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기다리는 사람들 (마태 25:1~13)

鶴山 徐 仁 2018. 3. 5. 13:25
CTS기독교TV
CTS Social Network
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새벽종소리는 매일 새벽마다 다양한 테마의 큐티를 성도님의 메일함에 매일 새벽 배달하는 서비스입니다. CTS 새벽종소리와 함께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03월 05일 (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기다리는 사람들 (마태 25:1~13)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본문 해석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타로나 점집을 찾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보기를 좋아합니다. 

이뿐 아니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하곤 합니다. 종말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여러 말씀 중에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처처에 난리와 기근과 지진이 있고,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여 미혹하며,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짐으로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말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입니다.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종말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하고 인사하였고,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며 재림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 종말입니다. 이는 나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호흡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종말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농부는 봄을 가다리고,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가다리며, 직장인과 사업가는 승진과 확장을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의 기다림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들은 신부의 들러리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주님 다시 오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고,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열 처녀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있습니다(2-3).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고, 

신랑이 더디 오기에 모두 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5). 차이가 있다면 미련한 처녀들에게는 여분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등은 외형적인 신앙생활로 예배와 봉사, 헌금과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교회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형식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용이 없는 형식은 의미가 없으며,&n bsp;내용과 중심이 있을 때 형식이 빛이 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교양 있고 세련됨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은혜가 없고 역사하는 믿음이 없다면 소용없습니다. 

  처녀들은 자신들이 계산한 시간에 신랑이 오지 않음으로 준비된 기름이 부족하여 등불이 꺼져갔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8).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방법입니다.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후에 문은 닫혔고, 이미 때는 늦어 기회를 상실한 것입니다(10-11). 

누구든지 종말의 그 날을 알 수 없기에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13).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데, 기름은 믿음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욕심과 재미에 빠져 육신의 깊은 잠에 취해 있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믿음과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건강에 있어서 모두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슬기롭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삶에서 가장 많은 기다림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준비는 잘되고 있는지요?

- 신부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오늘의 기도

살아계신 주 하나님,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주시옵소서. 신부의 마음으로 거룩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 잠과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믿음과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슬픔이 크면 클수록
인문학 나눔

“슬픔을 슬퍼하고, 그리하여 슬픔과 한 몸이 될 때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슬픔은,우리가 슬퍼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성복 著 「고백의 형식들」(열화당, 20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슬픔이 크면 클수록 그 슬픔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는 더 크다.”
고아였지만 세계적인 기독교 의사이자 정신의학자가 된 폴 투르니에
박사의 말입니다.

제네바의 피에르 렌취니크 박사는 「의학과 위생학」 지에  “고아가 세계를 주도한다.” 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역사를 움직인 300여명의 지도자가 고아 출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 황제,  프랑스의 루이
14세,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조지 워싱턴,  나폴레옹,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의 기초를 놓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던 골다 메이어,  프랑스의 정치가 비스마르크
수상과 드골 장군 등이 모두
 고아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공자(孔子)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데카르트는 한 살
때,  파스칼은 세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고 합니다.  

예술 계통에는 고아의 비율이 더 높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였고,  바흐는 고아였습니다.  루소,  사르트르,  몰리에르,  
라신,  스탕달,  보들레르,  포우,  단테,
 톨스토이,  볼테르,  바이
런,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등도 모두 고아였답니다.
똑같은 비를 맞아도 가시나무를 돋게 하는
땅이 있고,  꿈같은 꽃을 피우는 땅이 있습니다.
고난이 하나님을 만나면 창조의 꽃을 피웁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그림 큐티더 보기
스키
고린도전서 15:10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분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목적 없는 교회

사도행전 교회는 성령 교회였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던 예루살렘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고 말았다. 

큰 부흥과 풍성해진 교회가 선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구제로 나타난 것 같다. 

부흥이 가져다준 풍요는 자연스럽게 가난한 이웃들을 돌아볼 마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가 구제 본부로 세워져가길 원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했다. 

-이수훈의 [왜 그 교회는 젊은 부부가 몰려올까?] 중에서-

 

교회는 부흥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도들은 구제의 문제로 어려움이 생기자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구제하는 일에만 몰두했던 자신들이 잘못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삶의 방향이 목적과 관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목적을 잃어버리면 방향이 어긋납니다. 

아무리 선한 동기로 시작한 일이어도 목적지가 달라지면 방향은 달라집니다. 

오늘날 교회를 세우시고 남기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