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그날에 (에 9:1-4)외 1

鶴山 徐 仁 2018. 6. 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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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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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4일 (목)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그날에 (에 9:1-4)

1.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본문 해석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1절).

<아달월 십삼일>이란 원래 하만이 내린 조서에 의해 유다인들을 대량학살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럴뿐 아니라 후에 모르드개가 내린 조서에 따라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해치려는 세력들에 대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한 날이기도했습니다(8:11-12). 

따라서 그날은 유다인들과 그들을 해치려는 대적들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반포된 하만의 조서가 당시 바사 왕국의 관례상

취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유다인들의 자위권을 보장하는 모르드개의 조서가 내려졌으므로 유다인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세력들이 하만의 조서에

근거하여 유다인들을 치려할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달랐습니다. 

<유다인들이 ...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 그들을 두려워하여 막을 자가 없고 ...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2-4절). 

사람들은 도리어 유다인들을 두려워했고, 관리들은 대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잽싸게 유다인들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졸지에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된 모르드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두가 유다인들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 섰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명성이 점점 더 창대하여 각 지방에 퍼졌다>는 말씀은 반전된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의 운명과 위상이 이제는 누구도 더 이상 대적하거나 

해칠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죽음의 날이었던 <그날>이 도리어 그들의 존귀와 명성을 널리 떨치는 날이 된 것입니다. 

집단 학살이 예고됐던 날이 은혜와 감사가 샘 솟는 삶의 새로운 시작의 날로 변화된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하만이 유다인들을 멸절하려 한 날이 언제였습니까?

-모르드개의 조서가 유다인들의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날은 언제였습니까?(8:11-12)

-지방관과 대신들이 유다인들을 도운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하만이 유다인들을 집단 학살하기로 한 날 도리어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해치려는 자들을 응징했기에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관리들은 유다인들을 도왔다고 했습니다.

 하만이 그토록 죽이기를 원했던 모르드개는 그 명성이 각 지방에 퍼졌고 지방관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했다고도 했습니다.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었다>고 했는데 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기에 감히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연출이었기에 그토록 놀라운 반전이 가능했음을 믿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하루의 힘
인문학 나눔

“헛되이 보낸 일주일, 한 달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하루를 헛되이 보냈다고 해서 크게 낙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지만 하루 동안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합니다. 

하루만에 세상은 어제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당신 역시 하루 동안 엄청난 일을 이루어낼지도 모릅니다.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담고 있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다루고 뜻깊게 보내면

하루는 당신에게 뜻밖의 선물을 보내올 것입니다.

 

임하나 저(著)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읽는 책」 (북씨, 5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됩니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됩니다. 

1849년 12월 22일 사형 선고를 받은 한 청년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사형집행관은 청년에게 5분의 시간을 줍니다.  

청년은 5분 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 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5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청년은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황제의 특명으로 사형을 면한 것입니다.  

청년은 긴 유배 생활을 거쳐서 모스크바로 돌아왔습니다. 

청년은 사형대에서 느꼈던 시간의 소중함을 평생 잊을 수 없었고, 

책상 앞에 ”인생은 5분의 연속이다.” 는 문구를 적어두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미친 듯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수많은 명작을 발표합니다. 

그 청년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기독 메시지

하루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됩니다.  

오늘 하루는 새로운 인생의 첫 출발입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 하나가 미약해 보이나 

마침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든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 같은 하루에 충실할 때 큰 나무 인생이 됩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2)

그림 큐티더 보기
요한복음 8장32절
고린도전서 15:1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도서 큐티더 보기
관계의 틈

가룟 유다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전쟁을 알아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이 길을 걸어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은 내 선생이 될 수 있다. 

좋은 가르침을 주는 선생도 있고,

그와 같이 하면 안되겠다는 가르침을 주는 선생도 있다. 

유다는 우리에게 반면교사이다.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 불신이 들어오면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에 대해서 불신하게 된다.

