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습 1:10-18) |
| | | | | |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이 구역에서는 울음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11. 막데스 주민들아 너희는 슬피 울라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음이라 12.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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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여호와의 날>은 곧 <여호와의 큰 날>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큰 날>은 곧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15-16절)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너희는 슬피 울라!>(11절)고 합니다.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되며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고 땅의 모든 주민들이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17-18절)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스바냐가 선포한 <여호와의 큰 날>이지만 또한 앞으로 닥칠 이 세상 종말의 그림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 시대에도 스바냐와 같은 예언이 필요합니다. 최후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 메시지가 절실합니다. 교회 안팎의 현실을 직시합시다. 권력과 권위주의 그리고 인본주의와 율법주의, 하나님보다 물질과 세상적 가치관을 더 추구하는 세속주의, 또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 등 참으로 혼란한 시대요 혼미한 정신사의 흐름입니다.
스바냐의 예언과 선포는 그 어떤 선지자의 메시지보다도 극단적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당시 유다 백성 안에 죄악이 심각했던 탓입니다. 만약 스바냐가 이 시대, 우리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다면 아마 이보다 더 첨예하고 더 과격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무시무시한 심판의 언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종말, 추수, 심판, 끝장이라는 의미의 <아사프>가 4번, 멸절하다, 자르다, 끊어버리다는 의미의 <카라트>가 3번, 벌하다는 뜻의 <파카트> 역시 3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습니다. 역사의 종말이 머지않았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 | | | |
| | | | | | -<여호와의 큰 날>이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바냐가 선포한 <여호와의 날> 예언을 보며 역사의 종말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 교회가 왜 갈수록 종말론적 긴장을 잃어가고 있을까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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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주님, 종말에 있을 <여호와의 큰 날>을 두려워하게 하사 저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에게는 그날이 분노의 날이 아니라 축복과 구원의 날이 되게 하사 멸절이 아닌 영생의 날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스바냐 선지자의 <여호와의 날> 선언이야말로 그 시대 유다만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저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종말론적 메시지임을 깊이 깨닫고 근신하는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 | | |
| | | | | | | 신앙 | 하나님은 때때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의 삶을 이러한 난관에 처하게 하십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의 한가운데 우리를 머물게 하십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내게서 멀리 떼어 놓으시고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경고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수적 현상만을 바라보지 말고, 내 귀에 들리는 세상의 함성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내 손에 준 숫자의 기록만 바라보지 말고 전쟁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해야 합니다. -이승희의 [하나님과 함께 걷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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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만 살게 하십니다. 어떻게 살수 있냐고 묻지만 그 질문이 허무한 것임을 인정할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또한 막습니다. 그리고 의지해야 할 분이 주님이라고 고백할 때 당신의 일들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항상 우리 손에 들린 것이 우리의 확신이 되고, 믿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주님을 진실로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들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내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그것을 놓아버리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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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시편 63:1 | |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O God, you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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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 | 마음의 청결함을 추구함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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