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부르심에 합당한 삶

鶴山 徐 仁 2016. 9. 27. 23:01
9월 27일 (화)
부르심에 합당한 삶 (에베소서 4:1-6)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는 특별히 교회에 대해 강조하고 교회생활과 직분과 사명, 교회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교회론을 잘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면 교회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교회에 해가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다툼과 불화가 많다면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정과 교회가 유사점이 많습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 최상의 것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많은 학원을 보내고, 조기 교육에 집중한다고 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 가운데 다툼이나 갈등이 없을 때 건강한 자녀로 성장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특히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1).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택하여 불러주신 것입니다(사43:1-2). 왜 나를 불러주셨고, 이 시대 가운데 살아가게 하셨는지, 교회를 섬기게 하셨는지 부르심과 사명을 알게 될 때,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내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히 알 때,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한마디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2). 구체적으로 겸손과 온유로 오래참고 서로 용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교만하기는 쉬워도 겸손하기는 어렵습니다. 급한 성질 속에 분노하기는 쉬워도 온유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내 탓이라고 말하게 하며,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다 잡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샘에서 나오는 것이 겸손, 온유, 인내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3-4). 한 가정 안에 배움의 크기에 따라 우위를 차지하는 형제라면 결코 좋은 가정이라고 할 수 없듯이, 교회 안에 부와 힘에 따라 직분을 나누고 차별이 이뤄진다면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온갖 색깔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하나되기 쉽지 않고, 나 같지 않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그분이 나의 마음과 삶을 이끌어주실 때, 교회 안에 하나됨을 이루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로써 합당하게 사랑하고, 기도함으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는 성령충만한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 성령께서 주시는 성령의 열매를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실천합시다.

 
   
   
 

하나님, 택하시고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르심의 목적을 상실하고 살아왔습니다. 미련함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주님의 몸인 거룩한 교회의 일원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 받게 하시옵소서.

 
   
     
 

약함을 인정하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 좋은 것 같지만, 그렇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능력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 심령 깊은 곳에는 남들이 모르는 아픔과 고독과 실패감과 연약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서정오의 [목마른 인생] 중에서-

 
     
 
   
 


신앙은 내 자신에게 정직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일 같지만 가장 어렵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아가는 이중적인 삶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는 삶은 자기기만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선 나와 세상 사람들이 보는 나의 간극이 좁아질수록 진실한 삶이 됩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려면 나를 진실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문제를 주님 앞에 드러내는 시작입니다. 그때 도우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열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it must remain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unless you remain in me.

요한복음 15:4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아버지와 아들
   
   



9월 26일 (월)
씨 뿌리는 사람들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는 모두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나이와 배경, 출신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삶을 통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의 육체를 위해 심는가, 아니면 성령을 위해 심는가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위해 심었다면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될 것이고, 성령을 위해 심었다면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8). 우리 모두 성령을 위해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뿌려야할 씨는 무엇입니까? 첫째, 복음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생명의 씨앗인 복음을 뿌려야하고, 아직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에게도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합니다. 둘째, 심김과 나눔의 씨앗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지체들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합니다. 셋째, 헌신의 씨앗입니다. 내게 주신 재능, 시간, 물질, 건강 등을 하나님을 위해 드릴 수 있어야합니다. 넷째, 기도의 씨앗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따르던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라와 가정과 자녀를 위해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합니다. 기도하는 나라와 가정, 기도로 자란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눈물을 하나님의 병에 담아달라고 기도합니다(시56:8). 우리도 하나님의 병이 다 찰 때까지 눈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씨앗을 어떻게 뿌려야할까요? 먼저 울면서라도 뿌려야합니다(5-6). 농부들은 아무리 극심한 흉년이 와도 절대로 종자는 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기를 먹고 싶어도 씨암탉은 먹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소중한 씨앗을 지키고 눈물을 흘리며 씨앗을 뿌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인간에게는 고귀한 3가지 액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땀과 피와 눈물입니다. 이스마엘과 쫓겨나 눈물로 기도하던 하갈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샘물을 찾게 하셨습니다(창21:16-17). 또한 히스기야는 육체의 질병을 놓고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고쳐주셨습니다(왕하20:5).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사탄은 우리를 포기하게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음을 믿고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때를 맞춰서 뿌려야합니다. 농사에 있어서 때를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과정을 지켰더라도 그것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농사를 망칠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범사에 기한이 있다고 말합니다(3:1-2). 공부할 때가 있고, 사업을 확장할 때가 있고, 모든 일이 잘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씨앗을 뿌려야할 때인 줄로 믿고 최선을 다해 뿌려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행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해 주실 것입니다(6). 포로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사 기쁨의 찬양을 부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1-4)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사 우리를 인도하시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면 나의 삶, 가정, 모든 것들에 참된 기쁨과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이것을 소망하며 성령을 위해 씨를 뿌립시다.

 
   
   
 

- 성령을 위해 씨를 뿌리를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결단하십시다.
- 울면서라도, 대를 맞춰서 믿음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다.
- 오늘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어떤 실천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선한목자되신 하나님,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복음을 위해 이웃을 위해 씨뿌리는 삶을 살게하시옵소서. 주님께서 자라나게 하시어 열매 맺게 하심으로 거두게 되는 그날 주님께 영광 돌려드리게 하시옵소서.

 
   
     
 

양 도둑이 변하여 성자가 된 것은

두 사람의 양 도둑이 있었는데 양을 훔쳐간 사람에게는
이마에 양 도둑의 약자인 S.T.(Sheep thief)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잔혹한 청교도적인 형벌인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 양 도둑질을 해서 이마에 화인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다니면서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마을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도와주고 아파해 주고 죽음의 자리가 있으면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는 그가 목사님보다 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장수를 하여 2세대들이 자라서 그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학교 입학식 때에는 으레 훈사를 하는 유명한 분이 되었습니다. 이마에 낙인을 찍는 풍속은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이마에 어째서 S.T.가 붙었느냐고 묻습니다.
양 도둑의 약자와 성자(Saint)라는 말의 약자는 같지 않습니까?
그분이 너무나 거룩해서 성자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송원영 목사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세상 사람들은 점점 악하게 변하여 갈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착하고 선하게 변해가야 합니다.
우리 행실의 옷이 점점 깨끗해져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점점 왕따를 당하는 시대가 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듣지 않기 위해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성도들은 양 도둑이 변하여 성자가 된 것처럼 점점 의로워지며 거룩해지는 가운데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서 살 것입니다.

 
     
       
 

주의 얼굴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My heart says of you, "Seek his face!" Your face, LORD, I will seek.

시편 27:8

 
       
 
   
  주신장로교회 황요한 목사
  53.관용은 문명의 유일한 테스트다1