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해피엔딩 (에 8:15-17)

鶴山 徐 仁 2018. 6. 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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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0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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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해피엔딩 (에 8:15-17)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본문 해석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8절).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전권을 일임합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왕의 조서가 작성되고 반포되었습니다. 

이미 공포된 하만의 조서에 의하면 유다인들은 다 도륙당하고 진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전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새로운 조서를 통해 유다인이 아니라 유다인들을 죽이려던 자들이 도리어 진멸 당하게 된 것입니다(11절). 

 

모르드개가 유다인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작성한 왕의 조서가 매우 급하게 각 지방으로 전달됐습니다. 

역졸들이 왕의 준마를 타고 다니며 그 조서를 반포했다고 합니다(14절). 이는 위대한 승리이자 놀라운 반전입니다.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15-16절). 

 

각 성읍마다 승리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며 바사 왕국은 그야말로 유다인 천하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인 멸망의 날을 구원의 날, 승리의 날, 원수들 심판의 날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의 날이요 저주의 사건이었던 주님의 십자가가 도리어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 사건, 대속의 사건이 된 것과도 꼭 같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멸망의 날이 구원의 날, 승리의 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엡 2:4-5)고 합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에스더서의 모든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속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절대적이고도 주권적인 섭리로 유다인들을 붙드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마치 침묵하시고, 부재하시듯 <하나님>이란 명명조차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철저히 간섭하시며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연출하셨습니다. 

결단과 적용

-당신은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믿으십니까?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가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택하신 자들의 구원의 표상임을 확신하십니까?

-당신은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의 <해피엔딩>을 위해 내 삶을 간섭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과정은 험하고 언제나 위기에 차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저희의 최후 승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저희 삶의 드라마가 해피엔딩이 되게 하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유다 백성들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승리의 개가를 올리게 하십니다.

저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경륜을 믿게 해 주시옵소서.

도서 큐티더 보기
우리는 지금 어느 편에 있는가

지금은 예전과 상황이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이 다수가 되었고, 

아무도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권력을 잡고,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기독교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가둔다면,

분명히 온 나라의 교회들이 일어나 항의하면서,

시끄러워 질 것이다. 

우리가 다수가 되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그러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수가 되어 힘을 가지게 되었기에

그에 만족하며 회개와 반성이 없는 신앙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바실리엘라의 ′잃은 양 한 마리′에서- 

 

 그 옛날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양 아흔 아홉 마리가 그랬듯이,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깨끗함과 의로움을 주장하지만, 

그 안에 회개가 없고, 자기반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편에 있습니까?

우리에 두고 온 양 아흔 아홉 마리입니까? 

아니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입니까?

숫자가 많아졌어도, 우리는 여전히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께 벼랑 끝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구원을 간구하는 그 양 한마리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