-김길의 [마음아, 이겨라] 중에서-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신이 찾아와 신뢰가 깨어지게 되면

사단은 우리를 가룟 유다와 같이 걸고 넘어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을 심어놓고,

오히려 무기력한 예수로 가르칩니다. 

그에게서 떠나가라고 조롱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죄악이 가까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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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3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당신의 눈에는 “지극히 작은 자”가 보입니까? (마 25:34-46)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본문 해석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가 제사와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보다 사랑과 자비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끼리 모이고, 우리끼리 사랑하고, 우리끼리 위하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좋은 것 같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세상을 향한 사랑과 자비로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시며, 열방을 부르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마지막 때에 대한 비유들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달란트 비유를 하신 이후에 오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우리를 심판하시는 기준이 “지극힌 작은 자”들을 향한 선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도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기며 부지중에 천사들과 예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이 성경을 증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 가운데 있는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하여 아무런 감정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올바른 신앙가운데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 말씀에 오른 편에 선 사람들이나 왼 편에 선 사람들 모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언제 예수님을 섬겼는지를 모르고, 왼 편에 선 사람도 언제 예수님을 버렸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두려운 말씀입니다.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의 고백을 보면 그가 구원을 받기 위해 선행을 한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한 일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을 목적으로 선행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내 주위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그들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 하루의 삶에서 부지중에 천사와 예수님을 섬기게 될 기대감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기쁨으로 섬기는 용기를 가져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와 예수님을 보고도 얼마나 많이 지나쳤는지를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 나에게 오실 때, 그 분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큰 슬픔을 이기게 하는 작은 기쁨
인문학 나눔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신영복 저(著)「감옥으로 부터의 사색(돌베개, 47-48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감옥의 큰 슬픔을 이기게 하는 것은,  슬픔만큼 동일한 크기의 기쁨이 아니라 

누군가 소담스럽게 심은 꽃씨로 인한 작은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방안으로 들어오는 신문지만한 햇볕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평생 병환을 안고 살았던 장영희 교수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용기가 된 말이 

“괜찮아” 였다고 회상합니다.  

어린 시절 몸이 불편하여 친구들의 놀이에 끼지 못했을 때,  

지나가던 깨엿장수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괜찮아!” 그 단순한 위로의 말이,  

깊은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 지 모릅니다.

기독 메시지

‘위로’라는 말은, 말 그대로 ‘위로’ 올려 줍니다. 

아래로 처진 어깨를 ‘위로’ 올려 줍니다. 

아래로 숙인 고개를 ‘위로’ 들어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큰 일이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따뜻한 중보 기도, 따뜻한 말이면 이웃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늘 큰 일만 꿈꾸는 우리에게 주님은 꽃처럼 속삭이며 말씀하십니다.

“작은 것이 아름다우니 네 작은 위로를 이웃에게 전해다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1)

그림 큐티더 보기
찬송가 '이 세상 험하고'
고린도전서 15:10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 주사 굳세게 하소서

For nothing good have I, Where-by Thy grace to claim. I'll wash my garments white, In the blood of Cal-v'ry's Lamb.

도서 큐티더 보기
하나님 한분으로 나는 충분합니다

하나님 안에 만족이 있습니다. 

 만약 돈에 만족이 있다면 

한국 제일가는 재벌 총수가 문 열고 뛰어내려서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 분은 돈이 엄청 많은 분이니까

 만약에 인물이 행복을 갖다 준다면 

인물 좋은 탤런트들이나 배우들이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정치하는 사람이나 엄청난 지도자들이 

감옥을 가고 수치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허무 불안 염려 근심 고통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는 심판 밖에 없습니다. 

전도서 5장 10절은 nbsp;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신성남 목사의 ′하나님 없는 인생은′에서-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돈도 헛되고 인물도 헛되고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을 구해도

 헛된 것은 언젠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빈손으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도 

만족을 못해서 결국은 쫓겨난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욕심과 탐심이 사라져서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한분으로 나는 충분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