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고, 실제로도 길이 없지만 베두인들은 본능적으로 길을 안다. 그들은 20년 전에 가 본 길도 기억한다고 한다. 아주 특별한 방향 감각을 갖고 있어서 캄캄한 방 안에서도 방향을 분별할 수 있다. 사막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다. 사막에서는 베두인이 바로 길이다. "여기 길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길입니다. 나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궁인의 [리액션] 중에서-
우리 역시 베두인처럼 광야에서 사는 인생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길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둠이 찾아오거나 풍랑을 만나면 쉽사리 길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수도 없이 순례자로서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는 훈련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의 음성을 듣고 아는 자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자가 광야에서도 미세하게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양은 길이신 주님만 따라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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